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의나 할까? -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회의의 기술
김민철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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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일상이 회의다.

초중고 시절에는 학급회의를, 동네에선 반상회를, 축구 시합을 앞두곤 전략 회의를. 하물며 저녁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도 회의고, 영화관에서 무슨 영화를 볼까 상의하는 것도 사실 회의다. 결국 다같이 머리 맞대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뭔가를 선택하기 위해 나누는 모든 얘기들이 회의인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늘상 하는 것이 회의이긴 하지만, 껀수가 심상찮을 때는 사뭇 진지하게 달려들어야 하는 것이 회의이기도 하다. 그런 '심상찮은 껀수'를 놓고 '사뭇 진지하게' 회의하는 대표적인 장소를 꼽으라면? 아마 회사일 거다.

그런 의미에서 '일 잘 하는 회사 = 회의를 잘 하는 회사'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비즈니스 서적 코너에 가 보면 '회의,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류의 책들이 참 많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으로 회의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비트겐슈타인을 살짝 인용하자면) 말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고 오직 보여질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회의의 제 요소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써 놓은 글을 백번 천번 읽더라도, 회의 좀 하는 사람들의 회의를 한 번 제대로 목격하는 것엔 못미친다는 거다. 

하지만 '회의 쫌 하는 사람들의 회의'는 아무나 볼 수 없다. 그게 문제다. 많은 경우 사내 회의란 단순한 노하우의 차원을 넘어 영업기밀의 영역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회의에 관한 책들이 집필되는 과정에서 '보여질 수 있는 것들'에 속하는 생생한 현장의 모습은 여차저차 지면에서 탈락하고, 심심하고 푸석한, '말해질 수 있는 것들'만 일목요연하게 정렬되어 살아남았으리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이 책 <우리 회의나 할까?>가 신선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오직 보여질 수 있는 것들'을 과감하고 섬세하게 기술하고자 시도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TBWA KOREA라는 광고회사에서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건져올리고, 그것을 현실세계에 구현하는 과정을 팀원의 한 사람이 된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이는 특유의 사건진술서 스타일의 문체와, 대부분의 회사에서 휘발되고 마는 회의의 일거수일투족들을 충실히 기록해 컨텐츠로 담아낸 덕이다. 

행간의 에피소드를 엿듣는 재미도 깨알같다. 가령 '현재 페이지 인쇄'를 하려다 실수로 '전체 인쇄'를 눌러 프린터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인쇄소 잉크가 덜 말라 종이가 축축해 곤혹을 치르고, 팀장의 감정기복에 어쩔줄 몰라하는 팀원들의 모습 등등. 하지만 이러한 시시콜콜한 관찰들이 모여 묘하게 당시 정황을 상세히 재구성하면서 회의의 본질에 대해 비로소 무언가 감을 잡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결코 시시콜콜하지 않은 시시콜콜함. 이 책이 간직한 독특한 느낌이다.

책 표지에 부제로,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회의의 기술', '세상의 모든 회의를 위한 회의 제대로 하는 법'과 같은 문구가 있기는 하다. 허나 그 기술이 무엇이고, 방법이 무엇이다라고 똑 부러지게 요약해주지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우리는 이렇게 회의하고 있노라고. 한번 들여다보라고. 이런 면에서 참 용기있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 방식이 맞는 것 같다. 회의 제대로 하는 법은 오직 보여질 수만 있을 테니까. 

쓰여있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독서가 좋은 독서라 한다. 분명 이 책도 그렇게 읽어야 할 책이다.

 
나무랄데없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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