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 나를 규정하는 단어들은 몇 가지나 될까.  그 많은 단어 중에서도 나를 규명하는 것에 중심은 오롯이 내가 아닌 내 주변의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첫 문장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불쾌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의 일상적인 모습이 너무 사실적으로 담겨있어서. 그래서인지 이들의 상처가 한줄한줄 아렷고 슬펏다.

상수는 늘 외로운 삶이었다. 그래서 늘 풍요롭지 않았고, 그랫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살아보고싶어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국회의원의 아들로 규정짓고 기회를 가질 방법은 가르치지 않고 그럴싸한 기회만 제공했다.

경애는 사랑받으면서 사랑받는 것을 부끄러워해야하는 삶이었다. 그래서 가져선 안될 관계를 유지했고, 그로인해 마음을 다쳤지만 과거의 상처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경애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시흥의 창고에서 생각했던 것이었다.
- 298p

사회생활이란게, 어디 그 누구하나 만족하고 쉬운 일만 있을까. 입사 첫날의 포부는 어느샌가 사라진지 오래고, 어떻게든 주어진 삶에서 버티고 이겨내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생존전략이 되는 사회. 그 속에서 상수와 경애는 경계인이자 이방인이었다.

아버지라는 그늘아래서 자기 주장도 없이 살았던 상수의 삶. 처음엔 그의 삶이 이해를 하고싶지도, 이해가되지도 않았지만 지금의 경애와 지금의 상수가 만나 서로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점차 이해됐다. 무엇을 해도 그 둘은 갖고있는 이미지 속에 같혀 더이상 나갈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는 점이다.

이런 여름이면 그런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런 날들을 보내고 나면 삶이 한살 한살 들어차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닳고 없어지기만 할 것 같았다.
- 226p

자신들의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베트남에서도 이들은 그저 당하기만 한다. 그들은 그만큼 경계인이었기 때문일까.. 경계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했던 언니와 피조. 프랑켄슈타인이 앙리에 대한 죄책감에 만들어낸 크리쳐처럼 경애는 죄책감에 피조를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피조가 존재했으니 비극을 예감한걸까.

그렇다면 그들의 경계선에 존재하는 E가 사건 속에 휘말리지 않고 그대로 함께였다면 함께 오래했을까. 그랫다면 그들은 러닝타임 속 자신의 공간을 공유했을까. 서로를 기억하는 이름이 다른 그를 통해 경애와 상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본다는 건 러닝타임 위를 걸어
자기 마음속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21p

결국 이들의 만남은 또다시 처음처럼 불균형한 모양새로 헤어진다. 경애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남았고, 그런 경애를 위해 상수는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났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172p

첫 시작부터 마음이 편치않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편치않다.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삶의 방향 속에서 올곧은 길을 찾지 못한 두 경계인은 어디로 걸어갈까.
그럼에도, 건강하세요, 잘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