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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
콜린 더브런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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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 콜린 더브런/ 황의방 옮김/ 까치

 

역자도 밝혔듯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시점이 1999년이다.

그가 시베리아를 탐사했을 때는 러시아의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무질서 속에서 격변하던 옐친 대통령 시절인데, 우리가 읽는 것은 2010년이니 한참 늦게 번역되었다.

동독이 무너지고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코가 비참한 죽음을, 고르바초프가 혜성처럼 등장하더니 어느덧 옐친의 시대가 도래하던 숨가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점에 맞추어 번역출판 됐었더라면 꽤나 인기 있었을 책인데타이밍이 늦었다.

또한 역자후기대로 이 여름 유난히 더웠던 환경에서 최저 섭씨 영하 72도 까지 기록하는 시베리아와 무시무시한 강제수용소를 상상하면 애당초 서늘하며 온전한 한국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에 불공 드리고 감읍해야 한다.

 

철의 장막이 마악 걷히자마자 시베리아로 나선 영국인인 저자의 용기가 대단하고, 어디서나 현지인과 목적 있는 대화를 나누는 친화력과 순발력에서 작가의 조건과 덕목을 보기도 한다.

 

지구 면적의 1/12을 차지하고, 알레스카를 합친 미국보다 큰 면적에 인구는 1/10에 이르지 못하는 시베리아. 그 어원은 아름다운, 순수한이라는 뜻의 몽골 시베르잠자는 땅이라는 뜻의  타타르 시비르가 신비스럽게 합성된 시베리아로 헤겔은 너무 춥고 적대적이어서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곳으로 보아 시베리아를 역사의 경계 밖으로 놓기도 했다.

 

이 기행문의 서두와 말미에서 등장하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극한 상황을 보고 놀라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 죄인들의 유배지로 출발했던 것처럼 시베리아 또한 러시아의 범죄자, 분파주의자, 정치적 반대자 등을 내다버리는 황무지로 인식되었다. 그러다 1920년대 초 이곳에서 석탄이 발견되면서 강제노동자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고, 정치적으로는 레닌, 스탈린을 거치고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죄수 아닌 죄수들의 지옥이 되었고 황천길이 되었다.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 내내, 수감자들은 이끼가 낀 동토 바닥에 얇은 판자를 깔고 그 위에 톱밥을 뿌린 텐트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은 하루 12시간씩 휴식도 없이 탄차를 끌어야 했다. 3주일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은 쓰러졌다. 드물게 살아남은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로봇처럼 변했다고 한다. 회색과 노란색이 섞인 얼국 가장자리에는 얼음이 맺히고 눈에서는 차가운 피눈물이 흘렀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구덩이를 파고 죽은 사람의 머리를 두꺼운 모직 상의로 덮은 다음 시체 위에다 자갈을 쌓아놓았어…..그리고 그 후에 우리는 그 시체들 위에다 철로를 깔았어. 곧 기차들이 그들의 무덤 위로 달리게 되었지.”

“..캠프 전체가 산 채로 얼어붙었다. 죄수들, 경비병들, 심지어 개들까지도 얼어 죽었다….그 이후 더욱 지독하고 잔인한 조치가 취해졌다. 죄수들의 가죽옷과 부츠가 캔버스천으로 만든 신발과 솜을 넣은 재킷으로 대치되었다. 이런 신발과 옷은 곧 누더기가 되었다. 하루 빨리 죄수들을 죽이려는 속셈이었다그들의 하루 작업시간은 14시간으로 늘어났고 형기는 25년으로 연장되었다. 달성할 수 없는 작업량을 책정함으로써 죄수들의 수명은 더욱 짧아졌다.”

이에 비하면 솔제니친의 소설에 등장하던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수용소 생활은 낙원이다.

 

소비에트 적군에 의해 차르 니콜라이 2세와 왕비, 자녀들 그리고 하인들까지 무참하게 살해된 곳도 시베리아 예카테린부르크이었듯 이 지역은 특히 공산주의 체제를 겪으면서 가히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지역이 된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치며 빗장을 연 고르바초프가 없었더라면 아직 철의 장막 속에서 신음하는 소련의 국민들이 있지 않았을까. 마치 현재에도 북한의 올림 금메달리스트들이 하나같이 앵무새처럼 메달소감으로 김정은의 은덕 운운 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예측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 책이야말로 생생한 반공교과서 노릇을 한다. 친일단체인 뉴라이트나 어버이연합 같은 조직은 쓸 데 없는데 힘쓰지 말고 이런 책을 대량으로 구입해서 회원간 읽고 토론회도 가지고 중고대학생들에게 무상보급 한다면 바람직한 활동이 되겠다.

 

시베리아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울란우데에서 한국인이 농지를 경작한다는 사실, 거의 동쪽 끝 부분의 콤소물스크10여 개 남짓한 기독교회중 한국의 감리교회가 2개나 된다는 사실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한국임을 알게 하면서, 날로 부흥하는 한국 기독교의 위세를 엿보기도 한다.

 

한때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독자적인 국가를 염두에 두기도 하고, 알레스카와 더불어 미국에 편입되기를 희망했다고도 한다. 그러다 소비에트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극심한 탄압 속에 의미심장한 동토가 되었다.

저자가 시베리아를 방문한 당시에도 시베리아 현지 다수인들은 장차 러시아의 원료와 중국의 노동력 그리고 일본의 기술이 합쳐져서 이 지역의 경제가 발전되기를 희망했다는데 가능한 견해이다. 또한 중국과 한국의 이주민으로 오염된 시베리아는 시베리아인 들의 손을 떠나게 되리라는 생각이라는 점, 시베리아는 서부에 많은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고 동부에 풍부한 광물과 목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거칠고 너무 신중하고 너무 접근이 어려워서 개발이 어렵다는 현실은 시베리아의 무궁무진하면서도 불안정한 상태를 잘 나타내는 것이다.

 

지질자체가 좀 두꺼워서이지 400여 페이지가 읽기에 썩 두껍고 분량 많은 책이 아니었음에도 월초부터 오늘까지 근래 가장 많은 시일을 끈 책이다.

개인적으로 8월 더위와 함께 나태하게 지낸 최근을 상징하는 듯 하다.

이 책이 보여주듯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도 생존본능으로 몸서리치도록 방어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길진대, 8월 나는 사유하면서 반성해야 한다. 누구 탓이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나를 직시하여야 한다. 8월을 굿바이 하면서 주말엔 지리산둘레길 코스도 다시 도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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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겁인 空劫人 - 한국의 유마 백봉 거사와 제자들
최운초 지음 / 비움과소통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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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유마 거사 백봉을 보다.

 

우연한 기회로 『空劫人』이란 책을 구하여 읽었다.

불교를 다룬 책이지만 공겁인, 백봉 등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라 호기심으로 펼쳤다.

이 책은 백봉의 지도를 받은 제자 중 11인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제자들이 증언하고 겪은 내용 중에 진솔하게 와 닿고 공감하는 부분을 보았다.

반면,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인가를 받는다는 것, 소위 득도했다는 것이 쉽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이 점은 읽는 본인이 불교에 관한 기본 소양이 부족한 측면에 기인하고, 인터뷰에 응한 제자의 생생한 증언이 다소 주관적인 측면에 기울어 일반독자인 본인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도 있을 거라고 보고, 또 깊이, 견해와 느낌의 차이일 수 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재가 수행자들인 우리들에게 수행하고 공부하는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각각의 여건에 맞는 모습을 견주어보게 하는, 불교를 마주하여 거사의 신분에서 수행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시각과 과제를 제공하는 선물꾸러미로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백봉 김기추 거사는 20세기 ‘한국의 유마 거사’로 본다고 한다.

백봉 거사는 ‘허공으로서의 나’를 근간으로 전통적인 화두에 대응하는 ‘새말귀’를 제창하여, 전통적인 화두 수행이 어려운 재가 수행자 위주로 일상생활 전부를 화두로 들게 하는, 현대인에게 적합한 새로운 수행 방법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백봉 거사를 따랐던 묵산 스님의 파격(?)이 좋았다.

황정원 거사는 산지니 출판사에서 불교와 마음이라는 책-능엄경을 해설한 분으로 알고 있다.

재가 불자가 불교의 진정한 주체가 되는 불교를 정착시키고 싶다는 성태용 거사.

사는 것이 절실해지니까 공부 또한 절실해졌다는 전근홍 거사.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나-‘내가 뭣꼬?’를 든 안경애 보살. 비싸지 않은(?) 백봉의 인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도 한다.

초심을 냈을 때 열심히 하고, 지속되어야 하고 그렇게 쉬지 않고 끝장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수열 거사-그래서 초스피드로 안경애 보살과 결혼하신 것 같다.

군 입대를 앞두고 청사포에서 환송회를 열었다는, 오늘 청사포 해월정사에서 108배를 마치고 금강경을 독송한 이 독자에게 청사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김명식 거사-수행을 앞두고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단다.

광안동에서 새말귀 선원을 운영하는 이황우 거사-누가 종교 애기하면 내 자신을 믿으면 되지,뭘 다른 걸 믿느냐?”하다 자신이 바로 부처인 불교야 말로 내 자신을 믿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아직 독신으로 계신다는 쌍둥이 자매 정선주, 영주 자매도 등장한다. 이 분들 말씀에서 몇 번 가 본 해운정사가 반갑게 등장한다. ‘를 공부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아상이 세고 제일 독종이고 욕심 많다..우주를 다 먹으려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그럴 것 같다.

 

이 책을 통하여서는, 언급된 11인 중에서 김광하 거사의 말씀에 가장 눈길이 갔다.

백봉 거사께서 너무 편하게 공부하는 제자들을 일깨우기 위해 부엌에서 서서 밥 먹게 했는데, 소화도 어렵고 불쾌한 마음도 들다가, 결국 대접받는데 익숙한 자화상을 보고 아상을 발견하게 되는 일화는 충분히 공감을 불러 온다.

나의 살림살이로서 자기 전 한 두 시간 참선하고, 아침에 한 두 시간 앉아 자기의 모습을 굴려 본다는 자세를 본받고 싶다. 또 허공법문도 있지만 허공으로 보고 허공으로 생각하다 보면 허공의 최면에 걸린다..허공처럼 보는 것인데 사람의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미망, 오만, 교만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관념적으로 접근한 연유일 것이라 본다.

고통을 보면서 연민을 느껴야 하는데 이 연민은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이어야 하고, 그럴 때 이걸 해결하겠다는 발심이 나오고, 깨달아야겠다는 보리심이 나오고, 그리고 깨달음이 있다는, 이런 과정이 없으면 불교가 아니라는 해석에 박수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재가 수행자들에게 희망을 준다.

백봉 선생님이 56세에 공부를 하셨다는 것이고, 공부를 안 해도, 화두든 뭐든 확실하게 한 가지 수행을 열심히 하면 견성할 수 있다는 거다.

정한 법이 없다, 법은 굴려야 한다. 법에 굴림을 당해서는 안 된다.-무유정법의 설명이다.

미망을 보지 못하는 깨달음은 이미지라고 한다. 이미지는 미망을 깨트리지 못하는데 이는 바로 지식으로는 아상을 깰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불교는 기본이 참회라고 한다. 그걸 통해서 자신의 미망을 보는 거란다.

 

다시 김광하 거사의 말씀으로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마무리 짓기로 하자.

이제 선생님의 법문은 법문으로 존재할 뿐 선생님처럼 현장에서 지적할 사람이 없다..그래서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을 게 아니고 전체 불교의 큰 흐름 속에서 선생님을 바라보는 것이 선생님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고, 자기 살림살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현실에서 살면서 자기의 미망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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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독거노인 열두 명의 인생을 듣다
김혜원 지음, 권우성.남소연.유성호 사진 / 오마이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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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천국, 우리의 독거노인을 알아보다.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이다.

서점에서 살펴보다 독거노인에 대한 현장(?)과 이해를 구하고자 보게 되었고, 홀로 여생을 지내며 운명하는 그날까지 살아야 하는 열 두 분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었다.

 

어려서부터 가난을 겪거나 불우한 환경의 연장선상에서, 중류층으로 계시다 빚 보증 등 돌발적인 경우로 혼자되신 분도 계셨는데 하나같이 가족의 해체를 불러오고 혼자 살아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원망 않으며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자식의 불효를 외부에 노출시키지도 않는다. 부모라는 굴레가 본능적으로 독거노인화 한 것이다.

도와주지도 않는 자식이 도리어 부담스럽다. 제도적으로 기초수급까지 가로막아 버린다.

겨울이라는 복병에서는 곧잘 냉방신세를 면치 못한다.

여러 질병을 달고 살되 약값마련을 걱정 않을 수 없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엔 벅차다.

 

그 중에서도 예전 여건이 어떠했었어도 독거노인이 된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터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슬플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얼마나 낙담될 것인가.

독거노인들 중에서 이런 마음을 추스리며 긍정적인 삶을 영위하실 분이 과연 제대로 있을까.

 

구멍 뚫린 복지제도도 문제이다.

사실적으로 지원받아야 할 계층이 서류상 제약으로 대상이 되지 못하는 반면,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자가 서류조작(?)으로 수혜 받는 경우는 무언가. 책상머리에서 일하지 말고 현장을 둘러봐서 어려움을 겪는 독거노인을 제대로 지원하여야 한다.

현 정권 들어 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는 현실은 이치에 맞지 않다.

권력과 명예, 그리고 경제력까지 모두 움켜진 자들부터 대오각성하기를 기다리면 될까.

그들이 이런 현실을 알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어쩌면 남의 일이 아닌, 나와 너에게도 충분히 다가올 수 있는 독거노인이 될 수 있다.

현재 가족이 있는 우리라면 제각각 맡은 바 소임에 더욱 충실하여야겠고 가족의 중요함을 알고 화목함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또한 정신적인 지주로써 건실한 종교가 있어 어떤 경우에 봉착하여도 매사 긍정적인 생활을 이끌도록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주변을 둘러보아 독거노인을 포함한 불우이웃들에게 관심을 보여야 한다.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더불어 인간다운 삶을 꾸리기 위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십시일반으로 나누는 마음을 견지해야 한다. 금전을 보태거나 노력봉사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소개된 열 두 분과 많은 독거노인 분들께서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생활여건 되시기를,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이런 분들께 빛이 되고, 친구가 되고 마지막 의지처가 되어주시는 자원봉사자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복을 받으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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