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새움 세계문학전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책에서 느꼈던 독특한 우울함을 잊기 전에,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얼마나 절망스러울 수 있는지, 그 끝을 파고드는 책이 인간실격이라면
사양은 절망과 우울함 속에서 희망을 찾는 책.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일제 전후 몰락한 귀족 집안 구성원인 가즈코, 가즈코의 어머니, 남동생 나오지의 이야기다. 셋은 기존에 누리던 것을 잃은 채 살아가는데, 상황은 어머니의 병증세가 악화되며 더더욱 절망으로 치닫는다.

예수가 이 세상의 종교가, 도덕가, 학자, 권위자의 위선을 폭로하고,
...
나의 이번 경우와도 전혀 무관계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154p


이런 상황에서 가즈코와 나오지는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다. 나는 이 둘의 결정적 차이가 자신의 욕망을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둘은 비슷한 정도로 불행했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할 구원자가 있었다. 가즈코에게는 우에하라 씨가 그것이었고, 나오지에게는 우에하라 씨의 부인이 그것이었다.

가즈코는 우에하라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 부인과 대면함으로써 자신의 양심과 마주했다. 가즈코는 양심과 사회적 평판을 버리고 사랑을 택했다. 이를 인정하고 표현함으로써, 가즈코는 절망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우에하라라는 존재 자체가 가즈코에게 큰 의지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에하라를 사랑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 즉 위선을 버림으로써 가즈코는 새 삶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나오지의 경우는 달랐다. 우에하라의 부인을 사모했지만, 이를 표현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나오지의 '양심'(선천적인 양심이 있다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적 평판에 관심없다는 듯 행동했지만, 그의 내면 한 구석에는 언제나 태생적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나오지로 하여금 그의 내면에 솔직하지 못하게 했고, 결국 그는 절망을 이기지 못했다.

인간실격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위선'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의 내면보다는 사회적 평판을 택할 때가 많다. 나또한 그렇다. 그러다보니 나의 본질적 자아가 사회적 기대로 점철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138p


가즈코가 말하는 사랑은 나의 욕구, 혁명은 사회적 비난에 맞설 용기가 아닐까.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 이는 나에게 비극이다.
이 책이 나에게 주는 메세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