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아메리카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소설이다. 인간이 어떤 색깔의 피부를 가지든, 어느 나라에서 왔든, 어떤 언어를 쓰든 간에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한 인간이 과연 정체성을 스스로 소유하고 있느냐는 것 말이다. 정체성이 있는 인간과 없는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외력에 견디는 내력의 유무일 것 같다. 그러니까 외력이 가해질 때(그것이 개인이든, 사회이든, 국가이든), 개인의 내부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내력이 있는 인간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주저앉기는 하더라도 그게 끝은 아닐 것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페멜루에게 정체성은 헤어스타일일 수도 있고, 남들이 발음하기 힘들어하는 이름일 수도 있고, 자기 언어로 하나하나 써 내려간 블로그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 같다. 이페멜루는 사랑의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갔다. 쌓인 정체성이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장벽의 역할을 하며 방해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다. 결국 아다치에 작가가 생각한 정체성은 외부에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온전한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타향이라면,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흔들리더라도 버틸 수 있는 내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