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개 1
신 모리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미 완결이 되어버린 책이라지만 이 책을 접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어느 부분에서나 보아도 괜찮을 듯 싶다. 이 만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아리따운 아내와 귀여운 두 딸들을 거느린 다이몬지라는 사람이다. 완벽에 가까운 판단력의 소유자이자 능력있는 잡지 편집장이고, 게다가 가족을 끔찍히도 아끼는 사람이다. 왕자적 기질또한 다분한 완벽주의이다. 다이몬지는 어느 비오는 날 우연히 길에 버려진 개를 데려오고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주워온 개에 몬지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계속 키우는데, 곰을 상상하면 대충 그려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하튼 다이몬지는 이 개의 범상치 않은 여러 행동들을 보고 '몬지로는 생각하는 개'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때부터 주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 만화는 '80번지의 개'처럼 그냥 잔잔하기만한 만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골때리는 코믹물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딘가 쯤에 위치하고 있는 성격이 다소 모호한 만화라고나 할까, 주인공 다이몬지의 사고회로는 오히려 '동경대 러브스토리'의 과대망상증 주인공에 가깝다. 그렇지만 다이몬지는 여느 코믹물의 주인공처럼 툭하면 '물먹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많은 코믹물의 주인공들이 자기가 쳐놓은 덫에 자기가 빠져서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다이몬지는 그의 속내가 아슬아슬하게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많은 주위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개인 몬지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주인공 다이몬지의 외관은 여느 코믹물의 변태 중년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능력있고 존경받는 한 집안의 가장이나 유명한 잡지의 편집장이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성품까지 아름다운 미녀... 두 딸들도 착하고 구김없는 성격의 귀여운 소녀들이다. 그는 생긴것 답지 않게 완.벽.한. 사람인 것이다. 물론 100%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실수는 아슬아슬하게 커버된다. 하지만 만화는 그렇게만 진행되지 않는다. 그의 어딘가 부족한 부분은 몬지로에 의해 철저하게 파헤쳐진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다이몬지 본인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만... 이런 패턴의 에피소드가 계속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다이몬지는 노이로제적이지 않다(대표적으로 둘리와 고길동).

그의 몬지로에 대한 마음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몬지로를 인정하는 한편 얄미워한다. 부인과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개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면서도 몬지로의 행동을 이해하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만화를 기분좋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개와 인간과의 관계가 수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몬지는 몬지로 때문에 여러모로 골탕을 먹으면서도 몬지로를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고 있다. 는 몬지로의 행동 양태를 '개의 습성'을 공부함으로써 이해하려한다. 물론 몬지로는 언제나 거기에 조금씩 벗어난 행동을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는 거기서 더 나아가 몬지로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쓸데없이 자존심만 센 인간이라면 개'따위'가 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도 않을 뿐더러 몬지로의 '신호'에 대응하지도 못할 것이다.

처음에 다이몬지는 몬지로의 범상치 않은 표정과 자태(!)를 보고 몬지로는 '생각하는 개'라는 단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의 이런 단정이 맞는지 틀린지 이 만화는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런 단정이 중요한 것은 이 단정이, 몬지로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보게 만드는 동시에 모든 사건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묘한 부조화감' 이란 이런 종류의 것이다.

다이몬지는 몬지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몬지로에 대해 가장 많은 애정을 가지고 몬지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적어도 내가 보기엔). 런 면에서 다이몬지와 몬지로는 어쩌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간씩 뒤틀려 있는 이상한 만화이지만, 그래서 더욱 따뜻한 만화가 바로 이 '생각하는 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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