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 나를 위로하는 일본 소도시 일본에서 한 달 살기 시리즈 1
이예은 지음 / 세나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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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이 흔해진 지 오래이고, 최근에는 생소한 이름의 소도시들을 향한 직항 노선들까지 하나 둘 생겨나는 참이지만 '다카마쓰'라는 도시는 생소했다.


다카마쓰(Takamatsu, 高松市)는 시코쿠(西國) 섬 동북부에 위치하는 가가와현 현청소재지로 65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시코쿠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시이다. 북으로는 세토 내해에 접해있어 항만이 발달해 있고 남쪽에는 넓은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일본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운데 하나로 뽑힌다. 1888년까지 에히메현에 속했다가 가가와현으로 분리되고 1890년에는 다카마쓰 시로 승격되었고 태평양전쟁 때는 미군의 공습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한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가가와현은 일본 43개 현 중 가장 작다.


2019년 초판이 출간되었던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가 구글 지도와 연동된 QR코드를 추가하고 두 편의 새로운 에세이, 작가의 두 번째 에필로그를 더하여 새로운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책의 제목은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이지만 책 속에는 다카마쓰는 물론 가가와현의 여러 도시와 마을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는 한 달 안에는 가가와현을 모두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이 지역을 선택하고, 푸드, 아트, 워킹이라는 자신만의 테라피를 통해 오랫동안 앓아 온 '도시'라는 병을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비록 처음의 계획만큼 현의 구석구석을 만족스럽게 돌아보지는 못하여 아직도 일종의 부채감을 갖고는 있으나, 다카마쓰 그리고 가가와현에서 지낸 한 달의 시간은 일시적인 만족감을 넘어 삶의 태도를 교정해 줄 정도의 깊이 있는 경험인 동시에 가장 자주 꺼내어 보는 기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예은 작가는 1989년 대구 출생으로 취학 전에는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었고, 중학교 시절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생활했으며, 고등학교는 독일에서 마치고, 대학은 홍콩으로 진학했다. 흔치 않은 이력이다. 홍콩에서 공부하던 시절 교환학생으로 처음 방문했던 일본에서 경험했던 차분한 분위기와 개인간의 거리가 적절하게 유지되는 문화가 본인의 성향과 잘 맞았던 작가는 이후, 한국에서 하던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와세다대학교 국제커뮤니케이션 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책을 마무리 하는 두 번째 에필로그에서 스스로를 '태어난 곳은 있어도 진득하게 살며 정든 고향이 없는' 나 라고 표현한 이유가 이래서 였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PART 1 푸드 테라피 : 마음을 채우는 음식

● PART 2 아트 테라피 : 소도시에 꽃핀 예술

● PART 3 워킹 테라피 : 자꾸만 걷고 싶은 길


작가는 이렇게 세개의 파트로 나누어 다카마쓰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하고도 신선한 힐링 테라피를 소개한다.


'우동현'으로도 불리울 만큼 유래깊은 본고장에서 맛보는 우동, 흰설탕을 처음 만들어 낸 역사와 연관되어 만들어진 화과자 '와산본'과 찹쌀떡 된장국 '안모치조니', 현지인의 소울푸드인 닭요리 '호네츠키도리'와 비밀스럽고 신비한 카페에서 만나는 부드러운 커피와 후르츠 산도 그리고 작은 섬에서 만나는 자연식 밥상까지, 작가는 지역문화가 집약된 여러 음식과 장소들을 소개하며 책의 첫 장을 시작한다. 화려하거나 특별하지는 않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맛있는 음식들은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훌륭한 첫번째 테라피가 되어 준다. 호기심을 일으키는 요리들 만큼이나, 작가가 자주 방문하고 독서에 집중할 수 있었다던 '바삭한 종이 냄새와 나른한 음악, 그리고 노란 독서 램프'가 있는 카페가 매력있다.


세개의 파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아트 테라피의 장에서는 다카마쓰와 그 주변의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소개한다.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동서양의 경계에서 한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정원 미술관'과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 문단의 대부 '기쿠치간 기념관'은 다카마쓰에서 만날 수 있다. 일본 문단의 명망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신문·잡지에 발표된 순수문학 단편의 무명 또는 신진작가에게 수여)과 나오키상(순수문학과 대칭되는 대중문학의 신인에게 수여)이 일찍 요절한 두 벗을 추모하기 위해 기쿠치 간이 만든 것이라고 하니 그가 일본의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카마쓰에 인접한 마루가메와 사카이데의 미술관에서도 일본화와 서양화 그리고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소유한 미술품과 자본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기적과 같은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라는 발상을 실현해 낸 교육 기업 베네세 홀딩스의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인간으로서의 행복, 인간미 넘치는 삶의 기쁨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이 모험의 성공은 환경오염으로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버려졌던 도시 나오시마를 전 세계의 여행자가 찾는 기적의 섬으로 부활시켰고 나오시마 주민들에게 다시 활력을 불어 넣었다. 나오시마를 떠났던 젊은 이들도 돌아왔다.


나오시마에서는 아름다운 땅속 미술관 '지추 미술관'을 방문하고 으슥한 폐가가 되었을 운명인 집들을 새로운 예술적 공간으로 탄생시킨 '이에 프로젝트'를 통해 스탬프 랠리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그 유명한 여백의 화가 이우환 화백의 작품들을 '이우환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탓에 국내화단에서 외면을 받았었다던 이우환은 일본 모노파(物派, 물건이라는 뜻)의 창시자로 국내 미술품 시장에서 생존작가 중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작가이다. 나오시마 만큼이나 궁금하고 매력적인 것은 살아움직이는 물방울의 즉흥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데시마 미술관'이다.


예술적 체험을 목적으로 한 공간들을 갖고 있는 도시는 많지만 실제 방문해보면 예술이 중심이 아닌, 공무원이나 지자체의 목적을 위한 어설프고 허무한 곳이거나 장사치의 초라한 흉내일 뿐 실제 예술적인 체험이나 영감과는 무관한 곳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카마쓰와 나오시마 그리고 인접한 도시들에 있는 이 공간들은 그런 허세나 거짓없이 방문자들이 마음껏 예술 작품을 보고 체험하며, 해석하고 사유하는 과정들을 통해 예술이 선사하는 즐거움에 순수하게 빠져들 수 있는 두번째 테라피를 제공해 준다.


세번째 워킹 테라피 파트에서는 일본 문화재보호법 상의 특별 명승지이며 여행안내서 미쉐린 그린가이드 일본 편에서 최고 평가를 받은 옛 영주의 산책길 '리쓰린 공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사찰인 '야시마지'의 거대한 너구리부부 상, 바다의 신을 향해 오르는 1368개의 계단을 가진 '고토히라 궁', 일년에 이틀만 개방되는 '쓰시마 신사'의 행복의 다리와 노년의 사진사와의 추억이 깃든 유리등대 '세토시루베' 그리고 도시와 자연에 경계한 '국영사누키만노 공원'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일본 전체 올리브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쇼도시마'의 이야기이다. '밀로의 비너스 상'이 처음 발굴된 그리스의 작은 화산섬 밀로스 섬과 '올리브'라는 연결고리로 자매결연까지 맺은 쇼도시마에 있는 울창한 올리브 길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작가는 이 장소들을 걸으면서도 무리하지 않는다. 취재가 목적이라면 어떻게든 더 보고 담으려고 할 수도 있겠건만 선택의 순간에는 고민없이 자신에게 무리가 되거나 다음의 일정이 방해받지 않는 선택을 한다. 다카마쓰를 소개하는 것 보다 다카마쓰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하고 수많은 힐링을 소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라면 당연한 일련 자연스로운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여행 가이드북이 아닌 이상 그 정도의 여백은 작가 답고 책에 어울린다.


식당과 카페에 가고, 예술적 체험을 찾아 다니며 지역의 명소를 걷지만, '도시'라는 병에서 피신해 온 이에게 그런 행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스스로를 치료하고 위로 받는 과정으로서의 무위(無爲)의 위(爲)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가는 에세이이면서도 책의 마무리에 추천 숙소와 여행 팁, 일정에 따른 지역별 여행 코스들을 담아 둔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는 다카마쓰 여행서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일본의 그 어느 장소보다 방문하고 싶어진 다카마쓰를 향한 언젠가의 여정을 떠나는 그날까지 이 책은 책장에 잘 모셔두기로 한다. 우리 모두가 앓고 있을지 모를 '도시'라는 병에 대한 하나의 훌륭한 처방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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