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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도쿄 진초보, 큰 거리에서 골목 몇 개를 굽어 들어온 곳에 있는 이층 건물. 일층은 고서점인 ‘고서 나미다테이’라는 이상한 간판이 약간 삐딱하게 걸려 있다. 다섯 평 정도의 점포와 화장실과 세면대, 벽 쪽에 붙은 목재 계단을 오르면, 내가 하숙하는 이층 방에 이른다. 장지문 하나가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방은 본래 두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던지 방 한가운데에는 장지문이 있던 야트막한 문지방이 좌우로 나 있다.
푹푹 찌는 듯한 더위, 눈앞에 있는 장지문이 열렸다. 15년쯤 전에 고서점 나미다테이의 이층에 하숙했던 마흔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 웃으면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잡히고 입가는 나를 비웃듯 업신여기는 것 같지만, 눈만큼은 온화한, 진심으로 좋아할 리는 없지만, 머지않아 정이 들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돈 빌려줘’
돈이 있다면 인생이 달라질까? 성형하여 아름다워지면, 모든 것이 즐거워질까? 그런 생각도 했지만, 실제로는, 눈곱만한 월급은 생활비로 전부 사라져버려, 전혀 여유가 없었다.
그때 티비에서 나오는 대형 소비자금융의 CF는 어디까지나 밝은 분위기였고, 게다가 유명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어엿한 광고다. 손쉽게 돈을 빌려주고 친절까지 베풀어 준다.
빌린 돈으로 아름다워지고, 매일 스케줄을 잡고 놀러다면서 이자 금리에 대해선 이해하지도 못하고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 실적이 쌓여서 한도를 높였다는 온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또다시 빌리다가 갚지 못할땐 같은 회사가 맞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들이 독촉을 해온다. 그러다가 감당하지 못할 때까지 이르러 쫓기는 신세가된다.
이제 곧 염원하던 돈이 손에 들어온다.
제대로 된 인간, 건전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뻐서 눈가가 희미하게 뜨거워졌다. 다시 평범한 생활로 나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연예인들이 나오는 대출광고. 전화한통으로, 혹은 마우스 클릭한번으로 돈 없는 이들에겐 엄청난 유혹이 된다. 지금당장 없는 상황에선 높은 대출이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한번 두 번 손을 대기 시작해서 결국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나쁜 선택까지 하게 만든다. 주위에서도 흔치 않게 볼수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돈이 참 무섭고 폭력성이 있다는 말에 더 공감이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