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길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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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다. p24

항상 그녀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일은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왔다. 다른 누구와도 함께 넘지 못했던 경계를 넘어, 세계를 등 뒤에 두고,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을 둘이서 나누는 행위라고. p38

아마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금 막 지나온 그 순간이 아니라, 모든 순간일 것이다. 세계 전체는, 그녀의 삶이 이제 종말을 맞게 되었으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녀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세계 전체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p149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동안, 그는 어머니 없이 살아야 할 긴 시간을 상상해보려 한다. 어머니의 삶이 끝나면서, 그가 가진 어머니의 기억도 그 자리에서 함께 멈추어버린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질 뿐이다. 어머니는 항상 말했다. 그러나 조만간 그는 망각으로 어머니를 다시 한번 더 상실할 것이다. 한 조각, 한 조각씩 잃어가면서. p237

살면서 우리는 항상 꿈꾼다.
만약에 내가 그 때 이랬더라면 지금의 나의 삶은 달라졌을텐데.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죽음을 맞은 그녀. 죽음의 순간을 선택한 그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다섯가지의 죽음을 만나는 한 여자가 있다.
전쟁과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그녀의 삶에 '만약에'가 이루어지고 다섯 가지의 삶과 죽음을 만난다.

1장을 읽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 그녀의 어머니인 줄 알았다. 그녀의 첫번째 삶은 1년도 살아보지 못하고 갓난아이인 상태로 허무하게 끝나버렸기 때문에.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만나게 된 죽음.
1장부터 느껴지는 죽음의 허무함. 그녀가 살아가는데 필요했던 아주 작은 한가지. 그 사소한 한가지가 없어서 그녀는 허무하게 죽음과 만났다.

그녀의 다섯가지 삶을 읽으면서 왜 그녀의 죽음은 '만약에'를 만났음에도 행복하지 않을까? 궁금했었다. '만약에 그때 그랬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면?'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녀가 '만약에'를 만나 살아온 모든 삶의 배경은 격변의 시대. 전쟁 속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전쟁은 지금 막 피어나는 단계에 있는 그녀의 청춘 또한 쏘아 죽인 것이다. p90

전쟁은 한 소녀의 청춘을 쏘아 죽였다.
그녀가 다시 태어나도 그녀의 삶의 배경이 전쟁이라면 그녀가 행복한 삶을 만날 가능성은 없었던게 아닐까?
전쟁은 한 소녀의 청춘만 쏘아 죽인게 아니였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의 꿈과 행복한 삶을 쏘아 죽였다.

한 여자의 다섯가지 삶과 죽음. 그리고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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