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얼마나 예민하고 완벽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불완전한 사람임을 잘 안다. 고치고 싶어도 만성두통처럼 끈덕지게 내게 들러붙어, 결국 나 자신을 향해 죄책감을 메달처럼 쌓아놔야만이 직성이 풀린다. 특히 요즘처럼 바쁠 때에는 가혹하리만큼 완벽주의를 꿈꾸곤 하는데, 가혹하다는 표현을 쓸 만큼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자기학대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왜냐면, 그렇게 열심히 해도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가 힘들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걱정에 허덕이며 이 서평을 적고 있다. 사실, 세상에 내 글을 써서 내놓을 때마다 이런 걱정에 허덕이고 있다. 10년 전, 내가 처음 적은 소설을 읽은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넌 네 글에게 죄를 짓고 있는 거야.' 컴퓨터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짝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꺼내보는 마음으로 홀로 읽기만 반복. 그래, 그 당시의 난 내 글에게 죄를 짓고 있었다. 마치, 예쁜 조화를 사두고 '이건 생화야'라고 주문하듯, 나 홀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조화를 세상에 내놓게 되면, 생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그게 무서워서 죄지은 사람처럼 글을 적었고, 증거 인멸하는 범죄자처럼 내 글을 숨겼었다. 이렇게나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주, 추석, 9월, 10월, 2021년도 전체를 걱정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걱정을 떠안은 채 벌벌대는 내 모습은, 요즘 시대에 걸맞은 '쿨'한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그 '쿨'하지 못한 내 모습이 진정한 나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사실, 자기혐오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결국 나 자신이 제일 멋진 사람이길 바란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이다. 어려운 것도 단번에, 단기간에 척척해내고, 좋은 관심을 받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내 걱정의 원산지는 어쩌면 관심받고 싶고, 좀 더 나은 모습을 어필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난 단순한 감정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안고 사는 이 걱정을 너무 미워만 하지 말자.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원래 인간은 다 불안정한 존재이며, 완벽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부족하지만, 낯에 철을 깔고 서평을 올리는 나처럼 말이다.
소심한 것이 아니라 세심한 것이다. 답답한 것이 아니라 신중한 것이다. 느린 것이 아니라 꼼꼼한 것이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제니퍼 칸 와일러, <현명한 리더는 작은 소리로 말한다> - 5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