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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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이돌 그룹 마자마좌의 멤버로 활동 중인 우에노 마사키의 팬이다. 사실 마사키를 향한 나의 사랑은 팬과 스타의 관계로만 한정 짓기엔 부족할지도 모른다.

 

힘들고 우울할 때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생전 처음 본 사람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 그건 스타 마사키였다. 생애 첫 기억이자 힘들 때 자신을 숨 쉬게 만드는 사람. 그렇기에 마사키를 향한 나의 사랑은 맹목적이고 희생적이다. 돈과 시간을 모두 마사키에게 쏟아 부어도 아깝지가 않다. 마사키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매 순간 그와 함께 살아간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방송을 챙겨보고 녹화하고 녹음하고 분석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단지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마사키를 알아보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를 이해하는 것만이 그에게 가깝게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나는 사회에 적응하는 게 어렵다. 남에게는 쉽게 느껴지는 당연한 일들이 내게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런 나를 선생님도 가족들도 이해하지 못한다. 각자의 아픔만 크게 느끼는 가족들 곁에서 나는 점점 더 메말라간다. 그리고 그럴 때일수록 나는 인간 마사키에게 더 집착하게 된다. 그의 곁에서만 편히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다. 그만이 나를 움직이고 불러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생활에 큰 활력을 준다. 그렇기에 건강한 덕질은 삶에 있어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이 단순한 덕질을 넘어서 자신을 모두 바치고 스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망가뜨린다. 그리고 그건 더 나아가 내가 사랑하는 최애를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 여기에서의 나는 마사키나 그의 주변에 괴롭힘을 가하는 악질적인 팬은 아니다. 누구보다 인간 마사키를 잘 알기에 그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사키가 연예계를 은퇴하게 되면서 나는 결국 무너진다. 마사키로 메운 삶의 구멍들이 다시 벌어지며 넘어지게 된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게만 느껴진다.

 

더 이상 인간이 된 마사키를 쫓아다닐 수 없다. 지금까지 그랬듯 바라보고 해석할 수 없다. 그동안 내가 모았던 모든 것들보다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셔츠 한 장, 양말 한 켤레가 마사키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는 사실은 나를 아프게 한다.

 

척추가 사라진 내게 더 이상 이족보행은 어울리지 않는다. 방에 떨어진 면봉을 주우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나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모두 마무리된다.

 

독특한 제목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얇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살아가는 것만이 급급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척추를 잃고 살아간다. 이런 현실에서 척추가 되어줄 무언가를 다시 잃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하루를 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여전히 씁쓸하고 아프게 느껴진다.

 

그래도 아카리는 대단해. 가니까 대단해.”

지금 학교 가니까 대단하다고 한 거?”

.”

살아가니까 대단하다고 들렸어, 순간.” (11p)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네버랜드에 가자. 코끝이 찡했다. 나를 위한 말 같았다. 공명한 목에서 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소년의 발그스름한 입에서 나온 말이 내 목에서도 같은 말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말 대신 눈물이 차올랐다. 무게를 짊어지고 어른이 되는 것을 괴롭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누군가가 힘주어 말해준 것 같았다. 같은 것을 떠안은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의 작은 몸을 매개 삼아 아른거렸다. 나는 그와 연결되면서 그 너머에 있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18p)

 

짧고 까만 체모 끝에 체액이 달린 꼴이 한심했다. 깎아도 뽑아도 또 자라는 것과 왜 영원히 마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항상 그랬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그랬다. (66p)

 

면봉을 주웠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뼈를 줍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내가 바닥에 어지른 면봉을 주웠다. 면봉을 다 주워도 하얗게 곰팡이가 핀 주먹밥을 주워야 하고 다 마신 콜라 페트병을 주워야 했지만, 앞으로의 길고 긴 여정이 보였다.

기어 다니면서, 이게 내가 사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이족보행은 맞지 않았던 것 같으니까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겠다. 몸이 무겁다. 면봉을 주웠다. (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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