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죽겠다'라는 투정 아닌 투정을 자주 하는 편이다. 나 역시 한국인인지라, 뻑하면 '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때가 있었다. 그 때문에 악재가 겹치나 싶어 요즘에는 될 수 있으면 내뱉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밀린 일감들과 엉망이 된 체력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죽겠네'를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한 조각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땐 '죽겠다'라는 말 대신에,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너 진짜 괜찮아?'라는 물음이 날 걱정해 준다.
몇 년 전,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대답으로 끝나던 때가 있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뼈가 부러지고 다시 붙을 때마다 뼈가 더 두꺼워지는 것처럼, 나 역시 나름의 노력으로 단단해졌다 자부했었다. 하지만, 그 과정들이 남긴 상처는 비가 오는 날마다 찌릿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내게 각인시킨다. 제 존재를 잊지 말라고 혼이라도 내듯이.
그래서 고백하자면 얼마간 회의주의에 빠졌었다. 아무리 노력해서 이겨내도, 결국 이 흉터는 나 홀로의 몫이고. 그 상처엔 영원히 '치유'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 차라리 애초에 상처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로 인해 무언가를 더하고 열심히 하기보단, 유리조각처럼 깨져버릴 수 있으니 몸을 사리며 원하는 걸 포기하는 게 현명한 '어른'의 삶이겠거니 치부했다. 그 포기가 어른의 몫이라 여겼었다.
나아가,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과거의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객기를 부린 어린이였고. 그 선택으로 인해 내가 남들보다 손해 본 것들만 재고 따지며 슬퍼했다. 내 젊음을 태워 남은 것은 재뿐이라며 한탄하기도 했으니. 이 얼마나 보기만 해도 피곤한가. 안타깝게도 이런 생각들을 모조리 떨쳐내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이렇게 엄살이 심한 사람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적당히 다독이며 살고 있다.
<내 생애 단 한 번>은 내 이런 상태를 마치 알고서 찾아온 손님처럼 굴었다. 비록, 다 타버린 재가 될지언정 먼지가 되지 말자는 희망을 던져줬고. 엄살 심한 내 모습 역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도록 다독여줬다. "삶의 한가운데 서서 당당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오늘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일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기를" 이 구절이 링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내 귓가를 녹여줬고, 마음을 녹여줬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도 미래에도 비록 링에서 질지언정 절대 링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