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놀다 - 풀꽃지기 자연일기
이영득 지음 / 황소걸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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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놀다> 이영득 글/사진

 

책 표지가 참 단아하다. 하얀 바탕에 검정 글씨체의 <숲에서 놀다>란 제목은 바람에 살랑이듯 정겹다. 제목 오른 켠 작은 글씨 ‘풀꽃지기 자연일기’는 ‘~지기와 ~일기’가 리듬을 이루고 있다.

 

첫 페이지, ‘산울림이기를 바라며’ 라는 작가의 말에서 벌써 피톤치드 냄새가 난다. 들어보라.

“숲에는 언제나 배울 거리, 놀 거리가 넘친다. 자연은 거기 있기만 해도 좋은데, 갈 때마다 새로운 걸 보여준자. 가슴이 뛰는 까닭이다. 설레는 까닭이다. 그런 자연의 품에서 놀다 오면 몸과 맘에 숲이 채워진다. 생명이 채워진다.”

<숲에서 놀다>는,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의 평범함이 주는 비범한 경지(境地)를 보여준다.

 

동화작가이자 숲 생태 교육자인 이영득 님은 자연을 벗 삼아 매주 한 번씩 숲을 찾은 생활을 10년 넘게 해온 덕분인지, 자연을 닮았다. 또한 작가는 ‘산골을 놀이터로 크는 새악시’라는 김영랑의 시 구절이 잘 어울릴 만큼 천진난만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등산을 하거나 산책하면서, 건강을 챙긴다는 일념으로 주로 걷는 데만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걷다가 힘들면 잠시 쉬는 정도가 전부다. 산에 가면 산(山)이 되고, 숲에 가면 숲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놀이 하는 인간’으로서 자연을 벗으로 보고 제대로 친하게 지내는 방법에는 서툴렀다. 왜?

산에서조차 시간에 쫓기고, 일정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책에선가 ‘놀이는 현실의 압력과 구속에서 해방된 순수한 활동(칼 그로스)’이라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다.

<숲에서 놀다>는 매주 ‘꽃요일’이라 부르는 날에 이영득 님과 ‘꽃님들’이 ‘놀이 하는 인간’으로서 자연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순간들을 사진과 글을 통해 단편 다큐멘타리처럼 보여준다.

 

이영득 님과 꽃님들은 숲을 찾으면, 풀꽃과 애벌레와 곤충에 정신이 쏠려 한 걸음 떼기가 힘들만큼 참 한심(?)한 동무들이다. 한 발 디딜 때마다, 무언가가 나타나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곤 한다나.

풀꽃지기 이영득 님을 비롯한 꽃님들은 봄, 여름, 가을도 부족해서 겨울까지 두루 네 계절을 천지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처럼 뛰놀고 즐기는 데 몰두한다.

 

숲에서 놀 때도 작가는 새로 보는 풀이며 나무를 꽃님들에게 바로 이름을 가르쳐 주는 법이 없다. 각자가 공부한 만큼 천천히 잎을 보고, 줄기를 보고 자세히 관찰해보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나무가 (스스로) 누군지 말해줄 거(43쪽)’라는 것이다. 대상을 스스로 알게 될 때 비로소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숲에서 놀다> 속에는 다양한 놀이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그 중 한 가지, 소나무 하나로 몇 가지 놀이를 할 수 있을까? 자 손가락을 꼽아가며 세어보기 바란다.

 

솔잎 지압, 솔방울 공기놀이, 소나무껍질 퍼즐 맞추기, 솔잎 목걸이 만들기, 솔방울 똥꼬놀이, 솔방울 비석치기 등.

 

마음만 먹으면 자연과 친해지는 건 시간 문제다. 마음을 열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자연은 놀이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떨어진 꽃으로 모양을 만들고, 잎으로는 배를 띄우고, 꽃반지, 꽃목걸이, 꽃왕관을 만들고, 강아지풀로 풀강아지 만들고, 풀각시 엮고, 분꽃 귀고리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노는 건 아니다.

 

자연을 벗삼아 놀이를 하면서도, 작가는 자연에게 예의를 갖출 줄 안다.

“좋아하는 대상이 있으면 그게 사람이든, 취미든, 일이든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책임은 대상에게 예의를 지킨다는 말이다. 무작정 좋아할 게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남보다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 그게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예의고 책임이다.(99쪽)”

작가는 고교시절 국어 선생님 말씀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고서 ‘좋아하면 책임져야 한다’를 ‘삶의 지표’로 삼을 정도이다.

 

<숲에서 놀다>에는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 역할을 하는 이영득 님의 유머와 재치 있는 말솜씨를 만난다.

“목욕하고 나온 어치, 머리에 무쓰 바른 중학생 같다.” 물에 꽃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고 “인디언 같기도 하고, 색맹검사표 같기도 하다.”

“갑자기 도시촌놈들 앞에서 시골 촌놈 ‘촌빨 날리게’ 으스대고 싶었다.”

“불량 주부,불량 주부, 불량 주부…파리똥, 파리똥, 파리똥…”

 

숲은 생생한 철학 교과서이다. 생 철학(生 哲學) 실습장이다. 저절로 터득되는 지혜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노루귀는 꽃샘바람 견디려고 털을 달고 나온다. 복수초는 얼지 않으려고 몸 온도를 높인다. 몸 온도를 높이면 작은 곤충이 찾아와 몸을 녹이면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26쪽)”는 구절은 작가가 ‘자세히, 오래’ 지켜보면서 몸소 깨달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후투티는 구멍을 못 뚫어 청딱따구리가 뚫어놓은 구멍을 집으로 쓴다.(91쪽)”

사진과 글이, 잘 버무려진 나물무침처럼 상큼한 맛과 향기로 여운을 준다.

 

봄이면 나물과 효소 재료를 구할 때도 “나무가 몸살하지 않을 만큼 얻어온다.(36쪽)”는 공생.

“숲에서는 입으로 먹는 것보다 눈으로 먹고, 코로 마시고, 귀로 먹는게 많다. 온몸이 맑은 걸 먹는다.(37쪽)”

 

   “세상은 왜?” 라는 불만으로 시작되는 인기 개그 프로그램  <네 가지>를 떠 올리면서 묻는다.

   "자연은 왜?" "자라풀은 왜 자라풀인가?"

"코스모스는 왜 ‘코스모스(cosmos=우주)’인가?" 코스모스에 관한 이영득 님의 글은, 아름다운 서정시 한 편과 다를바 없다. 함께 음미해 보자.

<놀랍게도 꽃을 찬찬히 보면 답이 나온다. 씨를 맺는 작은 꽃 하나하나가 별이고 꽃봉오이도 별이다. 꽃술도 꽃가루가 터지기 전에는 별이다. 크고 작은 별이 수없이 많으니 우주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우주! 예쁜 별이 뜨고 있다. 밖에서 안으로. 40년 동안 왜 코스모스인지 의문을 품고 살았다는 꽃동무, 꽃에서 수많은 별을 보고 우주를 발견한 것처럼 좋아한다.>

시인 블레이크는 ‘한 알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본다’고 하였지만, 작가는 ‘코스모스꽃’에서 정말 우주를 보았던 것이다.

 

<숲에서 놀다>는 질문 투성이, 호기심 투성이다. 바로 동심(童心)과 심안(心眼)이 담겨 있다. 그래서 즐겁고 행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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