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실리 그로스만(1905~1964)의 <삶과 운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되며 현대 러시아 문학 최고 업적 중 하나라고 칭송되는 전쟁문학의 걸작이다. 1864~1869년 작품인 <전쟁과 평화>에 비해, 1959년에 완성해 1980년에서야 첫 출간된 <삶과 운명>은 작품 속 등장인물들 만큼이나 험난한 시간을 거쳐 세상에 빛을 보인 작품이다.


 <삶과 운명>은 1959년 완성되어 스탈린 사후 1960년에 출간을 시도하였으나 출판 금지 처분과 함께 KGB에 원고까지 압수당하게 된다. 그로스만은 1964년 암으로 사망한다. 사망 전 작가는 흐루쇼프에게 “내 책에 자유를 주십시오. 국가보안위 요원이 아니라, 편집인들과 내 원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논쟁하길 바랍니다. 내 일생을 바친 책이 투옥된 지금의 상황에서 나의 육체적 자유는 아무런 진실도, 의미도 없습니다”라고 간청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빛을 보지 못한 '삶과 운명'의 원고는 친지를 통해 마이크로필름으로 서방에 밀반출 되어 1980년 스위스에서의 첫 출간을 시작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러시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1989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고 한다.


 독소전쟁이 시작되자 자원입대하여 붉은 군대의 종군기자가 된 그로스만은 1941년 8월부터 신문 '붉은 별'에 전투기록을 기고하기 시작하여 무려 1천일 이상을 참혹한 격전지에서 보낸다. 남부전선군에 몸담았던 그는 20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사상 최악의 시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모두 체험했다. 나치의 최초 목표는 스탈린그라드의 점령이 아닌 파괴였기에 그 공방전은 더욱 참혹했다.

​이후 소련군이 폴란드로 진격하고 베를린으로 입성하기까지 나치가 저지른 끔찍한 만행은 물론 소련군이 패배한 독일인들에게 저지른 만행들까지 목격한 그로스만의 체험이 바탕이 된 <삶과 운명>은 동시대를 살지 않았던 작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보다도 더욱 생생하고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간의 운명은 신이 내린 것인가, 자신들의 행위의 결과인가?

신들이 내린 운명은 인간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와 일치한다.

[호메로스]

​인간이 만들어 낸 전체주의는 파시즘과 나치즘, 스탈린체제 등 다르고도 유사한 형태로 발현되어 개인의 인간성을 잔인하게 짓밟고 수없이 많은 생명을 무자비하게 소멸시켜가며 그 체제를 유지하고 세상을 잠식해간다. 이렇게 전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무조건적인 굴종을 강요하며 그에 속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고 속박한다.


체제의 유지와 성공을 위해 농민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고 숙청한 스탈린의 공산주의와 유대인의 지상 말살을 꾀한 히틀러의 나치즘은 대립하는 동시에 닮아있다. 하물며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소련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런 강제된 운명 속에서도 인간성과 선(善)은 살아있다. 피난처인 도시에서도, 나치의 수용소에서도, 반체제 인사를 감금한 소련의 수용소에서도, 참혹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는 스탈린그라드의 6동 1호, 이른바 빠플로프의 집에서까지도 그로스만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우정의 요소들은 남아있다.


​삶과 생존의 경계에서 언제든 짐승처럼 변할 수 있는 절망적인 처지에 있음에도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또 우정을 나눈다. 아무리 크고 거대한 불행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인간성은 말살되지 않고, 아무리 큰 악에 대면 하더라도 인간 본성의 핵심인 선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결국은 삶과 운명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전한다. 하물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것 또한 그런 희망의 또다른 모습이며 이러한 희망이 바로 인간의 본능이고 본성인 것이다.


세 권 분량의 장편소설임에도 집중해서 쉽게 읽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처참하고 잔인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시간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우후죽순으로 출간되는 책들과 넘쳐나는 여타 수많은 컨텐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삶의 숭고함과 가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틈틈이 책장을 펼치면 그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한동안 손이 가지 않던 현대문학과 고전에 대한 흥미가 되살아난다.


의미있게도 100번째 창비세계문학 작품으로 <삶과 죽음>을 만날 수 있었던 행운이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게토에서 보낸 어머니의 편지가 전한 먹먹함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러시아문학 #현대소설 #삶과운명 #창비세계문학 #바실리그로스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