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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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 자신이 한없이 하찮고 형편없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우울하고 무기력한 순간들이 찾아오면 순식간에 무거운 감정에 둘러싸여 나 자신에게 못된 마음을 품게 되기도 한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는 그런 우리들에게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나만큼 놀랍고 경이로운 존재는 없다고 따스한 말로 위로하고, 다친 마음을 다독여준다. 그 속에는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마음, 용서하고 믿어주고 사랑하는 마음, 봄의 축복에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이 마음들은 앞으로도 봄처럼 따뜻하게 나를 지탱해 주는 토대가 될 것이다.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해서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위험해. - P10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 P14

무언가를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는 뜻은 아니다. 존재한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보류한다는 뜻이다. 신이나 내세 같은 종교적 요소에 대한 내 생각도 아버지가 외계인에 대해 갖는 생각과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증거가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 P35

내게는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어떻게든 당신이 당신이 되었다는 생각만큼 놀랍고 경이로운 건 없는 것 같다. - P41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 P46

어쩌면 우리는 봄을 사랑하게끔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봄이 왔다는 것은 이제 위험을 벗어났으며 얼어 죽거나 굶주릴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봄의 기쁨은 신앙이나 교리 같은 것과 무관하게 누구든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 P66

어떤 주제와 상징들이 수천 년을 넘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근사하고 감동적인 일이다. - P74

삶의 아주 사소한 신비들까지도 다 찬미하면서 살 수 있다면 우리 일상은 얼마나 많이 달라질까? - P91

과학은 모호함을 허용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믿음을 유보해야 한다. 불확실성 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게 된다. - P98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 - P107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무언가의 부재를 겪지 않고는 그것의 진짜 가치를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헛발질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속죄하지 않고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없듯이. - P126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나는 모르는 게 약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 축복이며, 기쁨을 얻으려면 때로 공포를 직접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시간은 얼마나 짧은지를 진심으로 인정하고도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자,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성장의 정의에 ‘두려움을 마주한다’는 의미가 들어가기도 한다. 무언가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을 해방하고, 내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이 성인이 되는 관문이다. - P141

어떤 정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 정보를 계속 머리에서 밀어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덜 밀어내게 되었다. 그게 나에게는 성장을 향한 큰 걸음이었다. 그러려면 환상을 버려야 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덕에 더 깊은 현실감을 얻었으니 잘된 일이다. 사람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나름의 방법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애착담요를 버리고, 세상의 무시무시한 경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 P143

"사실 우리도 시간여행을 하는 거야." 아빠는 말하곤 했다. "일 초씩 미래로!" - P154

책이란 얼마나 놀라운 물건인가. 나무로 만든 납작하고 잘 휘어지는 물건인데 그 안에 검은색 선이 꼬물꼬물 우스운 모양으로 찍혀 있다. 그런데 그 물건을 한번 들여다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 사람은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일 수도 있다. 저자가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조용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당신의 머릿속에서 말을 건다. 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일 것이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멀리 떨어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책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난다. 책은 인간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증거다. - P156

내가 아버지한테로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대기 중의 공기 입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새도 가끔 그 생각을 한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이 공기 입자 중 일부가 아버지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공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공기를 들이마신다니 얼마나 친밀한 행위인가. - P159

나는 우리에게 옳은 것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옳을 수는 없다는 걸 안다.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쓸 수 있는 유일한 잣대는 그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있나?라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P235

납골당에는 방이 여섯 개 있는데 전부 아주 오래전부터 카푸킨 수도회 구성원들의 유골을 재료로 써서 아주 정교하게 장식해놓았다. 정강이뼈, 종아리뼈, 넓적다리뼈의 방. 엉치뼈, 엉덩뼈, 꼬리뼈의 방. 해골의 방. 수천 개의 인체조각. 지금 우리 몸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마지막 방에는 여러 언어로 이런 문구가 적힌 액자가 있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고, 지금 우리의 모습은 당신의 미래다...... - P278

플레이아데스성단의 별 일곱 개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대신에, 두려움을 무시하는 대신에, 두려움을 존중하고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빛이 사라지기 전까지 빛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야 한다. - P279

너희한테 들려줄 아주 멋지고 대단하고 짜릿한 사실이 있어. 너무 거대하고 장대해서 어떤 인간도 멈출 수가 없는 일이야. 내일부터 다시 낮이 조금씩 길어질 거고, 서서히 다시 꽃이 필 거고, 햇살이 돌아올 거야. 여름이 다가오고 있어. - P311

삶에서 상실을 마주할 때마다 이전의 모든 상실을 다시 겪는다. 하나하나의 작별은 다른 모든 작별이다. (...) 이 상실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일이 내 삶의 최초의 슬픔으로 나를 끌고 간다. 나의 아버지의 죽음. - P333

우주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든 우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고통을 느낄 것이고 거대하고도 광활한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로서의 존재를 다양하게 경험할 것이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각각의 삶의 기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힐지라도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살았다. 우리는 이 거대함의 일부였다. 살아 있음의 모든 위대함과 끔찍함, 숭고한 아름다움과 충격적 비통함, 단조로움, 내면의 생각, 함께 나누는 고통과 기쁨. 모든 게 정말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광대함 속에서 노란 별 주위를 도는 우리 작은 세상 위에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축하하고도 남을 이유가 된다. - P342

몇 주 뒤, 내가 헬레나에게 줄 채소를 찌다가 돌아보니 헬레나가 유아용 의자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가장 가까운 별의 도움으로 땅에서 자라난 음식을 헬레나가 더 크게 자라는 데 쓸 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가능해진 일이다. 헬레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의식을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쯤 신성한 과업을 수행하는 나의 모습이 헬라나의 뇌에 각인되는 중이었다. 언젠가 나는 사라질 테지만, 헬레나는 나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는 헬레나 뇌의 뉴런 안에서, 그리고 핏속의 세포 안에서 조금 더 살 수 있을 테니까. - P349

남편 존, 내 평생의 사랑, 나는 어쩌면 이렇게 운이 좋을까. 변하지 않는 무조건적 사랑과 수없는 격려의 말과 한없는 인내심과 믿음에, 매일매일을 축하할 만한 날로 만들어준 것에 감사해. 당신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광대한 시간 속에서 눈 한 번 깜짝할 만한 순간이라도 나에게는 충분해. - P358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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