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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잘 들어라. 내가 너희들에게 늘 가르쳐왔던 대로, 모든 나쁜 일에서는 뭔가 좋은 것을 퍼 올릴 수 있다. 그 가르침에 걸맞게, 나는 너희들에게 너희가 다른 종류의 어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해주려 한다. 오미알라 같은 더러운 늪의 물고기가 아니라 정신을 낚는 어부가 되거라. 성공하려고 단단히 작정한 사람 말이다. 이번 삶의 강과 바다와 대양에 두 손을 담그고 성공을 거두는 아이들이 되어라.
53p
책 소개-
1996년 나이지리아 서부 아쿠레에 사는 평범한 가족이 미치광이의 예언을 시작으로 철저하게 파괴되는 이야기이다. 오남 일녀의 가정은 우애도 깊었고 유복한 가정이었지만, 아버지가 천 킬로 미터 떨어진 지방으로 전근을 가면서부터 일상이 삐거덕 대기 시작한다.
육 남매의 아버지는 독수리였다. 어린 독수리들 머리 위로 높은 둥지를 튼 채로 제 가족들을 지켜보는 왕이자 독수리. 그런 아버지가 둥지를 비우면서부터 평소 눈에 보이지도 않던 미세한 실금이 점차 굵어진다. 네 형제는 낚시를 즐기는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맏이인 이켄나를 중심으로 우애가 좋은 형제들이었지만, 미치광이 아불루와 마주친 이후로 그들의 깊은 우애는 되레 독이 된다.
그들이 아불루와 처음 마주한 그날. 이켄나는 맏이라는 책임감으로 아불루를 자극했고, 아불루는 이켄나를 향해 토하듯 악담을 퍼부었다. 그래, 그냥 평범한 '악담'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불루처럼 악담을 퍼붓고 다녔더라면 돌멩이에 맞거나 똑같이 욕을 먹었을 테지만. 아불루가 내뱉는 악담들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악담이었다. 그래서, 아불루의 악담은 악담이 아니라, '예언'이었다.
그래서, 아불루에게 악담을 들은 이켄나는 되돌아올 수 없는 강바닥으로 침식된다. 마치 사람들이 부정하다며 가까이 가기조차 꺼리는 그 강처럼 말이다.
사람들의 두려움으로 더럽혀진 강이 '부정한' 강이라 낙인찍힌 것처럼, 이켄나 역시 자신의 믿음보다 두려움을 믿어 스스로 낙인을 찍었다. 그로 인해, 이켄나는 더욱 철저하게 파괴되고 나아가 그의 가족들까지 파괴된다. 부정탄 강과 이켄나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지만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강은 스스로 두려움을 믿어서 부정탄 게 아니라, 사람들의 두려움에 의해서 부정을 탄 것이고. 이켄나는 스스로 두려움을 믿었다는 점이겠다.

이켄나의 부모님은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결국 그들도 토속신앙을 아주 버리진 못했다. 아니, 그들은 토속신앙을 버리지 못한 게 아니라, 두려움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켄나의 어머니는 이 모든 걸 정화하기 위해 교회가기를 요구한다. 이 역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교회를 택한 것이다.
전근을 나간 아버지가 제 아들들이 그 '부정탄' 강에서 낚시를 했단 이유로 천 킬로미터를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조금 위험하긴 하다만) 부정탄 강에서 낚시한 이유로 아이들을 체벌하고, 첫째인 이켄나를 가장 크게 혼낸다. 아버지는 은행에서 일하며 과학을 믿고 기독교를 믿는 지식인이다. 하지만, 왕좌에 앉은 왕이자 둥지를 지키는 든든한 독수리인 아버지조차도 두려움을 기반으로 아이들을 가혹하게 체벌하고 단속한다. 다시는 제 아들들이 그 '부정탄' 강에서 낚시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켄나는 조금씩 '변신'을 한다. (만약, 그날 아불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소한 사춘기 소년의 반항 정도가 아니었을까?)
아불루는 '이켄나, 너는 어부의 손에 죽을 것이다' 라고 말했어
116p
이켄나는 형제들과 함께 일궈온 우애의 상징인 물건들을 하나씩 훼손하며 '변신'한다. 그의 '변신'이 끝났을 때는 아불루가 퍼부은 악담이 예언으로 낯을 달리 했을 때였다. 이 과정은 두려움이 인간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철저하게 보여준다.
증오는 거머리다. 사람의 살갗에 달라붙는 것. 사람을 먹고 살며, 인간 영혼의 진액을 빨아내는 것. 증오는 사람을 바꾸어놓으며, 그들의 평화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빨아 먹기 전에는 떠나지 않는다. 증오는 거머리가 그러듯 사람의 살갗에 달라붙어, 표피 아래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든다. 그래서 피부에서 그 기생충을 떼어놓는다는 것은 그 살점을 뜯어낸다는 뜻이 되며, 그것을 죽이는 일은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된다.
266p
셋째인 오벰베는 아불루를 향한 증오심을 키워, '두려움'을 덮는다. 이 책의 화자인 넷째 벤자민 역시 형 오벰베의 증오에 가담하게 된다. 그들의 결말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길 적극 추천한다.
결말까지 앉은 자리에서 쭉 읽었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만난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모두 읽은 책을 닫았지만, 잔잔하지만 물 아래로 사납게 구는 파도가 매력적인 책이었다.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재미있었다.
<어부들>은 31개국 출간 계약, 27개 언어 번역!
세계 5대 문학상 수상, 부커상 외 14개 문학상 파이널리스트!
<뉴욕타임즈>, <옵저버> 등 영미 15개 매체 '올해 최고의 책' 선정!
(은행나무 서포터즈 4기로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적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