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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평점 :
내게는 안녕알래스카는 독자가 될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아이들을 위해 성인들이 읽어야 할 동화로 여겨졌다.
이런 감상평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동화 속 전개가 청소년들이 겪을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 상처와 극복에 대해 다루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사람은 그 혼자서 문제를 겪을 수 없다.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일 텐데,
아이들이 마주하는 사회적 환경은 그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앞선 시민들, 즉 성인들이 일구어 놓았기 때문이다.
설령 아이들에게 잘 못이 있더라도 무턱대고 그 아이만의 잘못을 말할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때만큼은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죄를 구별하며, 죄인을 낙인찍는 사회의 무자비함이다. 환경개선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청소년 문제의 예방은 어렵다.
(물론, 잘못에 대한 심판과 처벌은 따를 수 있다. 다만, 그 문제를 개인과 개인의 문제만으로 바라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범죄를 통한 사회로부터의 상처도 나타나지만, 1차적으로 작품에서 띄는 요소는 '장애'다.
#뇌전증 이라고도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나의 성장기 때도 그 질환을 앓고 있는 학우가 학교에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 어떤 조치나 교육이 있었던 기억은 없다. 그 외에도 다른 질환을 앓는 동료들도 학창 시절에 있었다. 그리고 심리적 질환을 비공식적으로 앓는 학우들도 있었고, 일시적으로는 나도 그러한 경험이 성장기 때 있었을 것이다.
문학작품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이긴 하지 잔 실제 환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에, 외국 동화 - 외국소설은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다른 문화를 비교하게끔 하기도 한다.
그런 부분에서 장애로 상징된 다양성을 가진 여러차원의 논점들에 대해서 우리는 보다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안녕알래스카 에서는 사회적 참사로 인한 상처, 트라우마가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회적 참사라 하면 대규모, 대인원, 피해의 깊이가 극심한 사건 사례를 떠올리곤 한다. 이 작품에서는 수십, 수백은 아니더라도 한 가정이 겪은 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 가정이라 하더라도 그 원인이 사회로부터 왔다면, 사회적 참사가 맞다.
우리나라에서는 겪기 드문 총기사건이 다루어졌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가장의 영향, 아이들의 언어와 행동에서 나타나는 가정의 상처 등이 보인다.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폭력을 행사한 집단들의 배경 그 자체도 사회적 참사로 볼 수 있겠다.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도록 내몰은 우리 사회는 죄책감 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꼭 아이들에게만 권해서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도 잃어버린 사회적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건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자 가능성이다.
지적 학습에 의해서 확장될 수 있는 감수성과 공감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입시를 위해 문학작품을 접하는 것이 아니고, 작품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사회와 세상을 학습해 갈 수 있는 자원이 이미 우리 주위에 있다.
심지어 이렇게 신간으로서 업데이트가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갈수록 이 사회가 날카로워지고 따뜻한 정서가 사 그러 드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매일매일 목숨을 포기한다. 꿈을 포기하고, 장래의 희망을 포기한다. 우리 사회는 포기하지 않도록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낙담과 절망을 가르치는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이 없다면, 이런 작품조차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문화 가운데, 문학 아래, 상상력 안에서 나올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포기하긴 이르다.
우리나라 교육문제, 입시 문제, 청소년 생활 문제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사람보다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잘 아는 개의 모습을 통해서도 작품 속 알래스카를 통해서도 우리는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나아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