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죽기로 결심하다 - 어느 날 문득 삶이 막막해진 남자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
콘스탄체 뢰플러 외 지음, 유영미 옮김 / 시공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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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고

제목부터 아주 의미심장한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는 그 동안 세상의 앞만 보고 달리던 남자들에게 한번쯤 자신을 뒤돌아 보고 자신의 내면을 다시 들여다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또 한번 더 들어가 보자면 과연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라는 물음 속에, 남자라는 성()에 묶인 나를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사실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는 세계적인 권위에 정신의학자인 만프레트 볼퍼스도르프와 저널리스트인 저자 두 사람이 공동으로 남성우울증에 대해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 위해 그런 서두를 깔고, 쉽사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남자들의 주위를 끌기 위해 강한 어조의 제목으로 시작을 한다.

보통 우울증 하면 여성의 사례가 기본이 될 정도로 보편적인 우울증에 대한 얘기가 여성을 중심으로 쓰여지거나, 얘기를 하곤 하지만 자살률은 남성이 오히려 2~3배 높다고 한다. 그런데 남성이란 성에 묶인 남자라는 존재는 동, 서양을 막론하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거나, 살피고, 또는 자신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자각하는데 너무 늦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미 자신을 자각했을 때는 치유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르고 결국 생을 마감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 남성들만의 우울증에 대한 증상은 사뭇 여성들이 겪는 증상의 단계와 다르기도 하지만 주로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가볍게 생각하거나 일이나 다른 인간관계에 몰두하는 것에서 오는 피로감정도로 치부해 버린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부의 정도와는 상관 없이 오히려 유명인들 사이에서 쉽게 일어 난다고 하는데, 이것은 남성성과 사회적인 지위 그리고 명예, 책임감, 그리고 경제적인 능력, 더 하면 성적 능력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남자들에게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자신의 문제에 대해 거의 표현하지 않고 끊임 없이 포장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쌓여 있다는데 이것은 실업, 질병, 가정관계, 또는 나이의 변화로 그 균형이 깨질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남성 우울증의 증상을 만든다고 한다. 더욱이 남성성을 깊이 내면화한 사람일수록 그 과정에서 오는 아픔을 혹독하게 경험한다고 한다.

요즘은 사회가 개인에게 그렇게 너그러운 사회도 아니고 변화되는 상황도 빠르게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한 개인의 감정을 살피거나 여유를 주지도 못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이런 자신을 추스리기도 전에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거나 불투명한 미래 앞에 자신을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저자는 이런 세상의 움직임 속에서 보편적인 우울증의 제 증상을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남자들만의 특화 된 상황을 얘기하며 남성우울증에 대한 얘기를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가장 포인트가 되는 것은 의외로, 여러 사례를 속에 얘기 중에 나의 그림자도 스쳐지나 간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남자들이 이러한 제 증상을 그냥 피로하다거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스트레스 정도의 과민한 정도로 지나갔을 것이다.

여기서 한 예로 드는 번아웃증후군(탈진증후군)이 있는데 이러한 증상은 우울증과 아주 유사해서 차이가 거의 없지만 이러한 증상이 우울증의 중증으로 이어지는 단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현대인이 겪는 문명병이라 일컬어 지고 있지만 이미 수면장애가 일어나고 무기력해지면 이미 신체의 균형이 깨졌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당신은 우울증입니다.’라고 말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낯설기 조차한 각종 우울증약들을 단계와 증상적으로 열거 하면서 자각과 함께 증상에 따른 심각함을 얘기하고 있다. 이건 저자의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아마 정신병이라는 트라우마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남성의 권위적인 자기 방어를 이라 인식시켜주고, 한편으로는 주변 상황을 현실로 빨리 인식하고 그 예방과 함께 자신을 인정하고 돌아보게 하는 '현실인정 단계'를 의도 했다 보여진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신체의 노화를 낯설어하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남성들에게 이것은 박탈감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고 현실에서 그 단계에 따른 육체적인 모습과 심리를 받아들이게 조언을 해주고 있어 생각보다 상세하고 괜찮은 가이드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미 우울증이나 그 전조단계를 겪고 있다면 얼마든지 겪고 일어 날 수 있다고 상세히 조언을 하고 있다. 분명 고쳐지고 충분히 회복의 탄력성을 가지고 있기에, 결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고 여러 사례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적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몇 유명인들의 삶을 예로 그들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도 이러한 것이라 여겨지는데 이것도 어쩌면 포장된 사회 속에 자신이 매몰되는 사례를 미리 선험적으로 보여주어서 당신만이 그런 것이 아니니 쉽게 들어 내고 자신의 그런 상태를 꺼리지 말라는 간곡한 충고처럼 들린다.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는 순간 순간 자신도 모르는 충동에 싸이는 그런 사람에 꼭 필요한 책이라 여겨진다. 혼란스럽지만 드러내기는 어렵고 실제로 자신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여유를 갖고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어서 이러한 제 증상을 작거나 크게 겪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함께 여기 나도 함께 하고 있어요?”하는 속삭임을 주고 있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주변에도 이제는 쉽게 발견되는 우울증은 이제 특별한 사례가 아니고 누군가 터부시 할만한 그런 사례도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그저 병은 병일뿐 나조차 그런 부류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생각하고, 빨리 인정하고 다른 모든 병처럼 시기를 놓치지 않는 치료가 중요 하다고 생각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여성의 우울증이 쉽게 들어나지만 실제로 안으로 감춰진 남성의 우울증과 함께 나를 돌아보고 알게 된 책이라 의미가 깊은 책이 되었다.

우리나라처럼 유교적인 관념과 가부장적인 나라에 더 하다고 하니, 이 깊은 마음의 아픈 상채기를 조금은 편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어 보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깊어 가면 남자들은 더 쓸슬해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낭만의 다른 표현이 아니라 어쩌면 그런 마음의 병을 얘기하는 지도 모르니 한번쯤 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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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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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을 읽고

이야기는 가난하지만 평범한 소설가와 출판사 편집직원으로 있는 한 남, 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의 결혼으로 탄생한 필연적인 생명의 잉태 속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그 생명을 재단하고 심지어는 임의로 가볍게 지워버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 그런 상황이 갑자기 알 수 없는 공포스러운 상황으로 바뀌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그런 일이 되어 버린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의 주제가 나에게는 아주 아픈 상흔을 떠올리게 되는 얘기라 생각보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지만 그 고통스러웠던 상흔이 글을 읽는 순간마다 떠 올라, 쉽게 글을 옮길 수 없어 무척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굳이 이 소설이 어느 누구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경종을 울리는 스릴러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 시의성(時宜性) 있는 스릴러라니, 휴가 기간 동안 무분별한 젊은 청춘들에게는 한번쯤 읽고 생각해보라고 할만한 소중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섬뜩하지만 무엇이 자신의 행동에서 오는 소중함인지 알 수 있기를 바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앞서 개인적인 얘기를 언급한 것은 이 이야기가 생명의 소중한 탄생을 담고 있어서이다. 그리고 그 모성이 보여주는 치열하고 간절한 생명의 지킴은 죽음조차도 뛰어 넘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젊은 부부인 슈헤이가나미는 갑작스러운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자신들의 개인적인 경제상황과 관련 없이 어느 날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형편으로 키울 수 없다는 판단으로 중절 수술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제 삼의 존재가 가나미에게 빙의 되어 이야기는 엄청난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 알 수 없는 존재가 태내의 아이를 지키려 하고 그 아이에 대한 위해가 가해지려는 모든 것들 것 적으로 돌리며 자칫 두 부부와 그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 얘기는 여기서 정신과 의사인 이소가이를 등장시켜 이 상황을 단순 병리학적 문제로 몰고 가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게 전개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한 젊은 부부와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정신과 의사의 트라우마가 겹치면서 이런 현상이 단순하게 정신병리학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다른 문제인지를 놓고 독자들을 긴장과 공포감에 몰아넣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임신한 태아에 집착하는 제 삼의 현상을 일으키는 다른 존재에 대한 진위와 그가 보여주는 생명의 집착이 왜 그런지, 그리고 그런 모습 속에 보여주는 각각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자신만의 입장 등이 생명의 존재를 마치 자신들이 결정하고 판단 할 수 있는 것처럼 간단하게 몰고 가는 상황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를 일깨우게 만든다.

그 제 삼의 존재가 일으키는 모든 공포스러운 현상을 인간이 가진 능력 안에서 재단하려 했던 정신과 의사도 모든 것을 뛰어넘는 알 수 없는 모성 앞에서 인간이 가진 능력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돌이켜 보게 된다.

이렇게 그 공포스러운 삼의 존재에는 어떤 비밀이 있었지만 결국 그 비밀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어 우리가 갖는 내밀한 쾌락이 결코 욕망을 소비하는 쾌락으로 그치지 않고 거기에는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그 이상이 것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저자인 다카노 가즈아키는 상당한 심리 추리 스릴러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라 사람이 갖는 심층적인 공포의 단계를 잘 알고 몰아가는 힘이 있어 보였다. 우리는 그런 공포를 때론 아픔으로 때론 현실을 잊는 도구로 사용하지만 현실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얼마나 더 큰 아픔이고 더한 현실의 공포인지를 잘 터치하고 있다.

앞서 얘기한 개인적인 아픔도 얼마나 자신의 아이를 잃는 것이 아픈 일인지 잘 알기에 이 소설은 단순히 스릴러 소설로만 읽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시의성을 얘기한 이유도 요즘같이 가벼운 성의식을 갖고 있는 지금의 세대의 남녀에게도 그렇고, 휴가철이면 책임지지도 못할 수많을 생명을 버리는 많은 사람에게 모성이 던지는 외침을 들어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결코 KN의비극과 같은 일이 안 일어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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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여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오후세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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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여자] 오쿠다 월드에 또 한번 풍덩.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 층을 가지고 오쿠다 히데오는 다양한 소재의 작품만큼이나 독특한 인물들을 그리고 있는 작가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 개인적으로 좋은 것은 인물과 상황의 묘사가 간결하지만 그 여백 속에 숨겨져 있는,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의 리얼한 묘사와 거기에 따른 상황의 섬세함이 같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보통 사람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해학적인 인물도 그의 작품에는 종종 등장하는데, 그런 보통의 주변인물이 바로 우리주변의 인물처럼 거부감 없이 다가와 수다를 떨면서 현실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주변 인물을 통해 주인공에 접근하는 방식이 아주 흥미롭게 사용되는데 어느덧 한 인물의 겉과 속을 서서히 알 수 있게 만드는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을 보여 준다. 그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식이든 스릴러식이든 하나씩 연관 있는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져 가다가 결국에는 전체의 윤곽이 드러나는 식의 글이라 한번 잡으면 놓지 못하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어 끝을 보게 만든다.

이번 <소문의 여자>는 그런 오쿠다 월드를 또 한번 체험하게 만드는, 그만의 또 다른 캐릭터에 몰두하게 만든다.

은근히 다른 사람의 뒷얘기들을 좋아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속성을 꼬집으면서도 우리가 말하는 진실과 정의(正義)란 것이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미 그런 얘기는 저가가 서문에 밝혔듯이 대부분의 사람이 양심이란 것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발휘되는 건 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한 한다.”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소문의 여자>는 더욱 독특한 구성인데 이 이야기의 퍼즐은 10가지의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어느 중고차 매장을 방문한 회사원, 공무원에게 이권을 챙기려는 건설회사 사장들, 유산을 서로 챙기려고 친 인들을 모함하는 자녀들, 실업수당으로 도박을 하는 실업녀들, 일본의 실상을 보여주는 워킹푸어 부모세대들, 조상을 빌미로 돈에 혈안이 된 종교단체들, 경찰내부의 알력과 파벌 싸움으로 사건 조차 승진에 이용하려는 상사들, 젊은 건설회사 사장을 자신의 이권을 위해 몰아내는 이권 단체들, 그리고 우익단체, 그리고 시의원.

배경이 되는 지방의 소도시의 어느 곳인지는 이 얘기에서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도 시골의 작은 마을이 모여 있는 소도시라면, 그 곳의 토박이로 살면서 앞뒤 동네 몇 없는 초, , 고를 거치면서 거의 한 다리 건너 대부분은 인연을 맺거나 다 알고 사는 좁은 곳이 되는 그런 곳을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별로 특징 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에 소리 소문 없이 이슈메이커가 되어버린 이토이 미유키란 팜므파탈의 여자의 뒷모습을 쫓아가는 그런 이야기 구조이다.

분명 주인공은 이토이 미유키라는 알 수 없는 인물인데, 그녀의 실체는 오직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나 서술 또는 증언에 의해 양파의 외피가 벗겨 지듯이 한꺼플씩 벗겨지면서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앞서 양파껍질을 언급했듯이 그녀의 실체는 좀처럼 그 마각을 드러내지 않고 그 와중에 주변사람들만 그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와글와글 떠들어 댈 뿐이다.

작가가 이런 주변 에피소드를 통해 그녀가 벌이는 악행에 접근하는 방식은 마치 그림을 스케치하고 하나씩 색을 칠해가는 방식으로 하나의 인물화를 그려가듯이 접근하는데, 그러면서도 그 에피소드 통해 지금 일본이 처한 사회상을 개인들의 처지와 입, 행동을 통해서 때론 신랄하게 때론 해학적으로 드러내기를 서슴지 않는다.

마치 그녀가 벌이는 밝혀지지 않는 범죄행위에 당위적인 명분이라도 부여하듯이, 그녀가 마치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이 만드는 이 사회가 잘못 됐다는 듯이, 그들이 벌이는 소소한 부정부패나 불법 등이 이미 이 사회에 당연한 요령으로 자리 잡아 우리가 말하는 사회정의라든가 윤리문제를 구태의연한 사실처럼 취급해 버린다.

작가는 이토이 미유키와 그녀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혁의 대상은 논하지만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이라는 개념에 선을 긋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의 불완전함을 내세워 그 경계는 이미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구도 자신이 정의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인간의 본성을, 여러 계층의 사람을 동원하여 그 진실을 아는 독자와 더불어 조롱하고 낄낄거리게 만드는 또 하나의 뒷담화를 만들어 버린다.

사실 오쿠다 히데오가 우리를 끌어 들이는 것은 얘기의 소소함에 있다. 그냥 가십거리 중에서도 그런 이야기의 통찰력은 누구 누가 이러더래하고 쉽게 떠드는 사람들에게서는 결코 발견 할 수 없는 그만의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토이 미유키는 이러한 소소한 가십 속에 슬쩍 등장하다가 빠져버리지만 그녀의 본 모습에 접근 할수록 그녀의 다른 매력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모두를 이용하고 정황적으로 분명 범죄를 치밀하게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되지만 오히려 무기력한 다른 수 많은 남자들보다 그녀의 능력 있음을 성원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자신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은 그녀를 다 보여 주느냐,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는 상당히 짓궂게도 결코 그녀의 실체를 다 보여줄 의사가 없었는지 독자의 의도를 한번에 내 팽 기치는 뒤통수를 작열한다.

이렇게 오쿠다 월드는 그 자체로도 우리의 반면교사요 우리의 내면의 실체 일 수도 있는 그곳을 지향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체념한 삶일 수도 있는 그곳을 보여준다.

이 더운 날 책을 잡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 한잔 들이킬 때가 오면 앞뒤 또는 옆에서 이런저런 사연과 얘기를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들리는 이야기 속에 이 책 <소문의 여자>가 생각 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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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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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개츠비

대학시절 작은 문고판으로 읽었던 아련한 기억에 기대기에는 앙상한 가지처럼 메마른 기억만 나았기에, 오랜만에 옛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읽게 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그만큼 감회가 새로웠다.

클래식이라 불리기에는 비교적 근대작에 속하는 작품이라 옛 명화극장 한편을 보는 느낌으로 읽었지만, 역시 요즘 작품에 비해 감정적인 수사(修辭)나 명칭, 인용 등이 많았고 예전에 보던 다이제스트판 하고는 번역이나 분량이 만만치 않아 생각보다 오랫동안 손에 잡고 본 책이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이란 미 중서부 출신의 데이지의 사촌의 시각에서 서술이 되는데, 처음의 제이 개츠비에 대한 인상은 제3의 시선으로 넘나드는 닉 캐러웨이의 말처럼 부유한 상류층 파티족들의 한 사람이자 1차세계대전을 전, 후로 한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부유층이 된 신흥부자들 중 하나 일거라는 모호한 추측으로 묘사 된다.

아마도 그런 시각은 개츠비를 좀더 호기심이 동하는 인물로 평가 할 부분이었지만, 자신의 사촌인 데이지와의 과거사를 알게 되고, ‘개츠비의 화려한 생활, (), 그리고 어두운 과거까지 알게 되었어도 좀처럼 의 시각이 바뀌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런, 변해가는 미국 동부의 급격한 변화에 자신의 기준을 지키거나 적어도 자존심을 지키며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그래도 은 그와 개츠비를 둘러싼 모든 일에 증인인자 화자가 되어 개츠비의 모든 것을 나누는 유일한 자가 된다.

<위대한 개츠비>는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비극적인 로맨스의 완결편이었다. 사랑하던 사이었던 가난한 군인과 상류층의 여인 그리고 그러한 신분과 부의 차이 때문에 떠나버린 여인을 잊지 못해 온갖 일에 뛰어들어 마침내 그들과 견줄만한 재력과 명예를 쌓아 돌아오지만 이미 다른 이의 아내가 되어버린 연인을 바라보며 그녀를 지켜주려 한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 상류사회의 허영과 환락에 변해버린 여인은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고 결국 그녀의 행복을 빌고 지켜주기 위해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

<위대한 개츠비>는 지금의 화법처럼 두 사람간의 비극적인 사랑의 얽힘을 그들에게만 맡겨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제3자인 이란 화자를 두어서 그들의 각자의 모습과 환경 상황 등에서 오는 과거의 감정과 개츠비데이지의 관계를 제3의 시선을 끌어와서 조금 더 풍부하게 그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게 해준다. 아마도 지금 같으면 두 사람의 주인공이 사랑의 해결점을 직접 찾고 그 감정을 쉽게 드러나게 하고 쉽게 해결하는 인스턴트 식 막장 드라마로 귀결점을 찾았겠지만 그 당시의 사랑의 로맨스는 좀 더 우리의 가슴을 애타게 만들고 에둘러 자신의 감정들을 다양한 수사로 표현을 한다. 어쩌면 그런 방식은 지금에 비추면 좀 진부 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상황과 감정을 보여주기에 좀더 진정성과 깊이 있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25년은 미국이 전후에 급격한 산업화를 이루면서 부의 계층이 심화되는 시기도 되었지만 미국이 구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여러 가지로 시대적인 재편성이 되는 시기였다. <위대한 개츠비>에도 은근한 범죄의 냄새를 풀기며 묘사되는 구석들이 있지만 실제로 밀주(密酒)’를 통한 불법적인 부의 축적도 그렇고 금융과 증권의 호황 속에 흥청대던 미국의 사회상이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이런 미국은 전쟁으로 피폐해져 있던 유럽이나 미국의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도 미 동부지역의 활황과, 한편으론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많이 이주해 오던 시기라 호황에 따른 재즈시대의 화려한 면모 이면에 상당한 부의 격차가 함께 했던 시기였다. 거기에 전후에 전쟁 트라우마가 있던 젊은이들이 자칭잃어버린 세대라고 하면서 미국을 떠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은 아직도 가문이나 신분이 상류사회에 척도로 자리 잡아 남아 있었으며, 신흥 부유층의 배경이 함께 섞이던 시절이라, 그 격차만큼이나 신분 상승의 욕구도 커져 있던 개츠비같은 야망이 있던 젊은이에게는 아주 잘 맞는 시대였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데이지로 이어진 상류층의 허울과 허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개츠비를 통해 그 당시 잃어버린 세대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켜 잃은 것을 채워 넣으려 한다. 그것은 개츠비’. 그의 죽음을 통해 얻어진 미국인의 인간적인 정신이 살아 있다는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민자들이나 중,서부 이주자들에게는 부()를 이루어 내는 것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사랑과 집착은 아름답다고 포장되기에는 변질된 미국의 꿈이나 미국사회의 물질주의를 빌어 속물적인 부의 비판이 더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개츠비가 죽지 않고 살아 남아 데이지를 얻었다면 허영과 환락 속에서 껍데기 같은 삶을 사는 속물인이 되어 결코 <위대한 개츠비>란 제목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도 도무지 제목에 왜? 위대하다고 제목이 달렸는지 이해가 안되었지만 이제는 살짝이나마 미국인들의 비판정신과 영웅주의를 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생각까지 해보게 되었다.

오래 전에 본 <위대한 개츠비>는 분명 안타까운 로맨스소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큼 세월의 때가 묻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행복의 기준이 어떠한 것인지, 삶의 아픔이나 허망한 욕망의 뒤안길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생각하며 정독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소설이 나온 후 몇 년 뒤에 있을 경제 대공황을 역사적으로 알고 있기에 이들의 모든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라는…. 그리고 이로 인해 미국의 모든 것이 완전히 재편되고 고통을 받을 것인지 안다는 것이다.

고지식한 미 중서부 출신인 이 오히려 주인공 같은 소설인 것도 아마도 이런 비틀린 미국의 꿈을 상징하는 개츠비를 미국인의 정신으로 쉽게 인정하지 못해서 그런게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 봤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나서 생각나는 한 가지는, 우리가 사랑이든, , 이든지 어느 것을 자신의 가치기준으로 삼아 이룬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행복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개츠비가 죽어야 했던 것은 그 가치 기준을 조금이라도 완성시키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다양한 문어체와 미묘하게 연결되는 감정의 수사들이 낯설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음미하며 읽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Ps. 무비jy님 이벤트로 민음사에서 제공된 김욱동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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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터 - 뼈와 기계의 전쟁 본 트릴로지 Bone Trilogy 2
피아더르 오 길린 지음, 이원경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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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터 뼈와 기계의 전쟁]

본 트롤로지의 2번째인 디저터는 1편인 인피리어에 이어서 야만 부족인 스톱 마우스와 루프 라는 거대 돔위에서 사는 상층인 인드라니의 생존과 삶, 사랑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1편은 어느 미지의 장소에서 서로가 생존을 위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생물들이 이 얽혀 살며 인간은 그들을 식량으로 삼아 생존을 이어 간다. 그리고 인간조차도 생산에 도움이 안되면 부족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몸까지도 다른 종족 괴물과 식량으로 바꿔지는 것을 당연히 하며 살아온다. 하지만 어느 날 루프위에 달려있는 글로브라는 물체에서 떨어진 상층 종족인드라니에 의해서 이러한 생활에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부족에서 쫓겨난 스톱 마우스인드라니의 투쟁은 여기서부터 시작을 한다.

2편인 디저터는 이 말의 비밀이 조금씩 언급이 되면서 오랜 세월 전 옛 지구를 망쳐버린 인간들의 조상을 일컫는 것으로 하나씩 얘기의 껍질을 벗는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이주해 온 인간은 그 동안 루프라는 거대 지상 돔을 만들고 그 위로 층층이 또 다른 층의 구역을 만들어 살아 왔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여 그곳에서도 발전한 나노 기술로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 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루프에 이상이 생기면서 그들의 유토피아는 서서히 붕괴가 되고 있는 중이다.

스톱 마우스는 자신을 야만인 이라 부르며 서로가 서로를 식량으로 삼지 않으면 생존 할 수 없는 지상의 모든 것이 바로 이 루프 위에 있는 세속인이라 부르는 상층부에 있는 인종들의 짓임을 알고 경악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부인이 된 인드라니스톱 마우스에 감화가 되어 마침내 인간의 사는 본 모습이 어떤 건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게 하며 서로를 먹어야만 살 수 있게 만든 모든 것이 모두 자신들의 행위이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알게 된다.

인드라니를 구하러 마침내 루프에 온 스톱 마우스는 루프 위에 종족을 자신들의 조상의 영혼들이라 생각 했었지만 이곳은 드리머라는 꿈꾸는 자들의 허황된 욕구만이 보일 뿐, 그가 생각 한 그런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모든 인간들 조차도 단지 그가 인드라니의 남편이란 이유로 이용의 대상으로 삼으려 할 뿐이었다.

진실은 이들이 나노 기술로 이루었던 유토피아의 세계가 사실은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

결국 그 옛날 지구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던 것처럼 소수의 엘리트라 불리우는 위원회와 그들이 이 곳을 버리고 탈출하려 하지만 인드라니의 기억 속에 가장 중요한 탈출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고 스톱 마우스인드라니는 지상의 인간부족의 생존과 루프의 또 다른 인간들의 생존을 위해 온갖 역경을 겪게 된다. 그와 중에 인드라니는 출산을 하지만 그 아이는 그의 형인 윌 브레이커의 아이라는 가슴 아픈 일을 알게 되고 인드라니가 그의 형인 윌 브레이커에 당한 아픔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탈출선을 움직이고 그의 부족을 구할 길을 찾아가게 된다.

본 트롤로지 1편인 인피리어와 2편인 디저터는 다음으로 또 이어져 간다. 본 트롤로지의 세계관은 작게는 트르먼 쇼처럼 누군가를 특정 지역에 가두고 지켜보는 드리머라는 인간들의 행위를 가리키고 또 한편으로는 어느 지역에 가두고 끊임없이 생존의 법칙을 수행하는 헝거 게임의 모습에 닿아있다.

어느 것이나 인간이 가진 욕망의 정의를 또 한번 내릴 수 있겠는데, 결국은 야만인이라 부르며 그들의 조상인 디저터들이 모든 자원을 낭비하였기에 너희들이 그런 취급을 벌처럼 받아야 한다는 신격화한 루프의 인간들의 욕망이 그것이고, 너무 발전한 기계문명이 인간을 얼마나 나약하고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잔인한 욕구덩어리로 만드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들이 낙원의 도구라고 의지한 나노 기술인 루프가 붕괴 되면서 그들의 이기적인 욕구의 표현은 극대화 된다.

스톱 마우스는 단지 그들이 즐기는 잔인한 유희 도구였지만, 그가 가진 삶의 진실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과 생존을 위한 진정한 투쟁이었을 뿐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미래가 아무리 발달한 물질문명을 가진다 해도 행복이란 기준은 인간의 끝도 없는 욕망이 제어되지 않는 한 없을 것이란 암울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 -E’를 보면 인간은 지구를 버리고 떠나고 그 인간들은 우주선에서 기계에 의지한 안락한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아무런 낙이 없는 그들은 형편 없이 나약한 다른 인간형의 모습이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계층의 문제, 빈부의 문제 그리고 종교와 비 종교인들의 문제 등은 끝없이 반복 될 수 있는 문제들이고, 또한 현재의 모습이기에 저자가 경계하고 얘기하고자 하는 모습이 투영된다고 보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이 루프 안에 인간들의 모습에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모든 자원을 낭비하고 소비한 인간들을 풍자하는 디저터와 자신들의 유희를 위하여 다른 인종을 먹고 먹히게 만드는 루프 위에 인간들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 육식을 하는 인간 부족들의 모습 중에 과연 누가 더 야만인지는 판단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1편과 2편을 통해 결코 미래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의 혼재 된 모습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저자는 이제 인간이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택하기를 바라고 있다. 과연 3편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인간은 스톱 마우스인드라니를 통해 또 어떤 미래의 모습을 보여 줄 지 궁금하다. 다음편이 기대 되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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