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조은별 그림 / SISO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69p "자, 서소씨의 다리가 부러졌어요. 치료를 받고 붙기를 기다렸다가 적절한 재활 훈련을 해야 다시 뛸 수 있겠죠? 만약 다리가 부러졌는데 굳센 의지를 갖고 노력한다면 어떨까요? 그런 짓을 했다간 영영 달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정신질환, 성격장애란 그런 겁니다."
🖋이틀 전부터 이미 읽던 책이 있었다. 원래는 그 책 리뷰를 먼저 하려 했기에 열심히 종잇장을 씹어먹으며 읽고 있었건만.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이 도착하는 순간부터 내 계획은 모조리 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내 곁에서 서소씨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사실 맨 앞장을 펼치는 순간, '아 이거 잘못 걸렸는데? 지금이라도 덮을까?' 싶었다. 살면서 울고 싶은 날은 무수히도 많았지만, 정말 운 적은 손에 꼽는다. 그런데도 아들 서소씨는 내 울컥 포인트를 제대로 움켜쥔 채 마구 뒤흔들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게.
자꾸 이 리뷰를 적으며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마치 부모님께 사귀는 애인을 소개하는 심정이랄까. 어떻게 하면 이 책의 매력 그대로 적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글을 적어본다.
본문에서 서소씨가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글이 재미는 있지만 재미만 있는 글이라 가벼움을 걱정했단다. 하지만 그건 서소씨만의 걱정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았으니까. 재미있을 땐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웃었고, 공허함과 불안증세를 이야기할 땐 내 가슴께도 묵직했다. 황금비율의 무게였다.
서소씨의 일일을 보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그와 내 일일의 공통점이라곤 푸들을 키운다는 것(비록 우리집 애들은 스탠다드 푸들이지만)과 장남은 아니어도 장녀라는 정도뿐인데, 어느새 서소씨와 활발히 대화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12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내가 정직 당한 것도 아닌데도 참 억울했고, 서소씨를 스쳐간 연인들 이야기에 내 속마저 씁쓸했다. 그의 일일은 우리의 일일이기도 해서 일까?
신입사원 시절 에피소드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면서도 유쾌했고, 병원 에피소는 '이를 어째'를 외치며 호들갑 떨며 읽었다. 그중 특히 강렬했던 부분을 꼽으라면, 시장에서 길을 잃은 후 마주친 호프집 사장님의 스타일이었다. 스포츠 스타일에 핑크색 머리칼,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아껴 마시던 커피마저 흘릴 뻔했으니, 기억에 더 남을 수밖에.
종이를 넘길 때마다 아쉬웠다. 오른편에 잡고 있는 책 두께가 얇아질수록 망원동 사람들과 그 속의 서소씨와 이별하기가 참 아쉬웠다. 서소씨에겐 죄송하지만, 정직 후 그의 생활을 애정 했다. 때때론, 망원동의 일상이 깨질까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더니 딱 그말이 맞다. 서소씨는 자신의 아픔을 덤덤하고도 유머러스하게 적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독자인 나는 서소씨의 정직 후 일상과 망원동에서의 일상을 보며 웃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디디의 정체가 뭔데! 장르가 뭐냐고!' 혹은 '망원동 구경해보고 싶다. 자전거는 못 타지만.'등등. 이렇게 말하면 냉혈인에 사이코처럼 들리겠지만, 서소씨의 일일이 사랑스러웠고 때때론 아늑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일일을 버텨낸 서소씨는 아팠을 테고 아팠을 텐데, 이토록 편하게 서술한 건 그의 능력이자 책의 매력이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그가 해낸 것처럼, 내 아픔으로 글로써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글쎄, 일단은 그럴 용기도 없다.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은 재미있는 소설을 읽듯이 웃으며 읽을 수 있으면서도, 내 마음에 얹혀있던 답답함도 함께 풀어 놓을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책에게, 서소씨에게 위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