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지의 부엌
니콜 모니스 지음, 최애리 옮김 / 푸른숲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칸지의 부엌]추억으로 이끄는 음식의 향취

나에게는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지금은 수 많은 사람이 오가는 전철 역사 옆의 의외로 허름한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중국 요리집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때만 해도 중국말을 하는 화교출신 주인이 신기하기도 하고 다른 곳과는 달리 노란색 단무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보기 드문 절임무와 쨔샤이 그리고 인심 좋은 주방장아저씨가 주는 튀김만두나, 커서 알게 된 위쌍러우쓰(돼지고기 야채복음)’와 육즙 맛이 배어 있는 딤섬의 맛은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독특한 맛의 추억을 주었다.

거기에 그 길을 따라 어머니 손잡고 시장 갔다 오는 길에 종종 먹는 짜장면의 맛은 시장 길의 아픈 다리를 잊게 해주는 묘약과도 같은 맛이었다. 이제는 내돌려진 잡스러운 미각 탓인지 세월에 둔감해지고 제법 맛에 감사 할 줄 모르는 건방이 생겼는지 몰라도 어느 곳에서도 다시 그 맛을 느낄 수 없지만 음식이란 감흥이 주는 맛의 추억과 내음 그리고 음식이 주는 편안한 웃음과 나눔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대해 더욱 깊은 향취로 남아 있다.

칸지의 부엌이란 이름을 보았을 때 받은 느낌은 바로 그런 추억의 향취와 더불어 온갖 스트레스로 속이 편치 않은 이 시대에, 푸근한 죽의 내음을 맡을 수 있어서 속을 편하게 해주는 그런 어머니의 편안한 손 내음의 느낌으로 먼저 다가왔다.

칸지의 부엌은 매기라는 푸드 코디네이터가 남편과 사별한 이후 남편의 아이가 있다는 뜻밖의 소식과 함께 자신의 일과 더불어 중국행을 하게 되지만 중국계 미국인인 샘 량이란 요리사를 통해 다양한 중국의 음식과 역사적인 사실을 체험하면서 동양의 식 문화의 얽힌 관계와 그 미묘한 맛의 조화를 깨달아 가는 일련의 요리 탐구사를 보여준다.

미국인이 보기에는 다소 이질적이기도한 식(食) 문화 이지만 중국요리의 다양함 속에는 결핍의 아픈 역사와 그들이 관시(關係)라 말하는 그들의 문화가 같이 녹아 있다는 것을 매기의 시각을 통해 보여준다. 외국인이 보기에는 친족과 혈연, 학연, 지연의 끈끈함이 잘 이해가 안될 법도 하지만, 남편을 사별하고 자국의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 심한 외로움을 느꼈던 매기에게는 이런 문화적인 다채로움도 좋았지만, 여러 양념과 조리방법 그리고 다양한 식 재료와의 조화를 통해 보여지는 복합적인 식 문화와 항상 누군가와 함께하는 따뜻한 정의 관계에 기쁨을 느끼게 된다. .

단지 2주간이지만 <마지막 중국요리사>량웨이의 후손인 샘 량의 전국요리대회의 도전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그와 요리 하나하나의 과정과 그의 얘기를 통한 인간적인 교감으로 샘과 가족인 세 숙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인간적인 안온함에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간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녹아 내리며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어 가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음식의 얘기지만 사별을 통해 모든 관계의 단절을 느끼고 그간 얻은 상처의 괴로움과 외로움에 지친 매기가 중국의 음식문화 속에 녹아 있는 관계 즉 관시 속에 다시 한번 단절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한다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음식이란 매개체를 통해서 말이다.

요리경연 속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요리의 얘기만으로도 풍요로운 내음과 매기의 심리적인 변화와 기술(記述)로 인해 음식의 맛과 풍미까지 그리고 색감까지, 눈앞에 펼쳐지는 요리를 보는 듯해서 더욱 좋기도 해지만 오히려 중간에 펼쳐지는 샘과 매기와의 달달한 로맨스가 샘이 내어 놓는 요리의 얘기와 더불어 마음과 요리가 함께하는 특이한 전개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아무리 황제만이 먹었다던 만한전석이 펼쳐 질지라도 샘이 경연에서 얻은 것은 매기에게 얘기한 것 같은 이론만이 아니라 결국은 아무리 화려한 요리라도 상대방을 위해 마음을 담은 요리가 진정한 요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에 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샘이 알게 된 것도 샘이 얻은 요리와의 관계의 회복처럼 보였다. 비로소 진정으로 지식이 아닌 요리의 기본적인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매기와 샘은 결국 자신의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과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보니 이안 감독의 1995년작인 음식남녀가 생각이 난다. 유명조리장 이었던 아버지와 세 딸에 얽힌 이야기지만 그 속에도 음식 때문에 벌어 졌던 부녀 관계가 결국 음식으로 회복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그 딸들도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어린 시절 나누었던 그 추억의 분위기, ,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까지 음식이란 매개체와 함께 어울러져 다시 함께 하는 모습으로 마쳐진다. 이렇게 음식이 주는 인연의 끈은 인간의 모든 오감 속에서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기에 아주 깊은 관계를 형성 시킨다. 아직도 고향의 맛 하면 어머니의 된장국이 생각나듯 말이다.

또한 이 책의 삽입된 액자 소설식의 <마지막 중국 요리사>가 비록 허구 일지라도 그 책속에는 중국의 깊은 향취와 전통 그리고 추억까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에는 이랬지 하면 그때를 더듬어 나가며 손잡고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 편안히 귀기울여 듣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의 다양한 음식문화와 역사가 어떻게 어우러 졌는지 엿보게 되서 새로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요즘 같이 힘든 세파를 헤쳐 나가다 보면 이런 저런 일로 지치기도 하는데, 훨 훨 털어 버리고 베이징에 샘 량의 요리집을 기웃거려보고 싶다. 그리고 그가 해주는 칸지와 마음을 치유해주는 닭찜을 먹으며 술 한잔에 마음 통하는 친구처럼 밤새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어떨지 생각하게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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