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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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는 건 즐겁다.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책을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서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지만, 그게 모든 직업을 다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린 여전히 가보지 못한 길이 궁금하고, 독서는 그 모든 걸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천문학자의 삶은 우리의 삶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낭만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고 같은 세속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때도 있다. 어찌 됐든 오랜만에 과학수업을 듣는 기분도 나고 라디오를 듣는 기분도 나서 즐겁게 읽었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어린 왕자 이야기, 달과 지구의 이야기, 유인원사에 갇힌 고릴라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남는다.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 P13

"목성 스펙트럼을 찍어 왔는데 처리할 사람이 없어. 누가 해볼래?" 대학원생 선배들은 이미 각자 맡은 연구 주제가 있었다. 참석자 중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유일한 학부생인 나뿐이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외쳤다. 태양에서 1AU 거리에 있는 지구에서부터 5AU 거리의 목성으로 순간이동하는 주문을. 그때의 나를 오늘날의 나로 만든 바로 그 주문을, 그건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저요!" - P19

의식하지 못하는 새, 빠른 밀물이 나를 이곳에 옮겨놓았다. 해변을 걷다보니 어느새 물속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이제 물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분다. 젖은 옷이 마를 때까지 나는 이를 딱딱 부딪으며 오들오들 떨어야 한다. 몸을 쑤욱 내밀기 전에 크게 숨을 들이켠다. 아직 나가지 못했다. 한 번 더 크게 숨을 쉰다. 아직도 나가지 못했다.
해변 저기 멀리에 내가 오래전 떠나왔던 돗자리가 보인다. 떠나올 땐 운동장처럼 느껴졌던 돗자리가 이젠 손바닥만 해 보인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는 이제 맨발로 걸어야 한다. 발밑이 고운 모래사장이든 거친 현무암이든 가도 가도 끝없는 개펄이든 간에. - P30

일기 속에는 두려워하는 내가 있다. 졸업할 수는 있는 걸까 두려웠고,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어쩌면 졸업 후의 더 큰 두려움을 유예하기 위해 수료생의 고뇌에 천착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 P31

대학이 고등학교의 연장선이나 취업 준비소가 아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공부라는 걸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은 사람, 배움의 기쁨과 앎의 괴로움을 젊음의 한 조각과 기꺼이 맞바꿀 의향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려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경제적 부를 축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 P56

부모 중 누군가가 본인의 일을 잠시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위해 달려가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의무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가 일을 포기하고 달려가는 건 누군가는 가야 하는데 남편이 안 혹은 못 달려가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런 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비난의 대상은 아픈 아이도, 달려가는 엄마도, 못 달려가는 아빠도 아니다. 갈 수 있으면서 안 달려가는 아빠가 있다면 그를 비난할 수 있을 뿐이고, 그런 경우엔 그게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도 비난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남의 가정 일에 비난할 자격과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 - P107

부모 중 하나가 가사와 양육을 도맡거나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조부모 등 친척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아이 하나 키워내기가 이렇게 어려운 사회. 그래, 현실이 그렇다고 백번 인정한다. 그게 현실이지만, 그게 여자들의 ‘문제’로 인식되는 건 슬프다. 직장에서는 그토록 프로페셔널해야 한다면서, 가정에서의 의무는 가벼이 보는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여성들이 남성 위주의 문화에 적응해나가듯이, ‘직장맘’들이 "애는?"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잘하려고 노력하듯이, 그들도 여성들, ‘직장맘’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해보면 좋겠다. - P108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더 멀리, 통신도 닿지 않고 누구의 지령도 받지 않는 곳으로. 보이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진할 것이다. 지구에서부터 가지고 간 연료는 바닥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차 가벼워지고, 그 빛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 P156

어린 왕자는 해 지는 광경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한다. 특히 여름철 지루한 장마 끝의 노을을 사랑한다. 마치 솜사탕을 여기저기 헤쳐놓은 듯 색깔도 높이도 서로 다른 구름층이 여러 갈래로 휘몰아치다 갑자기 멈춘 듯한 하늘. 그 역동적인 하늘에 내려앉는 노을은 어찌나 붉고 또 어찌나 강렬한 황금색인지. 그렇게 황홀한 황혼은 태양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다. 지구에서 태어난 나를 칭찬한다. - P158

누구나 다 알다시피 미국이 정오일 때 프랑스에서는 해가 지지. 단숨에 프랑스로 달려갈 수만 있다면 해 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불행히도 프랑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러나 너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놓기만 하면 되었지. 그렇게만 하면 맘 내킬 때마다 해 지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던 거야. - P159

내가 어린 왕자라면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소행성이 자전하는 속도에 발을 맞추어, 지평선 위에 살짝 걸려 있는 해를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노을 속으로.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 P160

아침 알람을 끈 후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빈사 상태로 이부자리 안에서 괴로워할 때, 해가 두 번째로 뜰 때까지 한숨 더 잘 수 있다면 그 잠은 얼마나 달콤할까? 수성의 시인들은 두 번의 일출과 두 번의 일몰에 대해 노래하겠지. 소설가들은 첫 번째 일몰과 두 번째 일몰 사이의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나쁜 마법사가 첫 번째 일몰을 두 번째 일몰로 착각해 엉뚱한 주문을 거는 바람에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되살아난 공주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까. - P163

해 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왜 슬픈지 캐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은 게 마흔 세 번째인지 마흔 네 번째인지 추궁하지도 않고, 1943년 프랑스 프랑의 환율도 물어보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가 슬플 때 당장 해가 지도록 명령해줄 수는 없지만, 해 지는 것을 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겠다. - P165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등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
내가 한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 P187

그 생생한 공포의 끝자락에는 우울이 묻어나왔다. 갈 곳이 있어도 갈 곳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던 고등학생처럼, 폭주하는 고릴라 역시 거기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유인원사에 울려퍼지던 기괴한 포효 소리, 그 큰 덩치로 온몸을 유리벽에 던질 때마다 강한 진동으로 전해지는 쿵쿵 쾅쾅 소리. 나는 그 앞에 조금 비켜서서, 동물과 동물원과 세상살이와, 공포와 불안과 분노와 우울과 텅 빔과 쓸쓸함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얻고, 또 많은 생각을 비워냈다. 쓸쓸함과 무시무시함이 교차하던 저물녘의 유인원사는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을 한껏 가련하게 여기면서도 자꾸만 찾아가서 기꺼이 관람객이 되는 나는 트랄파마도어에서 온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랑꾼이다. - P222

달의 앞면에선 늘 지구가 보인다. 하늘의 어느 한쪽에 거대한 파란 보석 같은 지구가 떠 있다. 지구는 달보다 네 배나 크다. 다시 말하면 달에서 보는 지구는 우리가 지구에서 보는 달보다 네 배나 큰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지구가 떠 있는 하늘을 가질 수 있다니, 숨쉴 공기도 없고 먹을 유기물질도 없는 척박한 그곳으로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 든다. 게다가 달에서 보는 지구는 마치 선반에 올려놓은 오르골 장식품처럼 달 하늘 어딘가에 떠서 제자리에서 천천히 돈다. 낮에도 밤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지구의 위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달에 집을 짓는다면 지구로 향하는 창을 낼 것이다. 창문이 곧 생동하는 액자가 될 테니. - P230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 한 시간에 15도, 그것은 절대로 멈춰 있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휘둥그레 떴던 밤을 기억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 순간 살아 움직이며,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 견디기 힘든 삶의 파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물 아래 납작 엎드려 버티고 버텼던 내 몸을 달래며, 적도의 해변에 앉아 커피 한잔 놓고 눈멀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한낮의 열기가 다 사위고 나면, 여름밤의 돌고래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아주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 P253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we’라고 칭한다. (...)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받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 - P265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대체 어떤 책을 쓴다는 거야?’ 원고를 쓰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질문을 오래도록 품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책장에 꽂힌 김중혁 작가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고 되겠지.’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 - P270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어느 별 볼 일 없는 천문학자에게는 또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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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5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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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소설이다. 같은 책을 다른 나이에 다시 읽는다는 건 여러모로 재미가 있다. 그때와 다른 곳을 밑줄 치는 재미도 있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느끼는 재미도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진희가 그저 조숙한 어린이로만 느껴졌었는데, 지금 접하는 진희는 왠지 모르게 어렵게 느껴진다. 그의 생각에는 여전히 공감 가는 부분이 있지만, 그의 행동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너무 특화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 실제로 주변에서 진희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마냥 솔직하고 편하게만 대하긴 힘들 것 같다. 그게 진희의 잘못은 아니고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긴 거라는 것도 알지만, 어른이 된 진희를 보면 더 어려운 사람이 됐구나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소설의 후반부이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통해 자란 사람들의 앞으로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영옥과 홍기웅도 중간의 시련이 없었다면 지금의 만남 또한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혹여 그전에 스친 인연이 깊게 이어졌다 하더라도 (이형렬이나 허석이 아닌 홍기웅과 바로 교제했더라도) 그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을 헤쳐 나온 지금의 영옥과 홍기웅이기에 그들이 나눌 앞으로의 사랑 또한 기대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그때는 몰랐던 새의 선물이란 제목의 의미를 이제야 가늠하게 되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다 새의 선물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나는 지금도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한다. 쥐를 똑바로 보면서 어금니에 고인 침 사이로 스테이크를 씹어넘기듯이. 그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 P10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이십 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그러므로 내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돼왔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거리 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한다. - P12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내 몸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몸속에 남아서 몸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 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
물론 그중에서 진짜 나는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바라보는 나’이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 P23

진짜의 나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이 위선이나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꾸며 보이고 거짓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일은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위’라는 말을 알게 된 뒤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졌다. 나의 분리법은 위선이 아니라 작위였으며 작위는 위선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아는 어른들의 비밀을 털어놓는 데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빚진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 P24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이쁘고 좋기만 한 고운 정과 귀찮지만 허물없는 미운 정이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제나 고운 정으로 출발하지만 미운 정까지 들지 않으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운 정보다는 미운 정이 훨씬 너그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확실한 사랑의 이유가 있는 고운 정은 그 이유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지만 서로 부대끼는 사이에 조건 없이 생기는 미운 정은 그보다는 훨씬 질긴 감정이다. 미운 정이 더해져 고운 정과 함께 감정의 양면을 모두 갖춰야만 완전해지는 게 사랑이다.
(...) 어쩌면 미운 정이란 고운 정보다 훨씬 더 얻기 힘든 무르익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 P150

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런 떠남을 생각하며 아줌마는 사라진 버스 쪽을 그렇게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것이리라. - P164

삶의 이면을 많이 알다 보면 매사에 의심이 많아지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이해심이 많아지는 면도 있는 것이다. - P209

사랑은 자의적인 것이다. 작은 친절일 뿐인데도 자기의 환심을 사려는 조바심으로 보이고, 스쳐가는 눈빛일 뿐인데도 자기의 가슴에 운명적 각인을 남기려는 의사표시로 믿게 만드는 어리석은 맹목성이 사랑에는 있다. 허석이 다만 한번 쳐다본 것을 가지고 그것이 ‘이렇게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너’라는 의미라도 되는 듯이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진정 나는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 P221

슬픔. 그렇다. 내 마음속에 들어차고 있는 것은 명백한 슬픔이다. 그러나 나는 자아 속에서 천천히 나를 분리시키고 있다. 나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슬픔을 느끼는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바라보는 나’는 일부러 슬픔을 느끼는 나를 뚫어져라 오랫동안 쳐다본다. 찬물을 조금씩 끼얹다보면 얼마 안 가 물이 차갑다는 걸 모르게 된다. 그러면 양동이째 끼얹어도 차갑지 않다. 슬픔을 느끼자, 그리고 그것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보자. - P229

아이들은 그제야 자기들이 아무리 민주 선거의 원칙을 배워 실천해봤자 ‘하늘이 볼까 무서워’ 고무신 한 켤레 준 후보에게 투표한 할머니가 받아들인 바로 그 현실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시험문제를 풀 때는 정답을 쓰겠지만 현실에서는 정답을 다른 식으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으로 세상을 아는 것처럼 생각되었고 그리고 그것을 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믿었다. 대의원들은 교과서에서는 배우지 못하고 직접 선생님을 통해 배운 그 방법을 반 아이들에게 써먹었다. 반장에게 잘 보이지 못한 아이들은 자습시간 내내 잠만 잤어도 가장 떠든 사람 1순위로 적혀서 선생님에게 보고되었다. - P233

가려운 곳을 긁는다는 것은 짜릿한 맛이 있다. 바로 그 맛을 위해 할머니는 매일 가려운 곳을 일부러 찾는 건 아닐까. 가렵다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가려운 곳이 없으면 어떻게 긁는 순간의 쾌감을 느낄 것인가. 할머니가 가려움증을 찾듯이 나도 일부러 그리움을 불러들이는 것인가. - P274

사랑이 아무리 집요해도 그것이 스러진 뒤에는 그 자리에 오는 다른 사랑에 의해 완전히 배척당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배타적인 속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랑, 새로운 사랑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 P275

불안 때문이었을까. 아줌마처럼 강인한 사람은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자기가 익히 아는 일은 어떻게든 이겨나갈 자신이 있다. 그러나 새롭게 닥쳐올 일에 대해서는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 그것이 아줌마처럼 자기 생에 대한 의지는 강하되 자기 생을 분석할 줄 모르는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 P296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 우연히 닥쳐온 불행을 이겨내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만듦으로써 더 많은 불행을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 P301

사람의 감정이란 언제 변할지 모르며 특히 젊은이를 변심하게 만드는 일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상대가 나를 사랑할 때 내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은 상대의 사랑을 잃을 때 내가 불행해진다는 것과 같은 뜻임을 깨닫고 그 사랑이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한편 그것이 사라질 때의 상실감에 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타인을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은 있지도 않다는 것을 이모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 P373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 P380

사람의 마음에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은 굳이 할머니 말씀을 듣지 않아도 나 스스로 체득한 지 오래이다. 나는 선이나 악 모두가 내 마음 깊이에 똑같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중 어느 한쪽만을 나의 진실한 모습이라고 주장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선한 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지만 악에 대해서는 실수라거나 충동이라거나 하는, 자신의 통제로부터 이탈되었다는 뜻의 이름을 달아 진정한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은 삶을 위대하고 진지한 것, 아름다운 것으로만 보려는 서정적 인간임에 틀림없다. - P381

물론 순간적인 느낌일 뿐일 것이다. 아무리 실연의 상심이 컸다 한들 이모는 이모이고 며칠 사이에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는 없다. 내가 유의한 것은 이모가 변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모의 내면에 다른 모습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모의 내면에는 수많은 다른 모습들이 함께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들 중에 하나씩을 골라서 꺼내 쓰는 제어장치, 즉 이모의 인생을 편집하는 장치가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면 이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 P395

"이상하게 보이냐? 내가 벌레를 먹는 것이나 내 몸이 벌레들에게 뜯어먹히는 것이나 다 좋은 일이지. 벌레들한테 뜯어먹히면서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게 바로 죽음이고. 진희야, 그러니 죽는다는 건 얼마나 평화로운 일이냐……" - P421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 P445

심장. 그곳은 내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육체였다. 내 몸을 모두 내 마음대로 정지시킬 수 있건만 심장만은 그럴 수가 없었으며 그 박동은 나 스스로 원치 않는데도 무의미한 열정을 가속시킬 때가 있다. 나는 마치 심장을 쥐어짜듯 작은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나의 심장의 박동이 무의미한 열정을 싣고 가속될 때가 있었다. 그리고 목이 비틀어진 뒤에도 여전히 죽음의 공포로 팔딱거리는 닭의 심장처럼, 박동이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한순간 멈춰져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심장의 박동은 생명력이기도 하지만 한편 자기 존재에 대한 무력감이기도 했다. - P446

90년대지만 지금도 세상은 나의 유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베트남전이 일어나고 있고 아이들은 선생님에게서 위선과 악의를 배워가며 이형렬들은 군대에서 애인을 구하고 뉴스타일양장점의 계는 깨졌다가 다시 시작되며 신분상승을 위한 미스 리의 교태가 반복되는 한편에서 광진테라 아줌마는 둘째아이를 가짐으로써 뒤웅박 팔자 속에 구덩이를 판다. 정여사 아줌마의 남편들은 아직도 감옥에 있으며 유지공장의 불 같은 뜻밖의 재난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아가고 그 사고는 이내 잊혀진 뒤 반복되며 사고가 잊혀진 뒤까지도 그때 대동병원이 번 돈처럼 돈들은 증식을 계속한다.
그때 젊은이였던 이들이 장년이 된 지금도 요즘 젊은이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과 다르다는 탄식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사랑은 여전히 배신에서부터 시작한다. - P473

누가 누구를 배신한 것이며 누구의 배신이 더 심각한가 따위, 배신의 진앙과 진도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런 것을 따지다보면 결국 우리는 스스로 의도하진 않았다 할지라도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지도 모른다. 마치 서로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 심상하게 얽혀 짜여져 있지만 이 삶 속에서 누군가의 적이 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삶 속에는 타의가 있는 법이니까. - P474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90년대가 되었어도 세상은 내가 열두 살이었던 60년대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나는 아폴로 11호를 보고 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수챗구멍과 변소 구덩이를 오가는 쥐의 태연하고 번들번들한 작은 눈, 긴 꼬리의 유영, 그리고 그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회색의 일과들을. -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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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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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오 거스키가 쓴 <사랑의 역사>에는 여러 사람의 인생이 얽혀있다. 이래저래 꼬여있는 넝쿨을 이야기를 따라 하나씩 풀어 나가다 보면 전혀 접점이 없어 보였던 이들의 관계가 조금씩 드러나며 이야기의 전체 윤곽이 잡히게 된다.

 

니콜 크라우스가 쓴 책과 레오 거스키가 쓴 책 제목이 <사랑의 역사>로 같다는 설정과 레오 거스키-앨마-즈비 리트비노프가 축이 되어 맞물려가는 이야기의 흐름은 무척 인상적이다. 각 장마다 담겨 있는 레오 거스키의 생각과 그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노쇠는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의 친구 즈비 리트비노프가 레오 거스키를 보며 느끼는 열등감과 질투 또한 우리에겐 익숙한 감정으로 이런 장치들이 하나씩 모여 그들의 서사에 더한 깊이를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소녀 앨마와 레오 거스키의 대화가 담긴 마지막 장으로, 레오 거스키가 그의 상상의 친구 브루노와 나누었던 두드리기를 소녀 앨마와의 문답에도 그대로 인용하는 부분이다. 이는 무척 감동적이면서도 우리에게 잊지 못할 여운을 선사한다. 거기다 브루노라는 상상의 인물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했던 레오 거스키의 외로운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오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책과 사람 간의 인연. 레오 거스키가 쓴 <사랑의 역사>가 여러 사람의 인생을 거쳐 전해져 왔듯이 니콜 크라우스가 쓴 <사랑의 역사> 또한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 소중한 인연의 한 줄기에 나 또한 함께 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나이가 더 들고는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재하는 것들에 대해 쓰려고 했다. 세상을 묘사하고 싶었다, 묘사되지 않은 세상에 사는 것은 너무 외로웠기에. - P16

때때로 나는 내 책의 마지막 페이지와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하나이며 똑같다고 믿었다. 책이 끝나면 나도 끝날 거라고, 큰 바람이 방을 휩쓸어 원고를 모두 날려버릴 거라고, 허공에 펄럭이던 흰 종잇장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방이 고요해질 거라고, 내가 앉아 있던 의자가 텅 빌 거라고. - P19

모든 상실한 것들에서 받는 타격은 췌장이 전담한다. 상실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비해 그 장기는 너무 작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아낼 수 있는지 알면 놀랄 거다, (...) 어제 한 남자가 개를 발로 차는 것을 봤을 때는 그것을 눈 뒤편에서 느꼈다. 그 부위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눈물 바로 앞자리. (...) 외로움: 온전히 감당할 장기 없음.
매일 아침, 조금씩 더. - P21

어딘가에 말하고 싶다, 용서하려고 노력해왔다고. 그렇긴 하지만. 살면서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던 때가, 아니 여러 해가 있었다. 추함이 나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원한을 품을 때 느끼는 어떤 만족감이 있었다. 원한을 자초했다. 바깥에 서 있는 그것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세상을 향해 인상을 썼다. 그러자 세상도 내게 인상을 썼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혐오의 시선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 나는 암적인 인간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더는 그렇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분노를 어딘가에 두고 왔다. 공원 벤치에 내려놓고 걸어나왔다. 그렇긴 하지만.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아와서 다른 존재 방식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잠에서 깨어나 혼잣말을 했다, 아직 너무 늦진 않았어. 처음 며칠은 이상했다. 거울 앞에서 미소를 연습해야 했다. 하지만 되돌아왔다. 마치 묵직한 추를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내가 내려놓았더니 무언가가 나를 내려놓았다. - P34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을 둘이 처음 만났던 여름만큼 생생하게 유지했다. 그러기 위해 인생을 외면했다. 때로 엄마는 물과 공기만으로 며칠을 버티기도 했다. (...)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머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때로는 몸 전체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뭇잎을 그리기 위해서는 전체 풍경을 희생해야 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한계를 지우는 것 같을지 몰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하늘 전체를 다루는 척할 때보다 무언가의 4분의 1인치 정도밖에 안 되는 부분을 다룰 때, 우주에 대한 어떤 느낌을 붙잡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엄마는 나뭇잎이나 머리를 택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택했고, 어떤 느낌을 붙잡기 위해 세상을 희생했다. - P72

삶은 아룸다워.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것이 삶을 표현하는 말인지도 모르지. 문 반대편에서 브루노가 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연필을 찾았다. 거기에 갈겨썼다. 영원한 농담이기도 하고. 문 아래로 쪽지를 밀어냈다. 그가 쪽지를 읽는 동안 잠깐의 멈춤. 그런 다음, 이제 됐다 생각했는지 그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울었을 수도 있다. 무슨 차이가 있나. - P122

그로첸스키의 입술에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파리. 조용히 그는 페이지를 넘겼고, 조용히 나는 그것을 봤다. 광택 나는 사진에 우리의 입김이 서렸다. 어쩌면 그로첸스키는 내게, 잔잔한 긍지를 느끼며, 자신이 가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가 잡지를 덮고 다시 종이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브가 사과를 먹은 것은 세상에 수많은 그로첸스키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누군가 말했다면, 나는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 P128

나는 세상이 날 맞을 준비를 못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어쩌면 내가 세상을 맞을 준비를 못했다는 게 진실일 것이다. 나는 인생의 현장에 항상 너무 늦게 도착했다. - P130

"넌 어떤데? 넌 지금 이 순간 가장 행복하고, 또 가장 슬프니?" "물론 그렇지." "왜?" "그 무엇도 나를 더 행복하게, 더 슬프게 하지는 못하니까, 너 말고는." - P142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아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행복한 기분이 심장을 살짝 찔렀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뜨거운 찻잔에 손을 덥힐 수 있다는 것이.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인생의 끝자락에서 브루노가 날 잊지 않았다는 것이. - P143

아무리 긴 끈이라 해도 말해져야 하는 것들을 말하기에 충분히 길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끈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어떤 형태의 끈이든, 사람의 침묵을 전달하는 것이다. - P172

그들은 아예 다른 종種이었다. 명백히 그렇다, 리트비노프는 생각했다. 같은 주제에 각자 얼마나 다르게 접근했는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종이에 적힌 단어들을 보았지만, 같은 곳에서 친구는 망설임을, 블랙홀을, 말과 말 사이의 가능성이 펼쳐진 들판을 보았다. 친구는 어룽거리는 빛, 비상의 희열, 중력의 슬픔을 보았지만, 같은 곳에서 그는 평범한 참새의 구체적인 형태를 보았다. 리트비노프의 삶은 실재하는 것들의 무게를 느끼며 기뻐하는 것이었으나, 친구의 삶은 지척거리는 무거운 사실들로 무장한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캄캄한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리트비노프는 자신에게서 무언가 벗겨져나가며 진실이 드러났다고 믿었다. 즉, 그는 평균적인 인간이었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독창성을 발휘할만한 잠재력이 부족한 인간. 비록 이런 생각은 모든 면에서 틀린 것이었지만 그날 밤 이후 그 무엇도 그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 P178

죽음의 공포는 일 년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누가 유리잔을 떨어뜨리거나 접시를 깨뜨릴 때마다 나는 울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남았다. 새로운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나쁜 경우였다. 내가 몰랐을 뿐 언제나 곁에 있었던 무언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인식을 발목에 매단 돌처럼 끌고 다녔다. 그것은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왔다. 나는 머릿속에서 슬픈 노래를 지어내곤 했다. 떨어지는 나뭇잎에 추도사를 바쳤다. 나의 죽음을 수백 가지 다른 방식으로 상상했으나 장례식만은 언제나 똑같아서, 상상 속 어딘가에서 붉은 카펫이 펼쳐졌다. 어떤 비밀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든 언제나 내 위대함은 결국 밝혀졌으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흘러갈 수도 있었다. - P193

도서관을 나왔다. 도로를 건너며 무자비한 외로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어둡고 공허한 느낌이었다. 버려진 채, 간과된 채, 잊힌 채, 보도에 서 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먼지만 모으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서둘러 지나쳐 갔다.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행복했다. 해묵은 부러움을 느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바쳤을 것이다. - P199

그는 진실을 견디며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법. 그것은 코끼리와 함께 사는 것과 같았다. 그의 방은 비좁아서 아침마다 욕실에 가려면 진실 주위를 비집고 돌아가야 했다. 속옷을 한 벌 꺼내러 옷장에 가려면 진실 아래로 기어가면서 그것이 바로 그 순간 얼굴 위에 주저앉지 않기를 기도해야 했다. 밤에 눈을 감으면 진실이 그의 위로 덮칠 듯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P239

넌 물을 사랑했어. 왜요? 왜라니, 무슨 말이야? 내가 왜 물을 사랑했어요? 그게 네 생명이었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애가 손가락을 하나씩 담그게 했을 테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내가 잡아주지 않아도 물에 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아버지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일 테지―아이가 나 없이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그렇다면, 나보다 더 훌륭한 아버지는 없었다. - P251

사랑하고 싶었던 유일한 여인을 잃었어요. 세월을 잃었어요. 책들을 잃었어요. 제가 태어난 집을 잃었어요. 그리고 아이작을 잃었어요. 그러니 제가 그사이 언제인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마저 잃지 않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요?
내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에 나의 흔적은, 나 자신을 제외하면, 전혀 없었다. - P258

엄마를 다시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찾는 일은 그로써 끝이 났다. 내가 무슨 일을 하건, 혹은 어떤 사람을 찾아내건, 나는―그는―우리 중 누구도―엄마가 간직한 아빠의 기억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마침내 이해했다. 엄마를 슬프게 하면서도 위안을 주는 그 기억으로 엄마는 세상을 만들어냈고, 다른 사람은 불가능해도 엄마는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았다. - P277

즈비는 읽고 있던 중국 시가집 어딘가를 펼쳐 그 작품이 나를 위한 시라고 말했다. 제목은 ‘배를 띄우지 마세요’였다. 매우 짧은 시인데,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배를 띄우지 마세요/내일이면 바람은 잦아들 테니/그때 가셔도 돼요/그러면 나도 당신을 걱정하지 않겠어요," 그이가 죽던 날 아침에는 밤새 정원에 몰아치던 엄청난 돌풍과 폭풍우가 그쳤고 창문을 여니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바람 한줄기 불지 않았다. 나는 돌아서서 그이를 불렀다. "여보, 바람이 잦아들었어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럼 나는 가도 되겠군요. 당신도 날 걱정하지 않겠지요?" 나는 심장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바로 그렇게 되었다. - P287

해가 갈수록 아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고 불명확하고 멀어진다. 처음에는 생생하고 정확했다가 점점 사진처럼 바뀌더니 이제는 사진을 찍은 사진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흔치 않은 어떤 순간에는 아빠의 기억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명료하게 떠올라서 몇 년간 눌러놓았던 모든 감정이 상자 속 스프링 인형처럼 튀어나온다. 그런 순간에는 엄마가 바로 이런 느낌으로 살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 P293

이따금 나는 세상이 나와 같은 일정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잊는다. 모든 것이 죽어가는 게 아니라는 것, 혹은 죽어가더라도 해가 조금 비치고 일상적인 격려만 해주면 다시 살아날 거라는 것. 이따금 나는 생각한다, 난 이 나무보다 나이가 많고, 이 벤치보다 나이가 많고, 비보다 나이가 많다. 그렇긴 하지만. 난 비보다 나이가 많지는 않다. 비는 오랜 세월 동안 내렸고 내가 간 뒤에도 계속 내릴 것이다. - P336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때가 있었고,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한 때도 있었다. 최소한 삶을 꾸리기는 했다. 어떤 종류의 삶? 그냥 삶. 나는 살았다. 쉽지는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것이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P340

수백 가지 일들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편지를 받은 때부터 누가 됐든 그것을 보낸 사람을 만나러 갈 때까지 그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 P351

그렇다고 내 삶이 거의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 관해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그 변화 능력이다. 어느 날 우리는 사람이었는데 다음날 그들은 우리가 개라고 한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지만, 한참 지나면 그것을 상실로 여기지 않는 법을 터득한다. 심지어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깨닫는 때도 있다.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들이 아무리 적어도 우리는, 달리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인간으로 살기’라고 칭하는 노력을 여간해서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 P354

군인 남편을 기다리는 데 지친 그 아내 때문에 나는 살아남았다. 남자가 건초 밑에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짓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건초를 쿡쿡 쑤셔보는 것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이 그렇게 꽉 차 있지 않았다면 나는 발각되었을 것이다. 이따금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여자가 그 미지의 남자에게 키스하려고 처음으로 다가선 순간 그녀는 그를 향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혹은 그저 외로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은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 세상 건너편에서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재앙의 정반대였다는 것, 그녀가 생각 없이 베푼 은혜가 우연히 내 생명을 구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으며 그 또한 사랑의 역사의 일부라는 것, 나는 그런 상상을 즐겨 한다. - P358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를 보았다. 가슴이 지시를 내릴 때 머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그녀는 내 기억과 달라 보였다. 그렇긴 하지만. 같았다. 눈, 그 눈을 보고 그녀를 알아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천사는 바로 이렇게 오는구나. 그녀가 나를 가장 사랑했던 나이에 멈춰진 모습으로.
이게 무슨 일이람, 나는 말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인데.
나는 말했다. "제 이름은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 나오는 모든 소녀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 P360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늙은 할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보며 열 살 때 사랑에 빠진 소년을 찾아보았다.
나는 말했다, "이름이 앨마인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의 입술이 떨렸다. 나는 그가 이해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름이 앨마 메러민스키인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팔을 두 번 두드렸다. 할아버지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이름이 앨마 메러민스키이고 미국으로 떠난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내 팔을 두 번 두드리더니 다시 두 번을 두드렸다.
나는 말했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그 아들, 그 사람 이름이 아이작 모리츠인가요?" - P370

심장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난 이렇게 오래 살아왔어. 제발. 조금 더 산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잖아. 아이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었다, 내 사랑이 어떤 소소한 방식으로 그애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못된 문장을 고르게 될까봐 두려웠다. 아이가 말했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그 아들―나는 아이를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 두 번 더 두드렸다.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다른 쪽 손으로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내 손가락을 꽉 쥐었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한쪽 팔로 나를 감쌌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양팔로 나를 감싸안았다. 나는 두드리기를 멈췄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다시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나를 두 번 두드렸다. - P372

그는 혼자 죽었다, 누구에게든 전화를 걸기가 너무 창피해서.
혹은 앨마를 생각하다가 죽었다.
혹은 생각하지 않으려 하다가.
정말이지, 별로 말할 것은 없다.
그는 위대한 작가였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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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 머문 날들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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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이 심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제발트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작가들 대부분이 우리에겐 낯선 사람들이고, 그들이 쓴 작품 또한 접한 적이 없으니 이렇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제발트가 이들의 작품을 하나씩 친절하게 소개해 줬더라면 우리가 접근하기에 좀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여기 있는 제발트의 글들은 이들의 작품을 차례대로 소개해 주기보다는 그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파편적으로 서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비록 <전원에 머문 날들>이 제목에서 느껴지는 첫인상처럼 읽기 편한 책은 아니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이 표현이 무엇보다 책의 내용을 잘 담고 있는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시 한 번 더 연달아 읽었고, 밑줄 친 문장들을 타이핑하면서 그 부분만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파에 올리면서 반복적으로 또 읽어보았는데, 처음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알아보기 쉽게 느껴져 재독하는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낯선 글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여기 나온 작품들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작품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보려 한다. 그럼 지금과는 또 다른 깊이와 방향으로 제발트의 말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헤벨의 산문에서 문장 끝에 카덴차와 음조의 변화를 주어 더없이 웅숭깊은 감정의 순간들을 드러내는 이런 기법을 통해 언어는 내면을 향해 전환되고, 우리는 우리의 팔에 닿는 이야기꾼의 손길을 느끼게 된다. (...) 헤벨은 그의 반음조 내린, 헛헛한 맛을 내며 끝나는 덧붙인 문장들 속에서 생의 연관으로부터 스스로 빠져나와 저기 드높은 망루에 오른다. 그곳은 장 파울Jean Paul이 남긴 유고 속한 메모에 따르면 인간들의 머나먼 축복의 땅을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곳으로, 또다른 격언에 따르면 아무도 가본 적이 없다는 그 고향이다. - P27

나는 하지만 루소의 방에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 이따금씩 호수를 스치며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커다란 포플러나무 잎사귀들이 사부작거릴 뿐, 미동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짙어지는 어스름 속으로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고운 자갈이 깔린 길은 점점 더 환해졌다. 나는 울타리가 쳐진 목초지와 은빛의 고요한 귀리밭, 포도밭과 막사를 지나 그새 칠흑같이 컴컴해진 너도밤나무 숲의 끝자락까지 올랐다. 산비탈에 서자 호숫가 저쪽에서 하나둘씩 불이 밝혀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둠이 호수 자체에서 부상하는 것 같았다. - P56

루소가 이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 쓰고 있는 것처럼 "숲속 그늘 속에서는 내가 잊히고, 자유롭고,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모든 적이 다 사라진 것처럼." - P60

발레산은 산 밑까지 내려온 텁텁한 대기의 베일이 벗겨진 풍경으로 묘사되는데, 그 풍경은 어떤 초자연적인 성격을 지녀서 그곳에 있으면 모든 것을, 자기 자신까지도, 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까지도 금세 잊게 되는 곳으로 그려진다. 루소의 글에 나타나는 투명성이라는 주제를 파고든 장 스타로뱅스키는 "완벽히 맑은 풍경의 순간이란 개인적 실존이 스스로의 한계지점에서 해소되고 대기 속으로 꿈꾸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라고 쓴다. 스타로뱅스키에 따르면, 스스로를 남김없이 투명하게 만들기는 현대적 자서전 문학의 창시자가 품은 최고의 야심이었다. 수정水晶은 이러한 야망의 상징으로, 스타로뱅스키에 따르면 우리는 "그것이 순수한 상태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딱딱하게 굳은 영혼인 것인지" 알지 못한다. - P72

행복과 향락을 약속하는 경제적 번영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쉽게 단념해버리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또한 노동이 있고, 궁핍과 빈곤이 있으며, 어둠이 있다. 켈러의 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유령들이 흔하게 발견된다. - P116

"나는 숲을 뚫고 지나 경작지와 목장을 걸었고, 길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희미한 윤곽이나 어렴풋한 빛이 보이는 마을을 지나갔다. 자정 무렵이 되어 꽤나 널찍한 마을 공유지를 지날 때는 깊은 정적이 대지를 감쌌다. 서서히 움직이는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은 보이지 않는 철새 떼가 공중에서 날갯소리와 함께 울며 날아갔기 때문에 더욱 활기를 띠었다."
켈러의 산문이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게 무조건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특히나 영원의 테두리를 더듬어 나아갈 때야말로 자신의 가장 기막힌 정점에 도달한다는 사실이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한 문장, 한 문장 우리 앞에 펼쳐지는 그의 산문의 아름다운 궤도를 따라 움직여본 사람은 그 산문이 어느 방향으로나 얼마나 그윽한 심연으로 떨어지는지, 또 어떻게 한낮의 햇살이 저 멀리 바깥에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가려 흐릿해지다가 죽음의 암시와 더불어 사라지게 되는지 번번이 전율 속에서 느끼게 된다. - P128

로베르트 발저의 작품이 아무리 박사 학위 논문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해도 어떤 체계적인 분석으로도 포착하기 어렵다는 마르틴 발저의 주장은 이런 점에서 정말로 옳은 지적이다. 그토록 그늘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펼치는 페이지마다 더없이 다정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글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순수한 절망에서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항상 같은 이야기를 쓰지만 절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며, 미세한 부분에서 예리함을 발휘하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지상에 확고하게 발을 디디고 있지만 공중에서 주저 없이 자신을 놓아버리는 그런 작가, 읽는 도중에 벌써 해체되기 시작해 몇 시간 뒤에는 글 속의 하루살이 같은 인물과 사건, 사물 들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는 산문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P153

"네 바지 좀 봐. 밑이 다 너덜너덜해졌잖아. 물론 나도 알아. 바지는 바지일 뿐이지. 하지만 바지는 영혼과 똑같은 상태에 있어야 하는 거야. 다 해진 누더기 바지를 입는 건 그 사람이 얼마나 게으른지 증명해주니까. 그 게으름은 영혼에서 오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누더기 영혼을 가진 거야." 이와 같은 비난은 발저의 누나 리자가 발저에게 이따금 가했던 질책에서 따온 것이리라. 하지만 마지막의 천재적인 표현, 즉 누더기 영혼에 대한 부분은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의식하고 있는 서술자의 독창적이고 기발한 표현일 것이다. 당시 발저는 처음부터 그의 삶에 드리워져 있었던 그림자로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걷잡을 수 없이 길어지기만 할 거라는 예감이 일찌감치 들었던 그 그림자로부터 글쓰기를 통해서,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벗어날 수 있으리라 희망했으리라. 그의 이상은 중력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 P162

"그토록 다감하고 또 탁월하게 느끼는 한 인간이 동시에 그토록 감정이 빈곤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동화 속에서처럼 인생에서도 순전히 가난과 공포 탓에 감정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리라. (...) 발저가 일종의 철두철미한 동화와 공감을 통해서 그 안에 영혼을 불어넣는 방식은 어쩌면, 가장 하찮은 것들에서 입증되는 감정이야말로 결국 가장 처절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듯하다. (...) 여기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은, 사소하다는 듯한 어투로 재와 바늘, 연필, 성냥개비를 논하는 이 대목이 실은 작가 자신의 순교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기원한다. 이 네 가지 사물들은 임의적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고문도구 내지는 자신의 분신을 위해 필요한 도구들, 그리고 그 불이 꺼지면 남는 사물인 것이다. - P170

"내 등은 굽었다"라고, 동명의 산문에서 작가는 보고한다. "머리에서 종이까지 먼 길을 가는 단 한 개의 단어를 따라가느라 몇 시간 내내 몸을 굽히고 앉아 있으니까." 이 작업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지만 불행하게 하지도 않는다고 그는 덧붙인다. - P172

내가 처음으로 읽은 로베르트 발저의 산문은 클라이스트가 스위스 툰Thun에서 잠시 살았던 시절에 대한 것으로, 자기 자신과 글쓰기에 대해서 절망하는 한 인간의 고통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주변 풍경과 함께 다루는 글이다. "클라이스트는 어느 교회 안뜰의 담장에 앉아 있다. 사위가 온통 습하고 후텁지근하다. 그는 가슴이 답답하여 윗옷 단추를 푼다. 저 아래에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에 의해 아래로 던져진 것 같은 노랗고 붉게 타오르는 호수가 있다. 생명을 얻은 알프스산은 경이로운 몸짓으로 이마를 물속에 담그고 있다." 그후 나는 몇 쪽 되지 않는 이 이야기에 거듭해서 빠져들었고, 이 작품을 시작으로 발저의 나머지 작품들을 답사하는 짧고 긴 여정들을 떠나곤 했다. - P185

중요한 것은 맹렬한 노동의 동물인 우리와 종속적이고 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물들의 자율적인 현존이다. 그런데 그 사물들은 (보통은)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으므로, 우리가 그것들에 관해 아는 바보다 그것들이 우리에 관해 아는 바가 더 많다. 그 사물들은 우리와 함께한 경험을 지니고 다니며―사실상―우리 자신의 역사가 쓰인 우리 앞에 펼쳐진 책 그 자체이다. - P198

인생은, 운명이 사람을 말 대신 잡고 두는/ 밤과 낮이 격자무늬를 이루는 체스판이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움직여 잡고, 죽이고/ 하나씩 하나씩 상자로 돌려보낸다.
얀 페터 트리프의 그림들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전적으로 프루스트의 규정을 따라 덧없는 순간들과 성좌들이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남으로써 중지되는, 지나가고 있고 지나갔으며 잃어버린 시간의 주제와 연결된다. 빨간 장갑 한 짝, 다 타버린 성냥개비, 도마 위의 작은 양파 한 개와 같은 사물들은 자신 안에 모든 시간을 품고 있으며 화가의 헌신적인 노고를 통해 영원히 구원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물들을 감싸고 있는 기억의 아우라는 사물들에 멜랑콜리의 결정을 이루는 일종의 추모Andenken의 성격을 부여한다. - P208

놓쳐버린 시간과 기억의 고통, 죽음의 형상이 자기 자신의 삶에서 가지고 온 인용으로서 여기 추모함 속에 모아져 있다. 추모란 인용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전혀 없지 않던가. 텍스트에 (또는 이미지에) 집어넣은 인용은 움베르토 에코가 썼듯이 다른 텍스트와 이미지 들에 대한 우리의 앎과 더불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을 점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금 시간을 요청한다. 우리는 그러한 시간을 들임으로써 이야기된 시간과 문화적 시간 속으로 진입한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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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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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펼쳤을 땐 조금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소재도 아니었고, 초반부터 생소한 이름들이 나오면서 복잡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앞으로 나아가기가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차근차근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을 잡을 수 있었고 중, 후반부에 가서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성과 비이성의 대립을 반영하는 이븐루시드와 가잘리의 논쟁두니아가 이끄는 제로니모 무리와 거마 주무루드가 이끄는 마족 무리의 대결로 펼쳐진다. 인간과 마계의 전쟁이 시작된 거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인물들과 마족들의 개인사와 역사는 이 책의 내용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이븐루시드와 가잘리가 나누었던 티끌과 티끌의 논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이야기 기생충이 나오는 우냐자족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솔직히 취향에서 많이 벗어난 책이라 독파가 아니었다면 찾아 읽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읽을 때도 다 읽고 나서도 이 책으로 파생되는 이야깃거리는 많을 것 같다



어떤 공동체든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마디로 어떤 상황인지 합의조차 할 수 없다면 이미 위기에 빠진 공동체입니다. - P126

왜 하필 나냐, 이 질문을 자제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어떤 일이든 원인은 있겠으나 반드시 무슨 목적이 있으란 법은 없다는 고통스러운 진리를 깨닫기 시작한 터였다. 설령 어떤 일이 어쩌다 일어났는지 알아내더라도-어떻게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더라도-왜라는 질문의 해답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은 아니다. 질병과 같은 자연의 이상 현상은 동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응답하지 않는다. - P156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 속에 갇혀 있어요. (...)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이야기 속에 갇힌 수감자 신세, 모든 가족은 가족사의 포로, 모든 공동체는 또 그들만의 이야기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고, 모든 민족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역사의 피해자가 된다. 세계 곳곳에서 이야기끼리 맞붙어 전쟁을 벌이는데, 양립할 수 없는 둘 이상의 이야기가 같은 공간을 차지하려고, 말하자면 같은 지면을 차지하려고 싸우기 때문이다. - P171

이게 우리의 비극이죠. 우리는 온갖 허구 때문에 죽어가지만 어쩌면 그런 허구가 다 사라져도 죽으리라는 것. - P173

진정한 현실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안다. 세상은 평범한 시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칠고 사납고 기이하다. 평범한 시민은 진실을 외면하고 베일로 눈을 가린 채 무지한 상태로 살아간다. 베일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면 두려워지고, 확신이 무너지고, 기가 꺾이고, 결국 술이나 종교로 도피하게 된다. 이 세상은 원래 그대로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놓은 세상이다. 그는 스스로 구상한 세상에 살고, 이 세상을 잘 다루고, 이 세상을 움직이는 조종간이나 엔진, 끄나풀이나 열쇠가 무엇인지, 어떤 단추는 눌러야 하고 또 어떤 단추는 누르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 그가 창조하고 조종하는 진짜 세상이니까. 험한 세상이지만 상관없다. - P196

이븐루시드가 가잘리에게, 티끌이 티끌에게 말했다. "비이성은 비이성인 까닭에 자멸하기 마련이오. 이성이 잠깐 토막잠을 잘 때도 있지만 비이성은 아예 혼수상태에 빠질 때가 많으니까. 결국 비이성은 영원히 꿈속에 갇혀버리고 마침내 이성이 승리할 거요."
그러자 가잘리가 말했다. "인간이 꿈꾸는 세상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세상일세." - P210

활동적인 사람이(혹은 마족이) 마침내 사색을 통해 스스로 나아지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를 경계해야 한다. 어설픈 사색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 P211

이븐루시드는 두니아의 몸을 어루만질 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찬양해 짜증이 날 정도였다. 내 생각은 칭찬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자 그는 정신과 육체는 하나라고 대답했다. 정신은 인체의 틀이므로 인체의 모든 활동을 좌우하는데 그중 하나가 생각이다. 따라서 육체를 칭찬하는 것은 그것을 지배하는 정신을 칭찬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말했고 이븐루시드 자신도 동의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이 육체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는 신성모독적인 말을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기도 했다. 정신이 육체에 깃든 것이라면 육체 없이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븐루시드는 플라톤은 달랐다고 인정했다. 플라톤은 정신이 새처럼 육체 안에 갇혀 있으며 그 새장을 벗어나야 비로소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다고 믿었다. - P217

우리는 수없이 되풀이되며 입에서 귀로, 귀에서 입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이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경험담이지만 때로는 한 사람의 작품으로 여기기도 한다. 호메로스, 발미키, 비야사, 셰에라자드.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간단히 ‘우리’라고 칭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생물인지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생물이다. 우리에게 전해진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면서 처음에 지녔던 특수성을 잃어버리는 대신에 본질적 순수성을 얻어 이야기 자체만 오롯이 남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혹은 우리가 선호하는 표현으로는 그러한 이유로, 비록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우리 스스로는 알 수 없지만 비로소 우리가 아는 이야기가 되고, 우리가 이해하는 이야기가 되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우리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 P271

아이라가이라는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계이기에 이렇게 온 나라가 매달려 만들어야 할까? 뱃사람은 이 기계 속에 배를 통째로 밀어넣고 농부는 쟁기를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기계를 만드는 거대한 공장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동안 그는 기계 속에 호텔을 짓는 호텔 경영자도 보고 영화촬영용 카메라와 방직기도 보았지만 호텔에는 손님도 없고 카메라에는 필름도 없고 방직기에는 헝겊 쪼가리도 없었습니다. 기계가 커질수록 의문도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여기저기서 기계를 만들 공간을 마련하느라 동네를 송두리째 밀어버렸는데, 아이라가이라가 보기에는 기계와 나라가 이미 동의어가 되어버린 듯했습니다. 이제 나라 안에는 그 기계 말고는 남은 공간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 P276

그게 바로 나야! 그녀가 외쳤다. 나야말로 아무런 목적도 없는, 고작 영광처럼 허무맹랑한 목적을 내세운 기계를 만드느라 고생고생하며 기나긴 세월을 허비했어. 그런 노력이 자멸의 길인 줄도 모르고 내가 만들려 했던 기계는 바로 내 삶이고, 기계 따위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목적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영광을 차지하는 일이었어. 나야말로, 대장장이나 선생이나 철학자가 아니라 나야말로 질병과 건강의 차이를, 전염병과 치료법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던 거야. 너무 비참해서 나는 아버지가 딸을 멸시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건강한 상태라고, 오히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게 재앙이라고 믿었어. 그런데 이제야 진실이 드러난 거야. 아버지는 탈이 나셨고 나는 멀쩡해. 아버지를 중독시킨 독이 뭐냐고? 아버지 자신이겠지. - P285

의미란 여러 조각이 없어져버린 퍼즐과 같아서 인간이 친밀도를 바탕으로, 즉 자기가 잘 아는 파편들을 가지고 형성해가는 것이다. - P286

인간은 시계의 포로다. 주어진 시간이 지독하게 짧기 때문이다. 인간은 구름의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이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 P288

험담이란 말로 빚은 진흙 같은 것, 진흙이 으레 그렇듯이 찰싹 달라붙기 때문이다. - P296

이것은 우리 인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인데,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라서 때로는 이것이 역사인지 신화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어떤 이들은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누구나 동의하는데,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곧 현재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환상적인 이야기, 상상을 다룬 이야기는 곧 현실을 이야기하는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할 텐데,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무의미한 일을 가급적 피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역사를 탐구하고 서술할 때 자문해보는 질문이 바로 이거다. 거기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 P304

역사는 얼마나 불완전한가! 반쪽뿐인 진실, 무지, 속임수, 가짜 단서, 착오, 거짓말 등의 오리무중 어딘가에 진실이 묻혀 있으련만 우리는 믿음을 잃어버리기 쉽고, 그래서 다 허깨비다, 진실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의 절대적 신념이 또 누군가에게는 망언에 불과하다, 그렇게 말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이란 한낱 상대주의 궤변가의 주장만 듣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이라고 강력히, 정말 강력히 강조한다. 진실은 반드시 존재한다. - P322

정보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면서 이미 아는 사실만 이야기할 때 비로소 대중은 더 신뢰하기 마련이다. - P323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서서히 깨닫는 중이었다. 공중부양을 겪었다는 것까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도 견뎌내고 받아들였다. 하강은 무심결에 해낸 일로 떠오를 때만큼이나 뜻밖이었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일찍이 상상조차 못했던 비밀 자아가 눈을 뜬 결과라는 것도 이해했다. 그러나 지상으로 다시 내려오는 데 어쩌면 인간적 측면도 함께 작용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잘못했다는, 자기가 잘못한 탓이라는 생각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허공에 떠 있던 외로운 시간 동안 그는 일생의 온갖 어두운 기억을 직시했다. 예전의 인생과 결별하는 아픔, 그를 외면하고 그 역시 외면했던 인생행로에 대한 번뇌. 그는 이 깊은 상처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보여줌으로써 고통보다 강해졌다. 그리하여 중력을 되찾아 지상으로 내려왔다. 최초 감염자가 질병의 근원으로 끝나지 않고 치유의 근원이 되었다. - P326

사람이 죽음 근처에 가보고 나면 사랑의 용량이 커진다. - P363

인식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마족의 사악하고 극악무도한 모습은 곧 인간의 극악무도하고 사악한 일면을 비춰주는 거울과 다름없음을 깨달았고, 인간의 본성에도 똑같은 무분별이 있어 무자비하고 괴팍하고 악의적이고 잔인함을, 마족과의 싸움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싸움과 닮았음을, 따라서 마족은 현실인 동시에 추상적 개념임을, 그들이 하계로 내려오면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근절해야 하는지 보여주었음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비이성이었고, 비이성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는 흑마족의 이름이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테리사 사카의 자기혐오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가 이미 알듯이 제로니모 자신도 내면에 깃든 마족 자아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마족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의 무분별도 물리쳐야 비로소 이성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 P397

분노는 제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결국 분노한 자를 망가뜨리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으로 인해 새로 태어나듯이 증오하는 것으로 인해 몰락하고 파멸한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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