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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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동네나 혹은 어느 학교에나 있을법한 구전설화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신기하고 재미있다! 이 이야기의 근본적 공포는 내가 이길 수 없는 자연현상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날 괴롭히는 대상이 실체가 없는 존재라는 것. 사실 이런 이야기가 도시괴담의 모티브가 되는 것이겠지만.

 

도시괴담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자연현상에 얽힌 괴담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현상 속의 나무들조차 이 세상에서 함께 살고자 한다면 얼굴이 있어야 한다니 너무 서글펐다. 얼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척이 얼마나 심한 것일까.

 

보통 우리는 몇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동물이나 식물을 영물 혹은 낮게 잡아 요물이라고 부른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서 그만의 역사를 구축해나간다. 그래서인지 소리나무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을 이 세상에서 영유하게 할 자신의 얼굴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뭐든, 명심해. 우리 삶은 여기에 있고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달아날 수 있죠. 죽으면 끝이니까요."

"그건 마무리가 아니라 절단이지. 삶이 낸 문제에 죽음으로 답하는 건 모두를 엿 먹이는 짓이야. 안 그래?"

-73p

 

실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안무섭다고 마음을 몇번이나 다잡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나타날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몇백년이고 이어진 설화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현실에 진짜 있다면 얼마나 섬찟할까 싶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다급해졌다.

 

죽음으로도 피해갈 수 없는 삶. 내가 죽으면 그 죽음의 책임이 다른 가족에게 간다는 것이 더욱 큰 공포로 다가왔다. 대를 넘어서 피를 나눈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든 그 책임이 넘어간다는 것도 공포가 아닐까.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인간은 자연이란 커다란 존재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느꼈다.

 

나는 혼돈 속에 던져질 것이다. 하지만 답이 혼돈 속에 있으니 그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답을 찾아야 혼돈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국 이 놀이의 본질이었다. 일상의 당연한 나와 균열을 비집고 들어온 당연하지 않은 또 다른 나의 자리다툼.

-171p

 

몇천년을 같은 자리에서 숨쉬며 자신만의 꿈을 꾸었을 노목들과, 어리석은 욕심으로 자신을 팔아낸 나약한 인간의 아슬아슬한 공존이라니. 상대를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구전설화의 색다른 해석이 너무 무서웠다. 연리지에 담긴 의미가 사랑이 아닌 구속이 될 수 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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