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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는 서른 셋, 남자이다.
현재는 박사 수료 후 지방대 인문학 시간강사로 나가고 있다.
월 80만원씩 방학을 제외한 4개월간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
방학엔 계약이 안되어 있어 월급이 없다.
4대보험 적용이 안되고, 학자금 대출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므로 저 액수의 돈으로는 생활이 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주 60시간 이상 맥도날드에서 일한다.
거기서 비로소 사회인으로 발을 내딛을 자격이 생겨 4대 보험을 적용받고, 부모님을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
자식 노릇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허울좋은 젊은 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으나 실상을 파고들면 이렇다.
교수연구실 이사를 위해 수많은 책을 날라야했던 대학원생 시절, 그는 책탑이 무너져내려 다리를 찍혀 몇 바늘이나 꿰매야하는 큰 일을 겪는다. 그러나 누구하나 책임져주지 않고 괜찮냐는 전화 한 통 받지를 못한다.
맥도날드에서 물류 하차 작업을 하다가 얼음길에 미끄러져 팔꿈치 골절을 입게 되었을 때는 어땠을까?
매니저가 병원까지 데리고 가 처치를 받게 하고 병원비를 지불해주고, 일을 못하는 기간동안 70%의 임금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주겠다고 한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맥도날드라는 패스트푸드점 보다도 인간에 대한 대우를 해주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울분이 치밀었다.
그래도 그는 맥도날드에서 육체노동을 하며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것을 배운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되더라도 육체를 쓰는 노동을 약간이라도 지속하겠다고 다짐한다.
얼마전 읽은 <육체 탐구 생활>과 상통하는 부분이었다.
이 책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대학원생의 시간, 2부는 시간강사로서의 시간들을 담고 있다.
먼저 대학원생의 시간을 읽으며 억울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걷게 되었을지도 몰랐던 길, 그러나 나는 바로 윗년차의 선배가 찌들리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익히 보았기에 도망쳐 나왔었다.
조교 생활을 병행하며 학교 행정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해야 하는 위치.
교수가 부르면 고속도로를 타고 있다가도 번개같이 되돌아와 부름에 응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소개할 땐 "그저 잡일 돕는 아이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느낀 자괴감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그래도 꿈이 있었기에 석사 4기, 박사 4기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나는 꿈이 뭔지도 모르고 생각도 없이 살았기에 지금의 이 자리에 있는 것인가... 나또한 책을 읽으며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나 온갖 억울한 일들과 바쁜 일들의 와중에서도 논문을 위해 노력하고 열정을 바치는 그의 청춘에 정말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그 어떤 책보다도 동기유발이 되었다.
2부 시간강사로서의 모습들은 학생들에게 양질의 강의를 하기 위해, 학생들과 소통하며 교학상장하기 위해 애쓰는 존경스러운 모습들이 담겨있다.
젊은이들의 꿈을 펼쳐나가기에 너무나 각박한 이 '헬조선'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깊이 사유하고 나아갈 바를 조심스럽게 신중히 정해나가는 그의 모습들이 감동적이었다.
책을 읽기 전 절망하고 갑갑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란 어두운 예상과는 달리 책장을 덮으며 뭔지 모를 의욕이 돋았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차분히 걸어나가는 그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사회가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그 파도에 휩쓸리고 표류할만 함에도 깊이 사유하며 성찰하는 그의 모습을 본받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