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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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기증받아 개인적인 견해로 작섷한 글입니다.


버넘 숲 (Birnam Wood) - 엘리너 캐턴 (Eleaner Catton)

2025.03.14~2025.03.23 (592p)


다년간 소설에만 국한해 책을 읽어온 습관을 고쳐보고자 한동안 의무감에 반강제적으로 여러 장르의 책을 어렵사리 읽어오던 중, 나름 휴식의 의미로 편안한 독서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 오랫만에 소설을 한 권 골라보았다. 기다렸던 순간인 만큼 심사숙고 해서 책을 둘러보던 참에 세계 3대 문학상이자, 2016년 대한민국의 한강 작가가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덕분에 생겼던 관심의 연장선에서, 최연소 맨부커상 수상작가의 신작이라는 [버넘 숲(Birnam Wood)]을 선택하게 되었다.


엘리너 캐턴 (Eleanor Catton, 1985~)은 뉴질랜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캐나다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뉴질랜드로 이주하여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자랐다. 22세에 International Institute of Modern Letters 석사 졸업 작품이었던 [리허설(The Rehearsal)]을 데뷔작으로 출간하여 영국에서 베티 트래스크상을 수상했고 오렌지상 후보, 가디언 퍼스트북 후보에 올랐다. 두번째 소설 [루미너리스(The Luminaries)]로 2013년 28세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이자 두번째 뉴질랜드 작가로 맨부커상을 수상한다. [루미너리스]는 832페이지 분량으로 역대 수상작 중 가장 긴 분량의 작품이었으며, 이 작품으로 2013년 캐나다 총독 문학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고, 2014년 새해 영예 훈장에서 문학에 대한 공로로 뉴질랜드 공로 훈장을 받았다. 이후 데뷔작인 [리허설]은 2016년 앨리슨 맥린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토론토 국제영화제 Contemporary World Cinema 섹션에서 상영되었고, 맨부커상 수상작 [루미너리스]는 2020년 작가인 엘리너 캐턴이 직접 각본을 쓰고 클레어 매카시가 감독한 TV 미니시리즈로 방영되었다. 미니시리즈 [루미너리스]는 2020 뉴질랜드 TV 어워드에서 14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8개 부문을 수상했다. 작가는 또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2020년 안야 테일러 조이가 주연한 2020년 영화 [엠마]의 각본에도 참여하였다. 현재는 가족과 함께 영국 케임브리지에 거주하고 있다. 연극 '맥베드'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의  [버넘 숲]은 작가의 세번째 소설로 2023년 2월에 출간되어 그해 오웰상, 길러상 후보에 올랐으며 뉴욕타임즈가 2023년 주목할만한 책 100권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



게릴라 가드닝 단체인 '버넘 숲'은 토지의 소유라는 개념이 사용 또는 거주와 분리된, 너무도 자의적이고 터무니없이 편파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는 비옥한 땅이 사방에 널려 있고 그 위에 모두가 지식과 자원을 모은다면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을 시작으로 세상에서 훨씬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공식적인 활동으로는 땅의 주인에게 부탁해 그 땅과 수돗물을 사용하여 작물을 재배하는 대신 수확물의 반을 땅 주인에게, 나머지 반은 회원들끼리 소비하거나 가난한 이웃을 돕고 때로는 길가에서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로 벌어들인 수입은 무상으로는 구할 방법이 없는, 작물 재배를 위한 도구나 씨앗, 흙 등을 구입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그러나 모든 회원은 무임금, 모든 자산은 공동 소유, 모든 활동들은 비상근으로 이루지는 단체의 특성상 안정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기에는 자원과 역량이 현저히 부족했고, 필요한 비용과 채무를 넘어설 수 없는 수입 구조로 인해 장래를 위한 활동계획을 세우는 것은 물론, 공식적인 기본활동을 유지하는 것조차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힘든 당면 과제들을 혀결하는 방법은 공유지나 주인이 쓰지 않는 땅에 허락없이 작물들을 심고 추수하는 무단 침입이라는 형태의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런 비공식적인 활동이 증가하며 단체의 숨겨진 얼굴이 되었다.


'버넘 숲'의 창시자이자 리더격인 '미라 번팅'은 단체의 이러한 세부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은 외면한 채 그저 이상에 따라 활동의 확장을 위해 한동안 사용될 일이 없는 부지를 무단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미라의 친구이자 함께 '버넘 숲'의 시작을 함께했던 '셸리 노크스'는 단체를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문제는 본인에게만 맡겨둔 채 이상만을 쫓는 미라와의 관계와 '버넘 숲'의 존재에 회의감을 느끼고 단체를 탈퇴할 계획을 홀로 마음 속에 지니고 있다.우연히 만난 억만장자 '로버트 르모인'으로 부터 부지에 대한 정당한 사용 허가와 함께 비영리 단체에 대한 기부 혹은 투자라는 형태로 10만 달러라는 거액의 지원을 온전히 무상으로 제안받게 된 미라는 셸리와 회원들을 설득하여 르모인의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한때 '버넘 숲'의 일원이었으며 미라와 이성관계로 얽혀 있는 귀향자 '토니 갤로'는 이러한 의심스러운 제안에 따르는 미라와 '버넘 숲'에 불만과 의구심을 갖는다. 소설은 이 각각의 인물들을 따라가며 숨겨진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미라가 적으로 규정하고 토니가 비난해 마지 않은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언급 탓에 스토리의 구도는 얼핏 자본가와 비자본가 혹은 고용인, 지주와 노동자간의 대립이나 부조리, 불평등과 부당함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비추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의 흐름은 수직적인 계급관계나 그로 인한 갈등이 원인이 아닌, 등장인물들이 가진 각각의 욕망과 욕심, 자만을 동기로 이루어진다. 스스로를 우월한 개척자이며 건설자로 여기며 독재적이고 거만한 면모를 보이는 억만장자와 불편하고 힘든 부분은 외면한 채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스스로를 정당화 하는 이상주의자, 모든 일에 스스로를 비하하고 타인을 정당화 하는 들러리 같은 사람이지만 본인의 이익과 승리의 기회를 잡기 위한 무자비함을 내재한 열등종자, 균형감 없는 흑백논리를 가진 무정부주의자로 자만에 빠진 이론가는 각각 경제적인 이득과 개인적인 성취과 영광, 합법적 단체에서의 우월한 지위, 언론인으로서의 출세에 눈이 멀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버넘 숲'은 최대한 자본주의 구조 밖에서 활동할 것이라는 본인들만의 원칙을 10만 달러와 함께 향후에도 이어질 경제적 지원에 대한 기대와 바꾸어 묵살하고 외면한다.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중요한 결정 사안에 대해 논쟁하고 투표하던 수평적인 방식은 손에 돈을 쥔 순간부터 유명무실해져 논쟁은 사라지고 모든 제안이 통과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는 욕망과 욕심이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의 동기와 이야기 속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인물들의 의사결정에 대하여, 살면서 하는 어렵고 파장이 큰 선택들은 옳은 일과 쉬운 일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잘못된 일과 어려운 일 사이의 선택임을 셸리의 말을 빌어 이야기한다. 양자택일이라면 반대되는 두 개념 간의 선택이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옳고 쉽다는 공통적으로 긍정적인 두 개념'과 '옳지 않고 쉽지 않다는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두 개념'의 택일이 아닌, '옳은 일과 잘못된 일' / '쉬운 일과 어려운 일' 사이의 상반되는 개념들을 비교해야 선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옳은 일이 어려운 일 일수도 있고 쉬운 일이 잘못된 일 일수는 있다. 그러나 옳은 일은 잘못된 일 일수는 없고 쉬운 일은 어려운 일 일수가 없다. 결국 인생에서의 중요한 선택은 어떤 것을 고르던 편하거나 쉽지 않은 것임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이러한 어려운 결정들에 따라 소설은 매 순간 미스테리하고 스릴있게 흘러간다.


정감이 가는 인물이 이렇게나 등장하지 않는 소설이 있었던가 싶으면서도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흥미진진함에 오랫만에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경험을 했다. 갑작스러운 결말은 놀라운 한편 아쉽고 조금은 다른 결말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워 하기도 했지만 읽어가는 동안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빠지지 않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언젠가 스크린에서 영화화 된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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