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 짓눌린 영혼에게 길은 남아있는가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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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작품은 성장 소설로 많이 거론된다. 『데미안』과 더불어 『수레바퀴 아래서』 또한 청소년에게 권장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헤르만 헤세에 대해 이 책과 겹치는 부분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헤세 또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신학교에 입학하였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와 겹치는 부분이 라 흥미로웠다. 하지만 작가는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와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1946년에는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소설, 시뿐만 아니라 수많은 그림을 남겨 한스 기벤라트와는 차이가 있는 행로를 걸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독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총명한 소년으로,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의 큰 기대를 받으며 성장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받으며, 마을에서 유일하게 신학교 차석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지식과 성취의 기쁨이 아닌, 경쟁과 억압, 감정의 억눌림이었다. 한스는 주어진 틀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의 공허함과 피로를 느끼며 점점 지쳐간다.


그러던 중에 신학교에서 한스는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하일너를 만나게 된다. 하일너는 기존 사회의 억압적인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걸으려는 인물로, 한스와는 정반대의 성향이다. 이 둘은 곧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하일너와의 우정을 통해 한스는 자신이 억눌러왔던 감정과 진짜 자아에 대해 고민하게 되지만, 결국 그 자유를 따라가지 못한 채 무기력해지고, 건강까지 악화된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외로움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다가, 금속 세공 장인에게 일을 배우게 되지만 어느 날 너무나 허망하게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뛰어난 재능도 있지만 자연 속에서 평화를 느끼던 어린 시절의 한스는 점차 주변의 기대와 학업 경쟁에 짓눌려 더 이상 자연(낚시)을 벗하지 않는 시들어가는 청춘이 되어 무너져가는 과정이 아주 세밀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아마도 헤세 또한 신학교에 입학하여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경험을 한 장본인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한스의 학업은 다시금 가장 충실한 상태로 돌아갔다. 그는 간혹 한 시간 정도 낚시를 하거나 산책을 하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어김없이 죄책감을 느꼈다. 매일 즐기던 목욕 시간마저도 이제는 자신을 가르치는 수학 선생님의 강의 시간으로 대체되었고, 그의 하루는 점점 더 단조롭고 팽팽한 긴장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학구열이 불타올랐다 할지라도, 대수학(알제브라) 수업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한낮의 무더운 시간, 그는 무겁고 지친 머리로 a+b와 a-b를 반복하며 문제를 풀어야 했고, 공기 속에 감도는 억눌린 기운은 때때로 우울함과 절망감으로 바뀌기도 했다.” - 84쪽


『수레바퀴 아래서』는 ‘수레바퀴’가 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해본다. 가까이는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고, 직장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이며, 거대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라면 어른이라는 권위와 학교라는 교육제도라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다들 거대한 수레바퀴 안에서 무사히 잘 버텨내고 있는 걸까? 헤세는 이 소설을 통해 수레바퀴에 억압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꿈을 억눌린 상태로 죽어간 한스와 같은 삶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는다. 이 작품은 발표된 당시의 독일 사회의 경쟁 중심 교육 제도와 인간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오늘날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에 더해 작품 속 어디에도 한스에게 인생에 있어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이 있음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어른이 보이지 않아 더욱 가슴 아팠다. 가까이는 성공과 높은 명성을 바라는 아버지부터 한스에게 한껏 기대를 품은 마을의 어른들, 영혼의 구도자인 목사와 신학교의 교사들마저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경쟁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장면에서 더 기댈 곳 없는 여린 한스의 슬픔도 느껴졌다.


"한스는 감찰관이 내민 손을 잡았다. 감찰관은 그를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지, 그래야지, 기벤라트. 절대 나약해지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수레바퀴 아래로 깔려버리고 말 거야.”- 159쪽


“이처럼 학교라는 무대에서는 늘 법과 정신의 충돌이 벌어진다. 우리는 국가와 교육 기관이 해마다 출현하는 몇몇 뛰어나고 가치 있는 영혼들을 억누르고 짓밟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하는지를 목격한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 그들은 결국 교사들에게 미움받고, 자주 벌을 받고, 쫓겨난 후에야 나라의 귀중한 유산으로 남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아남지 못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쓰러져 갔을까? 아무도 알지 못한다.”-156쪽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은 수많은 경쟁과 성적, 부모와 사회의 기대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꿈을 깨닫지 못한 채 한 방향으로만 걸어가고 있다. 오히려 더욱 이르게, 더욱 심하게 수레바퀴가 속도를 내는 거 같다.

이렇게 정신없이 굴러가는 와중에 한 번쯤은 의문을 품어봤으면 한다. 우리는 정말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원치 않는 수레바퀴에 억지로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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