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 순수 저항 비판
조지 A. 던 외 지음, 윌리엄 어윈 엮음, 이석연 옮김 / 한문화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는 그간 다른 철학 서적과는 달리 참으로 독특한 체험을 하게 한 책이다. 보통의 철학서와 같이 철학자들의 문답이나 철학자들의 사상을 강의식으로 풀어내는 대신,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책인 '헝거게임'시리즈나 영화 '헝거게임'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안에 담긴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그녀가 속해 있는 사회 속 체제,규범 그리고 또 다른 군상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이야기 속에 다른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대입하여 함께 풀어나가는 시간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는 우선 '헝거게임'이란 책과 영화의 내용을 안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을 한다. 하지만 익숙한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는 사실 그리 만만한 책을 아니었다. 그러나 헝거게임 시리즈를 좋아하고 그안에 다양한 인물들과 '캐피톨'이 만들어 놓은 디스토피아적인 근 미래 상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공유 할 독자라면 이 책'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는 너무나 알맞는 '지적인 사유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헝거게임' 속에 투영되는 사회구조, 인물 그리고 그 속에서 행하여지는 여러 행태 속에는 소위 우리가 현실에서 자주 말하는인간의 행위가 모두 담겨있다.
물론 헝거게임 속 근미래적인 세계관과 구조가 이미 그렇게 제편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안에 불합리, 부조리, 불편 부당, 체제의 전복, 혁명, 인권, 도덕, 인간의 정체성, 전쟁의 폭력,정치,경제, 가족, 사랑, 희생, 명예, 권력욕, 미디어의 환상, 자유, 독제, 전체주의, 우민화, 음란, 관음증, 새디즘 등 인간의 모든 역사속 행위가 총 망라 되어 있어 주인공인 '캣니스'를 따라 가다 보면 그녀와 얽힌 모든 과정 속에서 이 관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우선 그 속의 얘기를 일곱개의 STAGE로 나누어 하나씩 짚어 나가고 있다.
책을 보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상을 만들어 놓은 독제국가 '캐피톨'의 행위는 이미 그 체제부터 오류를 가지고 시작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정복국가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의 서바이벌 게임인 '헝거 게임'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체제의 균열을 스스로 만들어 온 까닭이다.
이 '헝거게임'의 문제는 '정서의 저항'을 유발 한 것이다. 12개 구역에서 인간 조공을 바치게 만드는 것도 그 저항의 불씨를 만들어온 셈이지만 인간 조공의 대상을 아이들로 만들어 죽음에 이르는 파괴성을 보인 것은 인격의 박탈행위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음적이고 새디즘적인 '헝거 게임'에 아이들을 참여 시키면서 그들 스스로 아이들을 지킬 힘이 없음을 계속 인지케 하고, 예수를 오줌통에 빠트린 안드레 세라노의 사진처럼 이미지적으로 치욕과 모욕을 가하여 절망하게 만드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적인 실수는 인간이 가진 '진짜 인간의 정체성'을 간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해 진짜 인간의 상징이 되어 버린 캣니스가 저항의 상징인 '모킹제이'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거치나 결국은 '캣니스' 그녀 스스로가 그 역할을 자각했다기 보다는 그런 이미지를 저항의 불씨로 만들어 준 '캐피톨'의 스스로 위조된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한 행위에 기인했다고 한 것이 맞을 것이다.
캣니스 스스로도 사실 조공인으로 선발 되기 전에 그리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살기위해 사냥꾼 노릇을 했고 이웃인 빵집 아이 '피타'가 가진 순정도 없었다. 덕분에 캣니스의 복합적인 모습은 인간이 가진 다면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고 헝거게임 주인공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수 많은 죽음을 제치고 살아 남는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캣니스를 저항의 상징으로 여기게 된 까닭은 그녀가 가진 복합적인 모습속에서 계속 보여주는 칸트의'선의지'에 의한 이타적인 행동들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힘에 굴복하지 않고 그 의지를 계속 보여 주었고 그 의지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불공정한 세상에 공정성을 복원해줄 대상으로 여긴것이다.
그것은 헝거게임에서 피타와 같이 독이 든 산딸기를 같이 먹는 행위로 '캐피톨'의 지배쇼에 정면으로 거부하고 인간으로의 정체성을 생명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캐피톨'이 그간 쥐고 억눌렀던 생명의 담보를 무력화 시키는 효과를 얻게 되었고, 가장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순수한 이타심을 발현케하여 혁명의 불씨를 지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헝거게임'은 캣니스와 피타, 게일, 헤이미치, 스노우 등을 통해 인간을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모두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가? 라고 '다윈'은 얘기 했는데 과연 이 얘기를 관통하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 과연 도덕적인 순수가 발휘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다.
그것은 판엠의 12구역 사람들도 '캐피톨'과의 전쟁을 통해 패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이 된것이고 그들도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전쟁을 한셈인데 과연 그 가운데서 진정한 도덕적인 순수가 있었을까?
비록 현재의 현실이 '캐피톨'의 잔혹한 행위에 기인하고 있었고 혁명의 동기 또한 그로 인한 것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과연 현재 혁명의주체는 또한 순수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캣니스는 혁명에 성공하고 스노우를 몰아 내었지만 다른 혁명 주체의 행위가 또 다른 홉스식의 사회계약에 의한 강력한 공동 권력하에 이루어진다면 또 다른 스노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는 이렇게 헝거게임 속에서 찾아낸 비틀린 인간들을 얘기 하고 인간이 만든 정치 경제의 부패와 인간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통해, 책에서 언급되 수 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이 '헝거게임'속 인간 군상들을 어떻게 애기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비록 가상의 세계를 얘기 하고 있지만 결코 그안에 담긴 얘기는 허구의 세계를 얘기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우리의 현실의 그림자요 직접적인 인간의 모습을 투영해 낸 모습일 것이다..
캣니스도 자신의 계속 되는 흔들림을 인간이 가진 한계라 인식하고 있었고 그걸 경계하고 있으니, 그녀가 아무리 도덕적인 운에 기인하여 자신을 지켰다고 한들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모든 것이 어쩌면 쇼인 시대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기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녀도 결국 그들과 같아지는 것은 자명한 결과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루이 물라소'의 과연 '정의로운 전쟁'은 있는 가란 질문의 답은 결코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가 나의 생각이다.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는 '헝거게임'이란 가상의 세계를 들여다 봄으로써 지금의 우리를 다시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유의 시간이었다. 캣니스 가 보여준 진실의 사유에 접근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