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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ㅣ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평점 :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김희상 옮김/ 갤리온
선입견을 가진 지인들이 있다.
얼마 전 읽었던 <살인자들과의 대화>에 이어 이 책을 읽는다 하니 ‘무슨 그런 끔찍한 책을 보느냐’며 말리는 투의 발언이다. 주변에서도 간혹 지하철을 타고 이런 책을
읽노라면 눈치 아닌 눈치가 보일 법도 하겠다. 더군다나 불특정다수를 목표로 하는 난동꾼이 거리를 활보하고
성폭행을 비롯한 강력범이 설친다는 메스컴의 보도가 내내 나오는데, 이상한 사람 취급 받으려나?
어느 리뷰에서 잠깐 본 기억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일수록 추리 또는 탐정소설류가 히트 친다는데 그렇다면 한국 역시 선진국화 단계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호황을 맞게 될테고, 더불어 해운대 달맞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추리문학관’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적절하게 머리를 움직여 추리하고 몰두하게 하고 궁금증을 풀어가는 이런 류의 글은 분명 활력소가 되리라.
독일의 현직 형법전문 변호사가 겪은 실제 사건들을 추린 몇 편의 글로, 1년
후 속편까지 모두 2권이 출판되었고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해외로까지 번역, 출판된 것이 내 손에까지 온 것이다.
내 머리의 회전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타나타의 찻잔>과 <정당방어>,
<가시>에서는 갑갑하다.
<타나타의 찻잔>에서
실제 핵심은 ‘마놀리스’인 것 같긴 한데 명쾌하게 보이지
않는 점, <정당방어>편에서는 스킨헤드족 2명을 간단히 제압하여 죽게 한 자의 신원은 끝까지 알려지지 않은 채 석방된다는데 도대체가 말이 되는가 싶다. 유 무죄를 떠나 최소한의 신분은 알려져야 하는데 한국에서라면 결코 통하지 않을 일이다. <가시>에서는 주인공과 사건 후 조각복원을 담당하는 여성전문가와의
사이에 어떤 복선이 있는 것 같은데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사건을 다루는 경찰, 검찰과 변호사,
그리고 판사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입장에서 각각의 시각이 만들어진다. 사건은 필연인데 입장에
따라 그 시각은 상이하고 진실을 다투게 되는데, 분명한 것은 동기 없는 사건은 없는 것이다.
변호사의 위치가 반드시 정의를 위하는 것이 아니고, 고객의 부름을
받고 고객(피의자, 살인자일지라도)을 대변하며 비밀까지 지킨다는 저자의 천연덕스런 주장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곱씹을 대목이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일수록 진실이라는 것과, 아주 그럴싸한 주장일수록 사기에 가깝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추정과 증거를 항상 정확히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자가 밝히는 사건들은 죄다 형법상 관점에서 수사와 재판이 전개되지만, 그
동기에는 인간적인 요소-그것이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당사자입장에선 그렇다-가 가미되고 가능한 한 인간적인 관점에서 풀어보려 하는, 실력도 있었겠고
경제력도 구가했겠지만 무엇보다 인도주의적 변호사라 할까. 법의 카테고리에 인간적인 동기를 믹스하고 추론하여
변론의 요지로 삼는 변호사이다.
제목에선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라지만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다음과 같다.
<그 살인자의 거울에 비추어보는 난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이다. 제목이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