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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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땐,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싶어 선뜻 빌리기가 주저되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이 책이 ‘판타지 소설’이 아님을 알게 된 후, 바로 책을 빌려 읽어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정말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소재가 그려져 있어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피아노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피아노 조율사지만, 주인공 주변에는 여러 조율사와 피아니스트, 그리고 피아노를 사랑하는 많은 고객들이 존재한다.
책을 읽다보면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넘쳐흐른다. 어릴 때 치던 피아노가 생각나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소리들이 그리워진다. 문장을 읽을 때마다 상상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뚜껑이 열린 숲에서 나는 나무들이 흔들리는 냄새를.

 

2018. 01. 31

7~8p.
눈앞에 크고 새까만 피아노가 있었다. 크고 새까만 피아노였을 것이다. 피아노 뚜껑은 열려 있었고 그 옆에 한 남성이 서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그 사람이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피아노건반을 몇 군데 두드리자, 뚜껑이 열린 숲에서 나무들이 흔들리는 냄새가 났다. 밤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77~78p.
양털 해머로 강철 현을 때린다. 그것이 음악이 된다. 야나기 씨가 촘촘하게 바늘로 찌른 그 하얀 해머는 오래되었고 크기가 작았지만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는 양이 풍요의 상징이라고 들었어요."
야나기 씨는 양손을 깍지 껴 베개처럼 뒤통수에 댔다.
"유복한 사람이 양을 많이 소유했을 테니까 그냥 하는 이야기 아닐까?"
"아아."
양 목장을 가까이에서 보고 자란 나도 무의식중에 가축을 화폐 가치에 비춰보는 면이 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양을 생각하면 바람이 부는 초록 들판에서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이 떠오른다. 좋은 양이 좋은 소리를 만든다. 나는 거기에서 풍요로움을 느낀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아도 풍요로움이라는 말에 고층 빌딩이 하늘을 찌르는 거리 풍경을 떠올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271~272p.
"도무라네 고향에서 양을 많이 키운다고 했잖아. 그래서 생각났는데, ‘착할 선善‘이라는 한자는 ‘양羊‘에서 온 거래요."
"호오."
"‘아름다울 미美‘라는 한자도 ‘양羊‘에서 따온 거라고 얼마 전에 책에서 읽었어요."
기타가와 씨는 잠시 책의 내용을 생각하다가 떠올랐는지 다시 설명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양이 사물의 기준이었대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나. 선하고 아름답다고요. 그건 우리 사무소 사람 모두가 항상 진지하게 추구하는 가치잖아요. 선함도 아름다움도 원래 양이었다고 생각하면, 아아. 우리가 찾고 있던 것은 처음부터 피아노 안에 있었어요."
과연, 그렇구나. 처음부터 그 까맣고 윤기 흐르는 커다란 악기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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