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사랑한 여행
한은형 외 10인 지음 / 열림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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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열 명의 작가들 중 한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작가가 서너명에 불과할 정도로 나에게 친숙한 작가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경해 마지않는 작가라는 직업군들이 사랑한 여행이라니,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작가들은 여행을 가서도 우리 일반인들과는 다른 감성으로 낯선 풍경을 대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물과 사람과의 만남들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하는 기대감에 읽게 된 책이다. 그러한 예상이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는 것을 책장을 덮으며 확인하였다.


분홍 참외를 상상하고 뿔 떨어진 사슴으로 자신을 생각하라는 여린 감성에는 역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작가라는 존재들의 포스가 느껴져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한 번 제대로 책을 펼쳐볼 수 없을 거란 예상에도 욕심껏 책을 싸가는 미련한 모습, 기나긴 여행 길에서 변비로 고생하는 모습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겹쳐져 편안하게 느껴졌다.


"더 멀고 희귀한 곳에 가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그 순간 아프리카 안에 있었으니까. 어쩌면 내 생에 다시 오지 않을.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내가 꾀꼬리처럼 바구니 안에 잡아둔 잠시 멈추고 있는 시간."


읽고 또 읽고 싶은 문장이다. 꾀꼬리처럼 바구니 안에 잡아둔 시간, 그러고 싶은 시간들이 나에겐 어떤 순간들이었을까? 그러한 시간들은 사진으로 잡아두든, 글로써 잡아두든 내가 움직여줘야만, 동사로서 뭔가를 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니 후회하지 말고 꿈꾸고 행해야 한다.


여행의 정의가 여행 전문 작가나 파워블로거의 여정을 확인하는 소극적 행위로 좁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천의 글 부분에서는 격하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동안 내가 해온 행태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무작정 남들의 여행을 동경하지 말고, 오롯이 나만의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영향받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려면 속이 찬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단히 책을 읽고 생각을 깊이 하는 작가들을 닮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위시리스트들이 넓혀졌다는 것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일본.중국 기행>, 앨런 라이트먼의 <아인슈타인의 꿈>, 크리스토프 바티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카트린 파시히의 <여행의 기술>.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며 과연 이 책의 문장들을 소개한 작가들과는 또 어떻게 다른 감상을 얻어낼 수 있을까? 책을 흘려읽지 말고 마음을 치는 문장들을 모아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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