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공간, 없는 공간
유정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SBS에서 새로 시작한 예능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 자영업, 특히 카페에 대한 내용이라 공감도 되고, 공부도 할 겸 꼭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청수당, 소하염전, 온천집, 우물집 등 핫한 공간을 알고 있었지만 그 공간들이 글로우서울이 만든지는 몰랐었는데,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우서울의 대표 유정수님을 알게 됐어요. 때마침 유정수 대표가 쓴 '있는 공간 없는 공간'서포터즈 기회를 얻어, 귀한 공부가 된 시간이었어요.

있는 공간 없는 공간 리뷰 시작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에 쓰인,

경험이, 세계관이, 차원이, 원더가, 유휴공간이 있다
상품이, 경계가, 유행이, 가짜가, 정답이 없다

라는 내용이 확 이해가 되더라고요.

*
'살아남는' 공간을 강조하는 까닭은 지금의 오프라인 비즈니스에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경쟁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5

코로나가 휩쓸고 간 3년 남짓 한 시간 동안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수요의 변화는 더 가속화된 것 같아요.

응축되었던 경험적 소비욕구가 좀 더 많은 요소의 요구로 이어지다 보니, 기존의 방식으로는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
결국 앞으로 살아남을 오프라인 상업 공간은 고유한 체험을 십분 살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24


요즘 공부하면서 느끼는 건 소비의 트렌드는 상품이 이루는 원가와 서비스 비용에 국한된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경험과 가치를 주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재료의 원가가 높다고 비싼 게 아니라, 가치의 비용을 더 높게 측정합니다.

극단적 예를 들어보자면 제가 원가 900원짜리를 1,000원에 파는 것보다, 원가 100원짜리를 1,000원 팔아도 가치 있는 브랜드, 가치창출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훨씬 더 판매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그 잉여 수입이 다시 가치창출의 밑거름이 되는 선순환에 올라서면 그 사업은 성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의 많은 부분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
유휴 공간이 기본적으로 집객을 위해, 즉 고객을 모으고 고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그것은 전체 공간의 정중앙, 공간에 오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놓이는 편이 타당하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35


요즘 흔히 핫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공간은 웨이팅이 기본입니다. 오래 기다려서 들어간 공간에서 명당자리가 존재한다면 그 자리에 선점 차이가 경험에 대한 만족도에 많은 영향줄 거예요. 하지만 유휴공간('쓰지 않고 놀린다'라는 뜻으로, 고객들에게 휴식을 주는 공간이라는 의미 p.36)을 모두가 즐길 수 있다면 경험에 대한 만족도도 올라가고 그 공간에 대해 좋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상업공간으로 일컬어지는 곳들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상징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전반에 걸쳐 유휴공간과 원더(어떤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 수 있는 요소 p.80)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는데, 그 부분이 갖는 상징성부터 이해, 그 바탕으로 이뤄지는 배치에 대한 생각을 엿보며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점을 배운 것 같아 좋았습니다.

*
온라인과는 대비되는 확실한 경험, 나아가 다른 오프라인 공간과 차별화되는 확실한 경험을 고객들에게 선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45


책에서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김승호 회장의 '사장학 개론'에도 언급되듯이 더 이상 우리 식당의 라이벌은 옆집 식당이 아닙니다. 편의점부터 밀키트, 마트, 온라인 마켓들, 그리고 시간적 측면에선 OTT에서 양산하는 수많은 콘텐츠를 손에 핸드폰만 있으면 언제든 손쉽게 소비할 수 있어요.

먹거리에 대한 소비가 먹거리 자체에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시공간까지 고려하게 되며 그 부분까지 가치판단을 해서 기회비용을 고려해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다변화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간과 재화의 소비패턴이 달라진 만큼 오프라인 공간에 요구하는 부분이 달라지는 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소비패턴의 변화를 단순히 경제적 논리 가처분소득 관점에서만 생각했는데, 책에서는 가처분 시간에 대한 관점을 끌고 온 게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
인테리어 비용에서 마감에 쓸 비용을 최소화하고, 그렇게 절약한 비용으로 무언가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 투자한 매장들이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살아남게 된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59


내 생각대로 구현해 그대로 공간을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비용적 측면을 고려하며 달라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특히 저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정체성이 모호한 취향의 경우, 이도 저도 아니게 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읽고 머리를 쾅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받았는데, 제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저는 단순히 제가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만을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틀리거나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상업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다는 사실에 책을 읽는 내내 깨닫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애당초 공간의 주인공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 없이 공간이 만들어진 경우가 훨씬 많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87


저도 그렇지만 공간에 대한 이해보다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 만들어지는 상업 공간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주인공을 기획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같이 공간을 즐겨야 되는데 그런 배려가 부족했구나 하는 반성을 했어요. 확실한 아이덴티티가 있는 공간에서 확실한 경험을 주는 것도 제 의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
온라인이 대서가 된 시대에 사람들이 집을 떠나 다른 오프라인 상업공간을 찾을 때에는, 한정된 넓이의 공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던 공간 활용의 문법과는 사뭇 다른 체험을 그 상업 공간이 줄 수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해진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111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공간 활용은 대체적으로 효율적 공간 사용에 맞춰져있는데, 경험을 위해 방문하는 오프라인 공간에게 요구하는 건 효율적 공간 사용보다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의 구축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합니다.

솔직히 말해주지 않으면 저 같은 범인은 절대 깨닫지 못했을 것 같아요.


*
진화는 같은 평면 위를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것이고, 유행과 진화는 다른 것이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137


유행을 돌고 도는 것이 아닌 진화의 관점으로 설명했는데, 딱 직관적으로 와닿는 표현이었어요.

나사못의 나선형을 돌듯 다시 유행이 돌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이전과 유사하지만 같지 않은 진화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요즘 다시 유행하는 크롭티(배꼽티)가 생각났어요.

*
쉽게 빠지기 쉬운 착각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만든 조그만 디테일을 고객들이 알아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263


제가 매번 빠지는 착각 중에 하난데, 조그마한 디테일을 알 거라는 착각! 저는 의도의 선후관계를 모두 파악하고 있으니까 심지어 조그마한 디테일로 보이지도 않고, 커다랗게 보이기까지 해요. 공간뿐만 아니라 디저트를 만들 때도 가끔 제가 의도한 바를 전혀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손님을 보며 씁쓸했던 적도 많아요.

책에서 맥시멀과 미니멀을 설명하면서 내 생각보다 더 강하고 강렬하게 표현해야 된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과하자니 두렵고, 없애자니 아닌 것 같은 항상 어중간한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요즘 칼로리가 과한 디저트와 칼로리가 낮고 영양성분을 따지는 디저트가 유행하는 걸 봐도 그런 것 같아요.

*
오프라인 공간이 앞으로 노려야 할 것은 '시성비(時性比)', 즉 고객의 시간 대비 공간이 줄 수 있는 효용의 비율이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279


'시성비'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에 흐름 자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경험이 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저자가 공간 전문가인 만큼 1차원, 2차원에서 3차원까지 공간적 요소로 설명하는데, 어떤 설명 보다고 군더더기 없이 이해가 되도록 딱 떨어졌어요. 그리고 여기서 시간축 하나를 더하는데, 시간이 흐르는 공간, 그의 공간들에 있는 물이 흐르는 곳, 온천에 수중기들, 염전의 물레 같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곳이 추가되면서 완성되는 4차원 공간적 이해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알고는 있어지만 설명하긴 어려운, 그래서 안다고 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는데 쉽게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어

*
미래는 가만히 있는 우리 곁에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다가가야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p.287


책 말미, 나가는 글에 미래는 우리가 다가가야 한다고 표현한 부분이 와닿더라고요. 특히나 책 곳곳에 저자의 생각이 들어간 공간들을 보면, 확실히 저자는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스칼라(방향 없이 숫자로만 존재하는 값 p.260)와 벡터(방향이 존재하는 힘 p.260)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제가 그동안 사방으로 움직여 벡터가 '0'이 되는 시간들을 보낸 건 아닐지 하는 씁쓸함이 들었습니다.


저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밌게 읽었어요.
솔직히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을 볼 때보다 더 재밌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재밌게 보신다면 정말 꼭 권해드려요.
제가 읽고 어제 방송을 봤는데, 보이는 게 늘어나는 마법,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중간중간 과학적 이론이 살짝 곁들여 있는데, 과학선생님 하셔도 될 듯, 머리에 딱 박제되는 설명 능력!!
특히, 조경에 대한 생각도 인상 깊었고, 제가 잘 모르는 분야지만 흥미를 유지하며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얻은 내용을 다 못 남긴 것 같아 아쉬워요.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있는공간없는공간 #공간디자인 #유정수 #손대면핫플동네멋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