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정옥희 지음, 강한 그림 / 엘도라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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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한줄]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뒷맛이 씁쓸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좀 더 낮은 곳, 좀 더 가려진 곳, 좀 더 침묵하는 곳에 절로 눈길이 갔다. 어떤 분야를 보더라도 가장 평범한 이들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74p.

일만시간의 법칙이 한동안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엄청난 노력의 시간이 덧대어진 후에야 단단한 내가 된다는 비유적인 표현이겠지만, 한 가지 분야에서 일만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분야에 애정과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만시간을 예술이 쉬운 직업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발레를 전공한 저자는 일만시간의 노력을 기울여 발레리나로서 살아온 삶을 반추한다.

발레리나로 무대 위에 화려한 조명 밑에 더 화려한 튀튀를 입고 토슈즈 위에 서서 춤을 추던 발레리나는 그 시간을 지나 이제 무대 아래에 섰다. 우리는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속 주인공인 발레리나들의 군무에는 환호하지만 무대에 오르지 못한 이들과 어느새 무대 아래로 내려가버린 이들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다. 사실, 무대 위에 있는 이들도 아래에 있는 이들도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서 일만시간의 춤을 춘 사람들일텐데도.

발레리나에 갖는 환상은 그들의 현실 앞에서 점차 사라진다. 늘상 무대 위에서 멋진 모습을 위해 해야만 하는 다이어트, 금방 닳아버리는 토슈즈, 레슨과 연습에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발레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잘 하는 것과 하고싶은 것'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이리라. 그래서 이 책은 그녀의 삶의 기록이자 또 다른 분야의 발레리나들에게 전하는 삶의 고단함이다.

우리는 늘 주인공을 꿈꾸지만 언제나 주인공이 되진 못한다. 그래, 누군가 그랬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하지만 한번쯤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도 주인공이고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주인공의 자리를 위해 피가 터지도록 노력하던 시간이 무색하게 실패를 맛볼 때 느껴지는 서글픔과 비장함까지. 그럴 때 가장 먼저 들 생각이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못하고 지금 이순간까지 이 공간에 서있을까'일 듯 싶다. 결국,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가장 평범한 일상 속 평범한 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특별해지는 것이겠지.

낯선 직업의 낯선 이야기에서 왠지모르게 내 삶이 비친다. 내가 일만시간을 버텨 쌓아낼 성에는 어떤 시간이 새겨질까. 그 언젠가 무대에서 내려온 나 스스로에게 어떤 제목의 삶을 붙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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