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치유력 셰익스피어 인문학 - 셰익스피어, 삶의 무대에서 치유의 깃발을 올리다
최용훈 지음 / 페르소나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너무너무 유명한 셰익스피어! 그러한 셰익스피어를 읽고 ​그 유명한 이유를 알고 싶고, 동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도전해 볼 용기가,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한 나에게 아주 적절한 책을 만났다. 글자를 읽고 있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또는 읽지 않고도 대략적인 내용과 함께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은 나에게 딱 들어맞는 책이다.


책은 비극 6편과 희극 14편의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리뷰, 그리고 명대사들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 잘 알고 있는 것도 있고 제목조차 생소한 내용도 있었다. 그 중 내가 읽어보았던 "오델로"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과연 나는 책을 읽으면 얼마만큼을 소화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물론 아주 예전에 읽었으므로 기억력의 한계를 감안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한 번 책을 읽었다는 것으로 "여기서 끝"하며 자만할 것이 아니라 여러번 곱씹어보고 내가 놓친 것은 없나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오델로는 간교함에 넘어가 정숙한 부인을 의심하고, 질투심에 빠져 아내를 죽이는 어리석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사리를 따지지 못하고 격정에 사로잡혀 커다란 죄악을 범하는 거칠고 무모한 흑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과 증오범죄의 근원에 '다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는 의심과 질투라는 인간적 나약함 외에도, 나와는 다른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인색함을 함께 드러내주고 있다 할 것이다."

                                                ---- 54쪽


셰익스피어는 워낙 여러사람이 이모저모에 대하여 연구하고 리뷰해놓았으므로 그러한 의견들을 이것저것 들어보고 통합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오델로라는 주인공은 어째서 흑인일까? 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오로지 셰익스피어라는 대문호를 찬양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이러한 유럽 중심적 사고방식의 한계점 또한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비판하는 점이 새롭고 신선했다. 영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에 의해서인지 의도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질투와 의심으로 파멸에 이르는 어리석은 주인공을 흑인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아무리 셰익스피어라 할지라도 인종차별적인 생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샤일록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로 악인으로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도 기독교적 사고방식에 의한 유대인 차별을 엿볼 수 있다.


"비극은 단지 슬픈 것이 아니다. 비극은 '고통을 통해 배우는 것' (learning by suffering)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더 큰 도덕적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 30 쪽


그러나 역시 셰익스피어의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은 정말로 놀랄만하다. 어떻게 인간들속에 숨어있는 그 많은 감정들을 캐치해내어 극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지금 읽어도 진부한 느낌이 전혀 없다. 그냥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인류보편적인 감정들을 저자의 알기쉬운 설명들로 듣고 있으니 참 편했다. 그러한 진리들을 어려운 고전 문체를 겪지 않고도 쉽게 들려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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