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지 않는 스모선수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살찌지 않는 스모선수라니..!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마치 석가모니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 깡마른 남자의 모습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파란 물 속에 앉아있는 그의 마른 몸이 더욱 안되어 보인다. 물고기도 지나가다가 놀라워하는 것 같다. 이 책이 도대체 무슨 책일까? 너무 궁금했다. 잘 짜인 한편의 철학 콩트처럼 읽어도 좋을, 짧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책의 설명이 씌여있다. 철학적인 생각이 가미된 작은 이야기인가? 이 책의 저자인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는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여행을 통해 내면의 깨달음을 얻어 희곡작가와 소설가로 사랑받는 대중문학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철학적이면서 소설가다운 면모가 훌륭히 드러나는 책이었다. 큰 글씨로 띄엄띄엄 쓰여진 책장과 얇은 책의 페이지가 이 책을 보기 만만한 (!) 책으로 만들어주지만, 다 읽고 났을 때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린왕자처럼, 짧고 간단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다.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라서 당연히 배경이 유럽이나 미국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의 배경은 일본이다. 일본 도쿄에서 일어나는 스모선수가 되기 위한 한 말라깽이 남자의 고군분투기이다. 나는 저자가 서양사람이면서 동양의 철학 또한 잘 알고 있다는 점에 놀랐고, 그런 철학적인 존경심 때문에 배경을 도쿄로 설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는 일본인이 믿는 사상들인 선불교라든지 (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신토, 티벳불교 등의 사상들이 나와있다. 그런 철학을 모두 알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명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철학적 바탕이 있어야 스모 선수로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편안하게 받아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주인공인 준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자살과 어머니의 방임으로 마음의 상처가 큰 소년이다. 허드렛것들을 팔아서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날 삐쩍마른 할아버지가 찾아온다. 그 할아버지는 그에게 자꾸 스모판으로 구경을 오지 않겠느냐고 구경한다. 한귀로 흘려들었지만 어느날 그의 불법 좌판이 경찰들에게 단속되면서 오갈 데가 없어지고, 어쩔 수 없이 (혹은 운명적으로) 할아버지의 스모판으로 구경을 가게 된다. 그 때 그는 스모가 뚱뚱이들이 하는 경기가 아닌 과학적인 기술이 필요한 경기임을 알게 되고 스모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때로는 기술과 민첩성, 재치를 필요로 하는 매력적인 경기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큰 걸림돌이 있었다. 제일 가벼운 선수가 되더라도 75kg 이상이 되어야 스모 선수의 자격이 주어지는데 준은 175cm에 55 kg밖에 나가지 않아서 20kg이나 모자랐던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준은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뒤에는 일본 최고의 스모선수를 키워낸 할아버지가 있었다. 책은 약간의 반전과 함께 아름답고 훈훈하게 끝난다. 한편의 철학적인 꽁트를 읽은 기분이라는, 처음 책 머리에 쓰여있던 그 말에 100퍼센트 동감한다. 당신이 표지를 보면서 괴이함을 느꼈다면, 이 책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보다 아름다운 이야기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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