꿈속의 꿈 - 에드거 앨런 포 시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공진호 옮김, 황인찬 해설 / 아티초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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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소설집으로만 접해서 에드거 앨런 포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포의 시집이라고 하니 흥미로웠다. 표지 일러스트를 처음 봤을 때는 단지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보고 나니 왜 이렇게 그렸는지 알겠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구나.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 도서 서평도 처음 써서 이게 서평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카페 이벤트 당첨되어 책을 받아 읽고 작성해본다.


 황인찬 시인의 해설로 먼저 시작되는 구성이 독특했다. 보통 해설이 책 뒤에 수록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번역서이고 시라는 문학 특성으로 이렇게 배치한 듯하다. 해설이 앞에 있어 사실 시를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되긴 했다. 이 시집에서는 실존 인물의 이름, 지명 혹은 상징적으로 불리는 이름, 명칭 등 어찌 보면 생소한 단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다 보니 내용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르노어, 소네트, 이스라펠, 율랄리, 울랄룸... 영어를 쥐뿔 아는 것도 없지만 시의 경우는 원문을 함께 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는 의미가 함축적이고 본래 언어로 쓰인 운율과 분위기가 있어서 아무리 잘 번역해도 그 느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르노어! 르노어는 대체 누구인지 뭔지 너무 궁금하였는데 다행히 책 뒤 도움말 설명에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본문 뒤에 도움말과 옮긴이의 말이 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고민 많이 하고 번역하신 부분이 시를 읽으면서 느껴진다. 애너벨 리는 눈으로 읽는 것 말고 입으로 소리 내어 낭독해 봐야 알 수 있다. 순서 상관없이 도움말과 옮긴이의 말, 에드거 앨런 포 연보까지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도 무방할 듯하다.


인상적이었던 시는 아무래도 까마귀이다.


새가 방문 위에 앉은 것을 볼 기회를 누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새든 짐승이든 방문 위 조각상 위에 앉아 있는

그것의 이름은 "영영"

꿈속의 꿈 p88 까마귀 中


p66~106의 분량으로 꽤 긴 시인데 마치 독백극을 보는 듯했다. 슬픔을 잊으려는 화자에게 찾아온 정체 모를 귀신 같은 손님을 마주하고 머릿속을 스치는 여러 사념들을 대사로 내뱉는 장면들이 가슴에 커다랗게 뚫린 상실의 구멍과 깊은 체념을 느끼게 해준다. 까마귀는 죽어버린 르노어이기도 공포이기도 어둠이기도 풀어야 할 미스터리, 영혼의 그림자, 근심 그 자체가 현신한 것처럼 읽힌다. 까마귀는 날아가지도 않고 슬픔 속에서 다시는, 영영. (영영 계속 따라 읊게 된다.)

분량도 그렇고 이 시는 전형적인 시의 형태로 쓰인 시는 아닌 것 같다. 편집이 원래 이렇게 쓰인 것인지 연을 기준으로 페이지를 나눈 건지 아니면 전체 산문 형태인 것을 페이지로 나눈 건지 중간중간 삽화도 있어서 시 전체가 어떻게 쓰였던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시에서 연이 나뉘거나 행갈이 되는 것에는 시인의 의도가 분명히 있기에 원문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잔테섬에 바치는 소네트 시에서 까마귀 시로 넘어가는 부분의 편집이 약간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잔테섬에 바치는 소네트 시에 들어간 삽화 다음 까마귀 시 표지 그림으로 보이는 삽화들이 연달아 나오는데 까마귀 시 제목이 상단에 있었던 시 제목 위치와 다르게 삽화 하단에 있어서 단지 삽화 설명글인지 시 제목인지 헷갈렸다.


바닷속 도시(p43~46)라는 시도 취향이었다.


이제 물결은 더욱 빨갛게 빛난다

시간은 가냘프게, 얕게, 숨쉰다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신음 소리가 나고

저 아래 저 도시에 죽음이 자리잡을 때

저승은 세상을 주름잡던 무수한 자들의 망령을 모두 깨우고

죽음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다

꿈속의 꿈 p46 바닷속 도시 中


 죽음에서 비롯한 상상력과 그 표현이 매우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읽으면서 침잠하다, 잠수탄다 이런 표현도 생각이 나고, 심해의 짙은 파란색도 연상되고, 일출과 지옥불이 동시에 그려지기도 하고, 시에서는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바다라 하는데 나는 파도가 암석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밤바다 이미지도 떠올랐다.


보다 보니 오탈자가 섞여 있었다. p66 꾹벅꾸벅 / p129 내가 줄은 줄 알고.

p129는 시의 흐름상 내가 죽은 줄 알고 이어야 하지 않나 싶다.


 시는 계속 봐야 아주 조금 알 수 있는 것 같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계속 펼쳐보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조금 더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뭔가 싶고 고풍스러운 문체에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해설에서 말하는 사랑과 죽음, 숭배와 애도? 이건 뭘까 물음표로 시작했다가 곱씹게 된다. 천천히 옆에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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