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읽고 그의 책을 안내서 삼아 나 홀로 남도 기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한 일주일 정도 책의 발자취를 좇아 남도 구석구석을 기행해 보겠다는, 나름대로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서 말이다.
 하지만, 여자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던 탓에 완도 보길도에서 고산 윤선도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나중에라도 넉넉한 시간과 베짱이 생길 때 문화 유산 답사에 다시 도전해 보리라,는 여운을 남긴 채.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그 흘러간 시간들 어느 사이에 그 때의 다짐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생활의 톱니바퀴에 나를 맡기며 살아왔다. 비록 원 저자는 아니지만 유홍준 교수가 편집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대하니 문득 옛 추억이 떠오른 것 같다.
 학생들에게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고 싶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이 책이 원동력이 되어 다시 한 번 문화 유산을 답사해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실천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천천히 이 책을 음미해 보았다.

 이 책은 우리 미술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한국미부터 소개하고 있다. 건축에서부터 탈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술품에 베어 있는 한국미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도 익히 알고 있듯이 '자연미'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한국미는 중국의 그것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일본의 그것처럼 인위적이지도 않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고 했던 것, 그것이 바로 한국미인 것이다.
 나는 역시 몇 년 전에 중국과 일본을 차례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먼저 중국에 가서 자금성을 보고 느낀 것은, 너무 거대해서 멋대가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금성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의 모든 것은 다 크고 화려했다.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의 건축물에는 정이 가지 않았다.
 정이 가지 않는 것은 일본의 건축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곳을 둘러보지는 못 했지만 일본의 전통 가옥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면서 느낀 것은 집을 이루는 선이 지나치게 반듯하다는 것이었다. 그 반듯반듯한 직선에 거부감마저 들려고 했다.
 두 나라를 다녀온 뒤에 왠지 우리의 전통 건축 양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창경궁에 가게 되었다. 그 아담한 규모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추녀 끝,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색상의 문양들이라니... 바로 이거야!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며 가슴이 아린 것이 눈물까지 나오려는 것을 기까스로 참아냈다.
 어떤 이들은 국토가 좁으니 임금이 살던 궁궐마저도 협소하게 지었다며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건축물을 보고 느꼈던 그 2% 부족한 갈증을 나는 바로 창경궁에서 해소할 수 있었다. 궁궐임에도 불구하고 창경궁엔 사람을 위압하는 거대함도, 사람을 한없이 긴장시키는 반듯함도 없었다. 그 아담한 규모와 부드러운 곡선엔 바로 우리 한국인의 주된 정서인 '정'이 베어있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그 무엇과도 조화를 이루며 살려고 했던 우리 선인들의 온화한 심성이 스며 있었다.

 한국미에 대한 보편적인 설명을 먼저 해 준 이 책은 곧 바로 수많은 사진 자료와 함께 건축에서 그림까지 우리 미술품 곳곳에 나타나는 한국미 하나 하나를 다시 되짚어주고 있다. 예전부터 한국미에 관심이 많아 한국화는 틈틈이 감상하러 다니지만 그 이외의 다른 미술품들을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보지는 못 한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우리 문화를 찾아보고 느끼려고 하는 것에 소홀했는지 반성을 해 보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나라의 명산들을 찾아 주말이면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앞으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우리의 문화 유산을 느끼는 데 할애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너무 가보고 싶었고 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산에 가느라 미루고 미루었던 '부석사 무량수전'부터 말이다. 한 곳 한 곳 다녀올 때마다 학생들에게 내가 느낀 감동을 꼭 전해줘야 겠다는 다짐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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