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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이 되는가 - 스릴과 반전, 조선 왕위 쟁탈기
조성일 지음 / 가디언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기증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누가 왕이 되는가 - 조성일
2025.03.26 ~ 2025.04.06 (340p)

'관상'이라는 영화에서 수양대군 역을 연기한 이정재의 대사 중 "내가 왕일 될 상인가"라는 대목이 큰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실제 이정재 같은 외모를 가진 수양대군이었다면 어쩌면 관상으로 왕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조선의 왕위는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학창시절 국사 과목을 공부하며 한번씩은 암기해 보았을 이 한 줄의 문장에는 조선을 연 창업자 태조 이성계로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번째 황제인 고종,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두번째이자 마지막 황제 순종까지의 시호가 담겨있다. 작가는 책의 첫머리에서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한번 더 언급하며 조선의 왕은 태조로 부터 26대인 고종까지임을 밝히고, 이후 대한제국 시기와는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엄격하고 단순한 법도가 있음에도 스릴과 반전, 음모와 암투, 고난과 희생으로 가득차고 얼룩진 왕위 계승기가 책 속에 가득하다.
현대에 비해 짧은 인간의 수명과 낮은 의료수준으로 인한 급병사, 요절과 같은 생물학적인 원인은 물론, 왕권을 찬탈하기 위한 반정과 맹목적으로 권력만을 지향했던 외척정치, 당파싸움이 불러온 수많은 사화들 그리고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 그리고 마지막까지 끊이지 않았던 외세의 침략들까지. 스물여섯명의 왕 가운데 쉽게 왕위에 오른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왕위에 오르게 되는 세자 뿐만이 아니라 세자비, 선대왕과 왕비, 수많은 후궁들과 세자의 형제들, 더 많은 서자들까지 길지 않았던 인생에서 왕위 쟁탈의 과정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연관되지 않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상상해보면 왕가에 속해 있음으로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이는 극히 한정적이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하물며 몇년 되지 않은 재위기간을 지낸 왕을 보면 측은하기도 하다.
저자가 책 속에서 여러번 언급한 것처럼, 책은 각 장에 해당하는 왕이 어떻게 왕위에 오르게 되는 지에 대한 내용만을 한정적으로 기술하며, '누가 왕이 되는가'에 대한 제목에 서사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12대 인종에 대한 장이라면, 중종과 연산군 등 선대 왕가에서 있었던 사건의 과정들에 대한 결과로 인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내용이 중심이 된다. 따라서 인종의 장에서는 인종이 조선의 왕으로 통치했던 과업은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 내용은 다음 13대 명종이 재위하게 되는 과정의 하나로 서술되는 것이다. 이런 서술 방식은 각 장의 제목에 해한 내용이 중심이 되는 일반적인 책의 방식에 비해 어쩌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작가의 의도처럼 왕의 재위기에 집중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확실했다. 또한 왕위 계승에 관련된 가계도와 사건만을 엄격히 한정하고, 그 외의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필요최소한 만을 언급하고 있는 방식 덕분에 관련된 주요한 인과관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작자의 말처럼 정설은 아니지만 '지어낸 이야기도 아닌', 야사나 비사로 전해온 '충분히 일어났을 법한' B급 정보를 적절히 섞어 맛깔나게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흥미를 읽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한국사에 대해 생각해보면 관심과 흥미가 많음에도 정확한 인물이나 사건의 명칭이나 그 선후에 대하여는 희미하다. 그런 입장에서 본 서는 조선의 시작과 그 끝, 그리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역사학자의 글이 아닌 역사 큐레이터의 글이라 그런지 딱딱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술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책을 완독한 다음이라면 책의 첫머리에 있는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조선왕조에 간단하고도 효율적 로드맵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