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아름다운 기분
우아민 지음 / 무니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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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실의 슬픔으로 제주도 무밭에 둘러싸인 작은 돌집 앞에서 돌처럼 서서 "숨어있는 동안 슬퍼했으면 좋겠다" 는 마음으로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시를 쓰고, 그림 그리고, 차를 내리고, 향을 피워 기도하는 일이 전부였던 제주도 동쪽 마을에서 기록한 스무 편의 애도 일기다. 


 세상에, 맨 마지막 장에 플레이리스트가 있다!!!(마지막에 발견하고, 재독할때는 플레이리트스를 들으며 읽었다)
책에 수록된 큐알코드를 통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면, 음악과 책을 같이 선물 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낭독가인 나에게 너무나도 좋은 책이었다. 
 시인이 쓴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우아민 작가의 산문집을 읽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첫 장만 읽어도 알 수 있다.
아 이 사람의 글은, 우아민 작가의 글은
내게 오래오래 머물다 갈 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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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아래로, 아래로 흐르다가 [돌]에 부딪히면
일순간에 부스러졌다. (중략) 그러나 물은 흐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부스러지면서도 [돌]을 지나 쳐 흐르는 물처럼.
돌이켜보면 슬픔을 말하려다가 사랑이나 아름다움만 실컷 나누느라 새로운 생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슬픔을 삶의 곡선으로 매만지려는 시도 속에서] 어딘가 아름다운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기분이 우리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여는 글>>에서 발췌한 문장들이다.
한 문장의 글의 여운이 다음 문장에서도 그리고 그 다음 문장에서도 느껴진다. 
그 문장들을 줄긋는 연필을 타고 나에게 닿는 것을 느낀다.필사하기에 아주 좋은 책은 책이다.

(필사하고 싶은 글귀가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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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돌. 그 돌에선 밤마다 침묵 소리가 났습니다.]
기도는 대부분 그런 순간에 시작되는 것 같아요. 자꾸만 되돌아가는 어떤 순간들로부터. 하지 못했지만 사라지지 않는 말로부터.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사적인 슬픔으로부터. 어딘가 제가 모르는 바다에서는 발자국이 수 놓이겠지요.

  <<기도가 시작되는 순간이에요>>중에서

여기에도 여는글에 나왔던 그 [돌]이 나온다.
물은 돌에 부딪히면서 흐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물에 부딪히는 돌은 밤마다 침묵 소리로 기도를 대신해준다.앞의 내용이 연결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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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다 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에 오로지 내가 있다. 나는 이런 곳을 발견하면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에 넣어둔다. "거 죽기 딱 좋은 곳이네" 영화 속 대사를 흉내 내면서.
(중략) 바다는 다시 바다로 가득찼다. 나는 연한 바람을 맞으며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에 죽음을 숨겨둔다. 시계가 멈추고 파도가 들이치는 날이 오면 버티고 선 다리 대신 지느러미가 생기도록. 우리가 시작된 리듬에 몸을 맡기로, 파도의 노래를 안다는 듯이. 


<<주머니에 숨겨둔 죽음>>중에서

작가는 주머니에 죽음을 숨겨두었는데, 나는 앞에 서 본 [그 돌 하나] 넣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대신해 기도해주는 그 돌멩이 하나를 그녀의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주머니 속에도 함께 들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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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흔들리는 마음 어딘가에 납작 엎드렸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숲을 걸어 나갈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재재를 흥얼거리면서.(중략) 하늘은 단 한 번뿐인 블루였다.


<<똑같은 재즈 연주는 없다 단 한 번뿐>>중에서


<<기도가 시작되는 순간이에요>>중에서 [흐르는 물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돌]이 작가 자신 이였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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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높고 아름다운 [돌]이야."
내 운명의 작은 신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내 이름의 작은 신>>중에서


여기에서도 [돌]이 나온다. 내 이름에 들어가 있는 '돌' 이라는 의미의 글자로. 내 삶의 주체는 나이며, 현재를 덮고 있는 과거의 무거운 이불을 걷어내고 슬픔을 이겨낸 자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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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닥불을 피우는 사람을 떠올린다. (중략 )바람을 등지고 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서로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려고. 그리하여 슬픔과 사랑 속에 있던 것들, 어떤 밤에 살아서 찰랑이는 것들을 함께 마시자고.

<<그저 기울이려 하는 것이라고>>중에서


혼자가 아닌,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는 슬픔을 함께 겪은 것은 아닐지라도 함께 헤아린다면, 별도 달도 없는 밤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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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비밀은
불안도, 미움도, 슬픔조차도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2021년 4월 7일의 일기]
마지막 장의 글을 읽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이 책을 덮고나서,
세상의 수 많은 이지안에게 묻고 싶다.
편안함에 이르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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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아서 나는 기도하듯 향을 피운다"
마을 사람 모두가 집안에 살아있지만 바람때문에 영혼이 꺼져버려서 빈집이 된 건 아닐까.
<<숨어있기의 역사>>중에서. 


집은 혼자 밤을 견디고, 그녀는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바람 많이 부는 제주도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작가의 표현이 서정적이라서 필사해 놓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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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은 오후 태양색 능소화로 뒤덮여 있었다.(중략) 발길을 세우는 아름다움이라고 한들 자신의 차례가 지나며 서둘러 떠나겠지. 여름이 그런 것처럼.
나는 타들어 가는 꽃을 바라보면서 당신을 생각했다. 말라 버린 믿음과 병들어 갈색으로 변한 마음. 미움, 원망, 그리움, 후회, 절망을 쓸어모아 태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시절이란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기념사진 같은 것이 되지 않으니까.

<<삶의 모든 돌담>>중에서

이 글을 읽고, '유디트 헤르만'의 레티파크 중 <<페티쉬>>의 한 부분이 생각이 난다.


🌿[모닥불은 꺼졌다. 엘라와 남자아이는 장작을 모두 태웠다. 그녀는 카를이 오늘도 돌아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그럼에도 자신이 머무를 경우를 대비해서 새 장작을 가져와야 할것이다.]

이제 과거의 연인과의 인연은 모두 타고, 이제는 자신을 위한, 새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제 네 차례야" 라고 말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나아갈 차례이다. 작가도, 나도 상실의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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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감을 느끼기 좋은 구절들> 발췌


🌿여름)
어깨 위 수영복 자국처럼 선명하게 남을 밤. 여름밤들.

🌿여름의 끝자락)
땅을 딛고 피워낸 꽃은 끝이라는 단어를 배운 적 없어요. 그래서 영원처럼 피어날 수 있다고, 수국의 뒷모습에 안녕을 빌어줬어요. 단 한 번 머문 계절에도 이토록 끝나지 않는 여름도 있는 거라고.
그리고 이제 그 푸른 창을 닫아야 한다고.
<<땅으로 떨어져도 꽃은 꽃>>중에서 

가을)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빛나는 붉은 열매, 들개가 낙엽을 밟는 소리, 비에 젖은 흙냄새가 순식간에 방 안의 공기를 장악했다. 하늘은 돌아가기엔 멀고 머무르기엔 아득한 블루였다. 모든 게 멀어지지만 또렷해 보이는 걸 나는 가을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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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풀에 숨겨놓은 보물찾기 쪽지처럼
너무나 예쁜 표현을 찾았다.

🌸"봄 잠처럼 가물거린다."

🌿 "건물과 건물을 실뜨기하는 전깃줄처럼"

🌿 고요한 마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눈물이 반달처럼 차올랐다."

(마음 뭉글해지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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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니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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