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 한 청년 수도자의 12년 수행기
김선호 지음 / 항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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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비밀스럽고 은밀한 곳이자 일반인은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성스러운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죠. 그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느끼기에 충분한데 그곳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저자의 인생사가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북적거리는 도시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떠나 한적한 산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머리를 비우고 성찰과 깨달음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기에, 꼭 수도원이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깨달음이나 루틴을 일상생활에 적용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도 생깁니다.


저자는 이제 막 스무살이 된 무렵인 1994년 1월에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12년을 수도자로 지냈습니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에는 인생의 전환점을 꿈꾸던 중년 남성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의 이야기였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사준 탁상시계를 들고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도원에 들어섰던 저자는, 정들었던 그곳을 떠난 후 동지애를 느꼈던 여성과 결혼을 하고 교대편입에 성공하여 지금은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책은 수도자가 겪어야 할 각각의 단계를 서사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지원기/청원기, 수련기, 유기서원기, 성대서약 등 명칭만 봤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내용에 푹 빠져서 한줄 한줄 읽었던 것 같아요. 뭔가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종교 이야기나 교리 등이 아니라 희노애락이 녹아있는 좌충우돌의 일상을 솔직담백하게 담은 이야기여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수도자는 한 곳에 가만히 앉아 기도하고 명상하며 내면 성찰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시험에서 F학점을 받을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그 외 단식, 봉사활동, 노숙자체험, 무전여행, 필리핀 유학, 카일라스 등반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수도원에는 연령, 가정환경, 직업이 다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창한 인생의 목표가 그들을 수도원으로 이끈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 속에 한 가지 질문을 품고 있다고 해요. '진리란 무엇인가?'. 그러나 그들은 수도생활 내내 끊임없이 또 다른 질문도 합니다. '과연 수도자로 사는 것이 맞는걸까?'. 바쁘게 흘려보내는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바쁘게 앞만 보며 달려가는 자기 모습을 자각하고 관조하기 위해 한번쯤은 멈춰서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성도 느낍니다.


명상과 기도라는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느긋함과 태연함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익히고 깨닫기 위해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수도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자가 언어와 철학을 체계적으로 배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형제애를 느꼈던 시간들도 너무 값진 경험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요? 저자는 진리를 주제로 한 수업을 회상하는데요. 칠판에 쓰인 진리에 대한 여러 단어들을 한참을 들여다봐도 뭔가 떠오르는 것이 없었는데 그 말들이 하나둘씩 지워지자 큰 깨달음이 왔다고 해요. 저도 정답이 없는 문제에 골몰하며 정답을 찾을 수 없다고 체념하고 용기를 잃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정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인생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답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습니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홀로 있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챙기는 무엇보다 주체적인 행위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이 철학에 적극적으로 빠져들 시기에 가사와 돈벌이에 멈추어 있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다. 수도원의 좋은 점은, 철학적 사유에 적극적으로 빠져들 시기에 수도원 일조차도 멈추게 하고 혼자 있도록 시공간을 적극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 P239

수도원은 세상살이가 덧없어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수도 생활에도 세상살이 못지 않게 욕심, 분노, 화, 미움, 교만, 시기, 질투가 난무한다. 그러함에도 수도 생활을 권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곳에 모인 사람 중에 진리 혹은 참 있음 혹은 존재에 천부적으로 관심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오랜 역사 동안 수 많은 수도자가 만든 수도생활이라는 시스템은, 그 시선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맞춰져 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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