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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간혹, 읽으면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책들이 있는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그런 책들 중 하나다. 자신의 무식함과 무관심이 자책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동'의 역사에 징그러울 정도로 무식한 스스로가 부끄럽고, 되풀이 되는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쟁 상황에 대한 불쾌감을 주변인들에게 배설한다던지, 반전집회에서 놀다오는 것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소화가 잘 안된다.
그래도 그들의 역사, 그들의 모습을 마주하고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위안을 갖고 금방 스스로를 회복시키곤 한다.
<팔레스타인>은 따지고 보면 <십자군 이야기>를 통해서 읽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 친구에게 <십자군 이야기>를 권해줬더니 이 친구가 그것을 읽고는 <십자군 이야기>에서 소개해 주고 있는 많은 책 가운데 <팔레스타인>을 덜컥 사버리고는, 다시 나에게 권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게 된 것이 몇년 전이었고, 올해 생일에 다른 친구에게 졸라 이 책을 선물로 받아 올해 초에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었고, 며칠전 또 다른 나의 친구에게 이 책을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
친구에게 건네기 전에 다시 한번 이 책을 봤는데, 버스 안에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울컥하면서 눈에 눈물이 고이고, 버스에서 내릴 즈음에는 어딘가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이렇게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팔레스타인>의 저자인 조 사코의 태도는 꽤 냉정하다.
조 사코는 가자지구에서의 불안하고 진절머리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어딜가나 마주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영웅담(?)을 일일이 기록하지도 않는다. 그의 기록에는 끝도 없이 설탕을 차에 부어 넣는 그들의 모습, 한 두명 쯤 이스라엘 군의 총에 맞아 죽은 가족이 있는 것이 당연한 그들의 모습, 통금 시간이 존재하고 언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그곳에서 생일이 되면 몸에 땀이 비오듯 흐르게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 시위를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모습,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생계수단이자 자식과도 같은 올리브 나무를 이스라엘군대가 무참히 베어가는 모습이 있다.
비가 오면 언제나 구정물이 넘치는 거리에서, 통제와 감금과 폭력의 공포가 '일상'이 되어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곳의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조 사코는 거칠게 말하면 개입하지 않는다. 그곳을, 그 사람들을 기록한다.
바로 그의 그런 태도가 그들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한다. 이런 화면들 속에서 나의 입장, 나의 처지에서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주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당장 내가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킬수도 없고, 그럴 일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만, 이제는 그들과 마주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소시민적 만족은 느낀다. 대상에 대한 관심, 대상을 마주보는 것에서 모든 사건은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덧붙이자면 만화라는 매체를 저널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는 조 사코의 능력은 여전히 대단하게 느껴진다. 성의있는 번역과 김수박을 활용한 편집자의 센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와 박홍규, 최진영씨의 글 역시 읽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