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길어 올리기 - 그 설핏한 기억들을 위하여
이경재 지음 / 샘터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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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껴온 세사들은 추운 겨울을 견뎌 내야만 비로소 피는 봄꽃처럼 모두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지금 절망뿐인 시간 속에 계신 분들은 무슨 허튼소리냐고 핀잔주시겠지만 '절망'도 흘러갑니다. 아픔이 일상이 되어 무디어져 가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세월이 됩니다. - p5

첫인사부터 너무 근사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이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라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문체에는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세련된 표현들이 잔뜩 담겨 있다. 게다가 어울리는 음악까지 QR코드로 적어놨으니, 이 얼마나 철근처럼 꽉 찬 책인가. 오랜만에 눈과 귀 그리고 머리와 마음까지 잠입한 책이다.

19살, 수시를 마치고 한창 공부와 멀어졌을 무렵 재즈 책에 푹 빠진 적이 있다. 그 당시 책 한 권에 CD 1장씩 함께했는데, 아직도 그 CD 속 음악과 함께 읽은 책 내용이 눈앞에 선할 지경이다. 이처럼, <시간 길어 올리기>는 단순한 독서의 느낌이라기보단, 19살 당시 내가 가진 추억과 함께 시간을 길어 올려줬다. (책 표지까지 무엇 하나 빠짐없이 멋진 책. 심지어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에서 저자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책이란다. 사진도 잘 찍는 만능.)

아무튼, 그런 삶을 살고 있어서인지 <시간 길어 올리기>는 마스크에 가려진 내 숨통을 탁 트여주는 책이었다. 게다가 제목 뽑는 센스 역시 배우고 싶을 만큼 뛰어나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재주까지 지녔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가 적어놓은 글을 읽을수록 저자에 대해서 궁금증이 커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저자는 자신이 경험해온 온갖 별천지와 아는 것들, 좋아하는 것, 직접 보고 들은 것까지 여유롭게 넘나들며 독자들을 책 속에 퐁당 빠트린다. 마치, 탁구 시합을 관전하는 어수룩한 아이처럼 저자의 능숙한 토스에 넋을 잃고 읽어내렸다. <시간 길어 올리기>는 그런 책이다. 독자가 책을 펼치는 순간, 이제 막 개업한 대형마트에 들어선 아이로 만드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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