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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학사상 - 일월총서 2
박용숙 / 일월서각 / 1990년 9월
평점 :
품절
저자도 책머리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한국의 미학사상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음양을 생활에 접목시켜 이야기했다고 하면 더 좋을 글이다. 이 책은 나온지 꽤 된 책으로(10년이 넘었다) 지금 들고 있는 책은 90년판으로, 뒤의 정가가 4500원이다. 그러니 이렇게 세월이 흐른 책에 이천년대식 비판을 하는 것은 조금 비겁한 것도 같다.
우선, 이 책에는 두리뭉실한, 갖다붙이기 식의 비유가 많다. 황금비례를 이야기 할때는, 3:5, 5:8, 8:13 등. 소수 몇자리의 계산까지 해가며 이 비례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더라.. 하는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황금비례는 태초부터 우주에 존재하던 어떤 법칙이 아니라, 아름다움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탐구심이 찾아낸 하나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어느 집이나 김치를 담글때 배추(양)와 무(2)를 3:2로 한다. 이것이 황금비례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그것이 우주에 떠돌고 있는 수의 법칙이기 때문에 조상들이 그렇게 해온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하는 것이 식구들끼리 먹기에 알맞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어느 집이나 3:2로 한다고 말하면 매우 부정확하다. 그렇게 말하면 배추김치가 무김치보다 많은 집은 굳이 그걸 4:2라고 하거나 5:3 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래 뭐 대충 그정도쯤 되지.. 라고 할 수 밖에.
현재 생겨나는 신생어들, 예를 들자면 지금 휩쓸고 있는 '아햏햏'이나, '쌔우다' 같은 말들에서도 엄청난 의미를 찾을려고 애쓴듯한 글을 어느 싸이트에선가 본적이 있다. 그러나 그 말들이 무슨 법칙에 의해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이렇게 그냥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들에 대해 마치 처음부터 이론이 정립되어 있었던 것처럼, 법칙에 의해 창조된 것인것처럼 갖다붙이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려고 애쓰는 글들에는 이런것들이 참 많다. 마치 우리 조상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에 통달했던 것처럼. 할머니들이 김장독을 귀히 여긴 것은 이런 우주적 원리 때문이며(김장독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겨울을 어찌 보내란 말인가), 삼신할머니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고, 부처에게 합장하는 건 이래서이며.... 등등.
이런 훌륭한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신라의 화랑, 고구려의 장수가 되었다.. 라는 대목에서는 하... 왜 그 먼, 고증자료조차 불충분한 곳에서 우리의 민족성을, 우수성을 입증받아야 하는 건지. 그럼 조선에서는 어떤 위대한 힘을 자랑했으며 지금은 또 어떤지?
우리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며, 나 또한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마치 그것을 인정받는 것에 우리 민족의 사활이 걸린것처럼 끼워맞추고 갖다붙이는 것에는 안쓰러움을 느끼고, 민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