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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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서 지나온 역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가 꿈꾸는 나의 삶에 대해서도 정해진 미래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번 반복하여 익히고 걸치고 입어버리면 어느 순간 겪어버릴지 모를, 그렇게 익숙해진 미래를 손에 만져본 적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오늘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스스로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며 걷던 수미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던 윤미 언니 그리고 절대로 모욕당한 게 아니라고 믿으며 버텼던 최명환이 내가 힘들 때마다 기억 저 언저리에서 떠올라 나를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빗나갈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정해진 미래라고 우리는 미래에 마주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고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익히고 걸치고 입어버리면 나는 그 순간을 어느 순간 겪어버릴지 모른다. 미래에 익숙해지고 미래를 손에 만져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문을 열고 나가 하던 일을 가던 길을 이어나갈 것이다. - P17

과거의 사람들이 가져오려 애쓰던 미래는 여전히 미래로 여겨지고 내가 그리는 미래도 미래에는 다시 되살리고 싶은 미래가 될 것이다.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P18

이 부분을 읽다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어떤 시간들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고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 - P91

그들이 반복한 것은 그때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면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미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미래를 연습하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지만 끝을 내고 매듭을 지어버리는 일,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왜인지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믿고 살아내어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겨 반복하여왔을 것이라는 짐작은 계속되었다. - P92

그들이 손으로 만지고 반복한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지 다시 생각하다가 그것을 묻고 되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다면 끌어온 미래도 이미 일어난 과거로 혹은 지금 살아가는 현재로 믿을 수 있는가. - P96

나를 둘러싼 어른들이 올바르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어른들이기를 바랐다. 이제는 스스로 그러한 어른이 되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100

길을 건너면 다가오는 바다는 나를 휘감고 어쩐지 너는 이렇게 걷다가 사라지게 될 거야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것처럼 잠이 들게 될 거야 말하는 것 같았다. 잠이 들면요? 눈을 뜨면 다음날이 되고 다시 걷고 너는 그 일을 반복하게 된다. 대체 어디서요? 나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 P111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며 걸었다. 그렇게 나와 비슷하지만 내가 아닌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곧 사라질 사람들이 된 것처럼 스스로를 여기며 걸었고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생각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늘 때로는 그것만이 생생했다. - P124

내가 알게 될 뻔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들을 입안에 머금은 채 가끔 침을 모아 삼켰다. 삼켜지지 않으면 괴로운 표정으로 걷다 물을 마셨다. 그러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 P124

지금도 나는 누군가 죽어도 좋다는 이야기/ 어떤 사람들은 나라에서 쓸어버려도 좋다는 이야기/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은 흐름에서 탈락되어 죽어버려도 좋다는 이야기/ 그런 사람들은 폐를 끼치지 말고 얼른 죽어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어쩌면 매일 내가 듣는 것은 보는 것은 얼른 그것을 행하라는 사인일지 모르겠고 우리가 공평하고 공정하게 두 손에 각각 빵 하나씩을 쥐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누구도 빵을 세 개 쥐어서는 안 되고 손이 없는 자는 손을 내밀 수 없으므로 그것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것은 낭비이고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동안 실수가 생길지 모르므로 손이 없는 자가 빵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세상 모든 곳에서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 P149

티보가의 사람들에게 자크에게 앙투안느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실제로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자크를 보고 있었고 자크도 나를 믿을 것이다.
내가 부산에서 휴일의 며칠을 보내고 있던 사이 자크는 어느새 제네바로 가 있었고 혁명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기사를 쓰며 돈을 버는 자크는 제네바의 여름 한낮을 걷는다. 나는 20세기 초의 내리쬐는 햇빛은 지금과 다를 것인지 분명히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계절의 묘사는 어느 때고 생생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을 하자 내일 아침 창으로 쏟아져내릴 햇살이 미리 손에 쥐여진 것 같았다. 자크가 걷는 여름의 제네바가 한밤의 내가 있는 곳으로 순간적으로 머물다 가고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나는 제네바의 여름 한낮이 예고 없이 다시 또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는 그 순간들과 함께 누워 있었고 생생하게 닥쳐오는 책 속 사람들을 생각했고 그러다보면 그 공기 안에서 잠이 들 수 있었다. - P151

내가 보았던 사쿠라이 다이조의 연극 중에는 ‘미래 기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연극이 있었다. 일본어로 진행되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그 제목을 가끔 떠올렸다.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미래를 기억이 되도록 살아가고 있을 때 어느 날 그것이 보인다면 그럼에도 그것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미래로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 P153

책벌레 멘델이 나오는 츠바이크의 단편을 읽었다. 책벌레 멘델은 보통의 독서가의 수준으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책을 읽고 알고 있었다. 그는 늘 카페 글루크에 앉아 자신의 세계에서 책을 만나고 그 세계는 정말로 견고하여 테이블을 두드리는 정도로는 타인의 존재를 알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얼마나 다정하고 예의를 갖추었던가, 전쟁이 그들에게서 그러한 덕목을 앗아가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멘델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스포르쉴 부인의 손을 내 두 손으로 잡고 거기에 이마를 대고 잠들고 싶었다. 그러면 그 옆에는 앙투안느가 앉아 모두의 인생을 걱정하고 앞으로 모두들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알려줄 것이다. 어쩐지 그 세계는 나를 사랑하던 개 두 마리가 살던 곳과 멀지 않을 것 같다. - P164

그가 해주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그가 감추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동시에 그것을 감추고 있을 것이다. - P167

80년 5월 27일 이후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물을 뿌리고 청소를 하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빗자루를 들고 나서면 피가 거리에 흐를 것이다. 그 냄새와 공기와 광경을 모르고 모르고 모른다. 사람들은 청소를 하고 또 하고 거리는 서서히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은 학교로 돌아가고 회사로 돌아가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80년 6월은 80년 4월과 같은 곳인가 가망 없고 백치 같은 생각을 하고 - P192

81년의 82년의 시간이 광주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80년 5월 이후에도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부산 미문화원에 불을 붙인 이들을 참을 수 없게 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동시에 이 역시 착각일 수 있음을 생각하면서 창밖을 보면 열차는 목적지가 없고 열차는 끝없이 달릴 것 같고 끝없이가 과장이라면 열아홉 시간쯤 달릴 것 같다.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달릴 것 같다. - P193

나는 이전에 광주 전남 지역의 미술인들이 80년 겨울, ‘2000년을 위한 파티’를 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2000년은 미래이고 무엇보다 뚜렷한 미래여야 하고 80년 겨울, 2000년의 미래를 스스로 익히고 삼켜내지 않으면 살아갈 힘이 없을지 모른다. 2000년은 광주의 진실이 알려진 미래이며 민주적인 미래이다. 서울의 부산의 대구의 대전의 제주도의 사람들은 80년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누가 그 일을 지시했는지 알고 있고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2000년은 그러한 미래이며 우리는 파티를 여는 동안 그러한 미래를 살고 있다. - P193

당연히도 지금 옥상에 올라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강렬하고 선명한 주황색의 하늘이 이건 마치 끝이에요 지구는 이걸로 끝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늘이 어두워지고 모두에게 익숙한 어둠이 찾아오면 우리는 또 이런 식으로 하루를 접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끝을 보게 되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여러 번 연습한 끝을 익숙하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 P211

괜찮은 사람이 되려면 한번 죽지 않으면 안 돼요, 누가 그런 소리를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것을 듣다가 한번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거야? 아니면? 죽은 사람이어야 하는 거야? 살아 있는 사람은 가망이 없다는 거야? 물으며 계단을 올랐다. - P215

언제나 그렇듯 순간순간 이해했다고 착각한 장면을 무척 좋아하면서 그것을 품은 채 다음 걸음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 아마 이 책의 끝에는 사이토 마리코 선생님이 쓴 추천사가 들어갈 텐데 82년 부산을 산책하는 또다른 이야기가 소설을 다 읽은 분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걷다보면 이미 가보았던 길일 수도 있고 걸어도 걸어도 처음 가본 길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 산책을 여러 번 그려볼 것이다. 그런 것은 정말로 좋다. - P243

지금이라는 시간이 미래에도 과거에도 통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멋지고 동시에 슬픈 걸까. 그러나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라고 작가는 묻는다. 그 해답을 찾으려 애쓰는 것쯤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란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누군가가 줄기차게 계속하고 있는 연습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박솔뫼의 상상력이 그것을 가시화한다. - P245

이제 열심히 늙어갈 수밖에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조금밖에 없다. 하지만 "옆으로 뛰는 어린 사람을 응원하고 어딘가로 잘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분명 제대로 도착할 거야 확실하게 말하고"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걸고 싶은 말이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힘이 나에게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게 생각하게 해준 ‘이야기의 힘’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소설 속의 작가가 『티보가의 사람들』의 자크나 앙투안느를 친구처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서 도망갈 거야’라고 생각했던 수미나 ‘많은 것을 배우는 어른이 되게 도와달라’라고 기도했던 윤미 언니, 그리고 절대로 모욕당한 게 아니라고 믿으면서 달렸던 최명환을 아끼고 살아갈 것이다.
(...) 한 시대를 절실하게 살았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기억은 어느 시대의 어디에서든 누군가의 연습에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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