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일기장 ㅣ 꿈꾸는 문학 3
이경순 지음 / 키다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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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순의 청소년소설 <녹색일기장>을 읽고

'날라리'와 '날나리'는 어떻게 다를까요?

그 차이를 알고 싶으면 동화작가 이경순 선생님이 쓴 청소년소설집 <녹색 일기장>을 펼쳐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이 함부로 쳐들어 오지 못하는 것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생들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 아시죠?

헬리콥터 엄마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2 여학생이 털어 놓는 소소하지만 꼭 들어줘야 할 이야기. 과연 주인공 이연주 학생을 어떻게 '위대한 의식의 순간'을 체험 할지요~

 작가는 머리말에서 이슬람 경구를 독자들에게 전해줍니다. "흔들리는 나침반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안팎으로 흔들리는 사춘기를 녹색 일기장에서 공감으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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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놀다 - 풀꽃지기 자연일기
이영득 지음 / 황소걸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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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놀다> 이영득 글/사진

 

책 표지가 참 단아하다. 하얀 바탕에 검정 글씨체의 <숲에서 놀다>란 제목은 바람에 살랑이듯 정겹다. 제목 오른 켠 작은 글씨 ‘풀꽃지기 자연일기’는 ‘~지기와 ~일기’가 리듬을 이루고 있다.

 

첫 페이지, ‘산울림이기를 바라며’ 라는 작가의 말에서 벌써 피톤치드 냄새가 난다. 들어보라.

“숲에는 언제나 배울 거리, 놀 거리가 넘친다. 자연은 거기 있기만 해도 좋은데, 갈 때마다 새로운 걸 보여준자. 가슴이 뛰는 까닭이다. 설레는 까닭이다. 그런 자연의 품에서 놀다 오면 몸과 맘에 숲이 채워진다. 생명이 채워진다.”

<숲에서 놀다>는,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의 평범함이 주는 비범한 경지(境地)를 보여준다.

 

동화작가이자 숲 생태 교육자인 이영득 님은 자연을 벗 삼아 매주 한 번씩 숲을 찾은 생활을 10년 넘게 해온 덕분인지, 자연을 닮았다. 또한 작가는 ‘산골을 놀이터로 크는 새악시’라는 김영랑의 시 구절이 잘 어울릴 만큼 천진난만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등산을 하거나 산책하면서, 건강을 챙긴다는 일념으로 주로 걷는 데만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걷다가 힘들면 잠시 쉬는 정도가 전부다. 산에 가면 산(山)이 되고, 숲에 가면 숲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놀이 하는 인간’으로서 자연을 벗으로 보고 제대로 친하게 지내는 방법에는 서툴렀다. 왜?

산에서조차 시간에 쫓기고, 일정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책에선가 ‘놀이는 현실의 압력과 구속에서 해방된 순수한 활동(칼 그로스)’이라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다.

<숲에서 놀다>는 매주 ‘꽃요일’이라 부르는 날에 이영득 님과 ‘꽃님들’이 ‘놀이 하는 인간’으로서 자연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순간들을 사진과 글을 통해 단편 다큐멘타리처럼 보여준다.

 

이영득 님과 꽃님들은 숲을 찾으면, 풀꽃과 애벌레와 곤충에 정신이 쏠려 한 걸음 떼기가 힘들만큼 참 한심(?)한 동무들이다. 한 발 디딜 때마다, 무언가가 나타나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곤 한다나.

풀꽃지기 이영득 님을 비롯한 꽃님들은 봄, 여름, 가을도 부족해서 겨울까지 두루 네 계절을 천지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처럼 뛰놀고 즐기는 데 몰두한다.

 

숲에서 놀 때도 작가는 새로 보는 풀이며 나무를 꽃님들에게 바로 이름을 가르쳐 주는 법이 없다. 각자가 공부한 만큼 천천히 잎을 보고, 줄기를 보고 자세히 관찰해보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나무가 (스스로) 누군지 말해줄 거(43쪽)’라는 것이다. 대상을 스스로 알게 될 때 비로소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숲에서 놀다> 속에는 다양한 놀이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그 중 한 가지, 소나무 하나로 몇 가지 놀이를 할 수 있을까? 자 손가락을 꼽아가며 세어보기 바란다.

 

‘솔잎 지압, 솔방울 공기놀이, 소나무껍질 퍼즐 맞추기, 솔잎 목걸이 만들기, 솔방울 똥꼬놀이, 솔방울 비석치기 등.

 

마음만 먹으면 자연과 친해지는 건 시간 문제다. 마음을 열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자연은 놀이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떨어진 꽃으로 모양을 만들고, 잎으로는 배를 띄우고, 꽃반지, 꽃목걸이, 꽃왕관을 만들고, 강아지풀로 풀강아지 만들고, 풀각시 엮고, 분꽃 귀고리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노는 건 아니다.

 

자연을 벗삼아 놀이를 하면서도, 작가는 자연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안다.

“좋아하는 대상이 있으면 그게 사람이든, 취미든, 일이든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책임은 대상에게 예의를 지킨다는 말이다. 무작정 좋아할 게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남보다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 그게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예의고 책임이다.(99쪽)”

작가는 고교시절 국어 선생님 말씀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고서 ‘좋아하면 책임져야 한다’를 ‘삶의 지표’로 삼을 정도이다.

 

<숲에서 놀다>에는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 역할을 하는 이영득 님의 유머와 재치 있는 말솜씨를 만난다.

“목욕하고 나온 어치, 머리에 무쓰 바른 중학생 같다.” 물에 꽃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고 “인디언 같기도 하고, 색맹검사표 같기도 하다.”

“갑자기 도시촌놈들 앞에서 시골 촌놈 ‘촌빨 날리게’ 으스대고 싶었다.”

“불량 주부,불량 주부, 불량 주부…파리똥, 파리똥, 파리똥…”

 

숲은 생생한 철학 교과서이다. 생 철학(生 哲學) 실습장이다. 저절로 터득되는 지혜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노루귀는 꽃샘바람 견디려고 털을 달고 나온다. 복수초는 얼지 않으려고 몸 온도를 높인다. 몸 온도를 높이면 작은 곤충이 찾아와 몸을 녹이면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26쪽)”는 구절은 작가가 ‘자세히, 오래’ 지켜보면서 몸소 깨달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후투티는 구멍을 못 뚫어 청딱따구리가 뚫어놓은 구멍을 집으로 쓴다.(91쪽)”

사진과 글이, 잘 버무려진 나물무침처럼 상큼한 맛과 향기로 여운을 준다.

 

봄이면 나물과 효소 재료를 구할 때도 “나무가 몸살하지 않을 만큼 얻어온다.(36쪽)”는 공생.

“숲에서는 입으로 먹는 것보다 눈으로 먹고, 코로 마시고, 귀로 먹는게 많다. 온몸이 맑은 걸 먹는다.(37쪽)”

 

   “세상은 왜?” 라는 불만으로 시작되는 인기 개그 프로그램  <네 가지>를 떠 올리면서 묻는다.

   "자연은 왜?" "자라풀은 왜 자라풀인가?"

"코스모스는 왜 ‘코스모스(cosmos=우주)’인가?" 코스모스에 관한 이영득 님의 글은, 아름다운 서정시 한 편과 다를바 없다. 함께 음미해 보자.

<놀랍게도 꽃을 찬찬히 보면 답이 나온다. 씨를 맺는 작은 꽃 하나하나가 별이고 꽃봉오이도 별이다. 꽃술도 꽃가루가 터지기 전에는 별이다. 크고 작은 별이 수없이 많으니 우주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우주! 예쁜 별이 뜨고 있다. 밖에서 안으로. 40년 동안 왜 코스모스인지 의문을 품고 살았다는 꽃동무, 꽃에서 수많은 별을 보고 우주를 발견한 것처럼 좋아한다.>

시인 블레이크는 ‘한 알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본다’고 하였지만, 작가는 ‘코스모스꽃’에서 정말 우주를 보았던 것이다.

 

<숲에서 놀다>는 질문 투성이, 호기심 투성이다. 바로 동심(童心)과 심안(心眼)이 담겨 있다. 그래서 즐겁고 행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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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할머니와 말하는 알 ㅣ 보림 창작 그림책
이영득 글, 차정인 그림 / 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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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오리 할머니와 말하는 알』/이영득 지음 

 

 

햐! 오리 할머니가 들려주는




첫 장을 펼치면, 산벚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산기슭에 지붕만 보이는 작은집이 한 채 보인다. 그 집은 산에 가는 사람들에게 김밥이며 삶은 오리알을 파는 할머니가 산다. 옛날이야기가 할머니로부터 나오듯이, 그림책 이야기도 오리 할머니로부터 펼쳐진다. 벚꽃들이 봄바람에 하르르르 꽃비로 휘날리는 참 좋은 날이다. 꽃비에 흠씬 젖는 건 옷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이다. ‘산벚나무집’ 할머니는 초등생 손자들만큼이나 키가 작달막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신다. 그래서 할머니네 가게 삶은 오리알은 손님들에게 인기 짱이다. 그 비결은 그림책을 보면 안다. 오리알 껍질에 노란 병아리 그림을 그려서 팔기 때문이다. ‘오리알에 병아리를 그려 넣은 할머니의 아이디어가 참 재미있다. 그렇다고 해서, 행여 오리알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삐약”거리며 태어날 염려는 없다. 삶았기 때문이다.




오리알 할머니는 돋보기안경을 끼고, 삶은 오리알 껍데기에 병아리를 소쿠리쯤 만드셨다. 알마다 금세라도 병아리들이 달려 나올 듯 환한 그림이다. 그러고서는 할머니께서 곁에 있는 텃밭으로 일하러 나가셨다.




봄날의 평화스런 풍경 속에서, 아기 여우의 등장은 무언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아기’들이란 사람이나 동물 할 것 없이 ‘호기심’이 많은 법이다. 아기 여우도 재주 구르기에 관심이 있었나보다. 작가는 재주 부리는 아기 여우를 ‘공구르릅 데구르릅’이라는 멋진 표현을 우리에게 들려주면서 보여준다. 공구르릅데구르릅이라는 말이 입 속에서 사탕처럼 굴려보라. 참 말맛이 달콤하다.




구른다는 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다. 구르며 재주 부리는 일에 신이 난 아기 여우는 때마침 불어 온 꽃바람에 밀려, 오리 할머니네 가게 근처까지 굴러 내려온다. 




그런데 식탁에 놓인 할머니네 바구니를 보고 아기 여우는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지고 놀란다. 아무리 재주를 잘 넘는 아기 여우도 할머니의 그림 솜씨가 새겨져 있는 <병아리 오리알>을 보고 안 놀랠 수 없었을 거다. 봄 졸음에 꾸벅꾸벅 졸던 할머니집 강아지가 기척에 놀라, 눈을 번쩍 떠 보니, 아기 여우가 보였다.




오리알을 지키던 강아지가 아기 여우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왈왈 월월’ 짖어대자, 아기 여우는 놀라서, 재주를 세 번 넘었어. 그랬더니 뭐로 변했을까? 그래, 오리알로 변신해서 바구니 속에 얌전히 들어 있는 거야. 오리알로 변한 아기 여우가 시치미를 떼고 있을 때, 강아지는 밭일에 열중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종알종알 일러바치지만, 할머니가 어찌 알겠누. 영문을 모를 수밖에. 그래도 강아지가 왈왈 거려서 보니, 바구니에는 하얀 오리알 하나가 있는 거지 뭐니.




할머니는 고개를 갸유뚱 거리다가 그림붓을 들어 병아리를 그리려고 하셨지. 그 순간, 오리알이 말을 하였어. 글쎄, 아기 여우를 그려달라고 하였지. 할머니는 오리알이 말을 하니,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재미있었나 봐. 그래서 병아리 대신에 아기 여우를 멋지게 그려 주었지. 오리알이 된 아기 여우는 자기를 닮은 귀여운 아기 여우 그림에 기분이 아주 좋았을 거야.

할머니가 작업을 마치고 났을 때, 이웃에 사는 영감님이 오셨지. ‘아기 여우가 그려진 오리알’을 보더니, 신기해서 집어드는 순간, 할머니가 그 알은 안 된다며, 되돌려 받으려는 순간, 어떻게 됐는지 아니?




영감님도 주고 있던 오리알을 놓쳤어. 큰일이 난거야! 아기 여우가 그려진 오리알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곁에 있던 개울가에 빠질 줄 알았는데, 징검다리를 통, 통 건너서 건너편으로 건너가 버렸어. 영감님도 할머니도 깜짝 놀랐을 거야. 아기 여우인 줄 모르니까 말이야.

강아지만 졸래쫄래 다라 내려가다가, 사라지는 걸 쳐다봤을 뿐이지.




그림책 이야기는 이게 끝이야. 하지만, 이야기는 끝이 나도 그림책은 우리들 가슴 속에 계속 펼쳐지고 있어. 할머니 모습이며, 아기 여우며, 강아지며, 병아리가 그려진 오리알들이며, 놀란 영감님까지....그리고 바람에 꽃비 날리는 산벚나무들까지도.




혹시, 어디 산행 가다가, 오리 할머니가 삶은 오리알에 그림을 그려 팔거든, 아기 여우가 그려져 있는 오리알이 있는지 잘 살펴 봐. 그런 오리알이 보이면, 아기 여우에게 먼저 말을 걸어 봐. 반갑게 아는 체 할지도 몰라. “친구야, 반가워!”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여우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오리 할머니와 말하는 알>에서 할머니와 아기 여우는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았어도, 그림책을 본 우리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줄거라고 난 믿어.




그림책은 그림이 먼저일 수도 있고, 글이 먼저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림책을 만든 작가와 화가의 마음을 통해, 아이들은 숨을 쉬듯, 엄마와 그림책을 함께 보고 들으면서, 아름다운 환상 속에서 아이의 심성을 밝고 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한 몫일 것이다.




이영득 동화 작가의 리듬이 담긴 군더더기 없는 한편의 장편 동시 같은 글도 아름답고, 그 들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담아 낸 화가의 솜씨도 참 훌륭하다.




이 그림책은 산벚꽃 활작 피는 봄에 읽으면 잘 어울리겠지만,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 읽어주어도, 아이들에게 따스한 봄날의 꿈과 사랑을 구수하게 전해 줄 것이다.







『오리 할머니와 말하는 알』엄마 품 같은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다 보고나면, <피파의 노래>라는 시가 절로 떠오른다.







계절은 봄이고

하루 중 아침

아침 일곱 시

진주 같은 이슬 언덕 따라 맺히고

종달새는 창공을 난다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이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피파의 노래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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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들어주는 마법과자』를 읽어가면서, <어떤 일, 어떤 것에 대해서 무턱대고 의심만 품으면 안 되>는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동화를, 불량식품을 만들어 파는 양심불량 악덕업자들에게 필독케 하고 반성문을 쓰게 한다면 어떨가,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저는 과자를 아주 좋아 합니다. 아마도 담뱃값 보다 군것질비가 더 많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식후에도 제가 군것질 하고 싶어서, 다 큰 아들 녀석 시켜, 과자를 사오게 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다보니, 제 집사람은 가게에 파는 것들보다는 생협연대에서 유기농으로 만든 과자를 주문하게 된답니다. 우습지요.

작가의 말씀처럼, 어른들도 어릴 적 추억 때문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과자를 좋아하게 되니, ‘과자’라는 게 참 매력적이고 마법을 지녔는가 봅니다.

 김마늘 친구와 감자방 과자회사처럼 서로 믿는 사이가 될 때, <상상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 아이들과 세상을 향해 꿈을 주고, 즐거움을 주며, 밝은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신자는 아니지만 성경 구절 중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는 말씀을 참 좋아한답니다. 서석영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단순히 먹어도 괜찮은 과자에서 아이들이 안rh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재미와 행복을 안겨 주는> 마법과자가 언젠가는 현실화 되리라는 희망을 저도 행복한 마음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

  마법과자를 먹으면서 아이들이 마음 편안하게 공부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멋진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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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 들나물 대백과
이영득 글과사진 / 황소걸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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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 들나물 대백과』




 『산나물 들나물 대백과』를 손으로 들면, 작가의 오랜 발품이 담겨 있어서인지 책이 듬직하다.  발품도 발품이지만, 그보다는 자연을 가족처럼, 동무처럼 대하는 사랑의 체온이 깃들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손자병법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전술이 들어 있다. 왠 뜬금없는 말이냐 하겠지만, 산야초를 아는 것은 병법과는 다르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 자연을 안다는 것은, 승리에 목적이 있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다.

 

 이영득 작가는 흡사, 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던 고산자 김정호처럼, 이 땅의 산과 들을 누비면서 아마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야생 나물들의 싹 트는 모습이며, 성장하여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황소처럼 우직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그 차분한 시선으로 오랜 시일에 걸쳐서 한 장 한 장 정성들여 찍어낸 참한 결실이바로『산나물 들나물 대백과』이다.




 시인 김광섭 님은 <시인은 나무 곁에 서면 나무가 되고/바위 곁에 있으면 바위가 된다>고 하나됨을 말하였다. 시인의 마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영득 작자는 <자연이 키운 귀한 푸성귀들을 한 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리고 싶다>고 표현했다. 참으로 자연을 경애하는 겸손한 성품을 엿보게 한다. 자연과 한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경지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슷비슷하게 보이는 초근목피들을 제대로 가려서 정확하게 알 때, 자연은 우리에게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되어 준다. 몸에 좋다고 하면 몰지각한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자연을 훼손시킨다. 하지만 작가는 자연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자연을 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물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수도 하는 스님들이 발우 공양을 하듯 진지하다.

 

 또한, 작가는 산야에 피어 있는 화초들이 함부로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쓸모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산야초 하나하나가 어쩌면 난초만큼이나 소중하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우월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면서 최소한의 음식으로 섭취하고자 하는, 더도 덜도 아닌 공존의 균형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주머니 속 나물도감>에서 느낀 ‘작은 책’의 아쉬움을 덜어주고자, 집에서나 사무실에서 좀더 눈을 편안하게 해 줄 크기로 발간된 이번 대백과도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이다.

 

 『산나물 들나물 대백과』는 정말로 '밝은 창으로 들어 오는 맑은 산과 들의 향기를 듬뿍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아름다운 책을 통해  배운 바를 조금씩 틈틈히 , 눈으로 보고, 코로 향기를 맡으며, 음식으로 만들어 섭취해 볼 것이다.




훌륭한 책을 만들어 낸 작가와 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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