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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에는 패턴이 있다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9 Vol.18 ㅣ 스켑틱 SKEPTIC 18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6월
평점 :
요즘 내가 구독해서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중 하나는 '겨울서점'이다. 책에 대해 리뷰하는 북튜버 겨울서점님이 <세상을 명확하게 바라보는 가이드, [팩트풀니스]>영상에서 인상 깊게 했던 말은 이것이다. "정말 그럴까?"
팩트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탈진실(post-truth)'라는 단어가 탄생하고, 가짜뉴스가 우리 주변을 휘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해 품고 있어야 할 무기가 이것 아닐까. "정말 그럴까?"
이는 간단명료하게 <스켑틱>이 추구하는 바를 나타내는 모토 같다. 물론 과학적 회의주의라는 말이 훨씬 더 있어 보이지만 말이다. 이번 <스켑틱> 18호의 주제는 가짜뉴스이다. 최근 정치·사회·경제를 가리지 않고 모든 뉴스의 주요 관심사가 가짜뉴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로 떠올랐지만, 대개의 문제들이 그러하듯이 해결방안이 마땅치 않다. 그런 와중에 <스켑틱>은 대담하게도 '가짜뉴스에는 패턴이 있다'라고 말한다.
차미영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의 <네트워크는 가짜뉴스를 알고 있다>는 기술적인 접근으로 가짜뉴스 현상을 해석한다. 가짜뉴스가 전파되는 과정에 일정 패턴이 존재하고, 이를 각종 포털 사이트 및 SNS를 관리하는 기업들이 반영하여 가짜뉴스 생산을 억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서 각국은 사법체계를 바탕으로 가짜뉴스를 예방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나는 공급에 주목하는 만큼, 가짜뉴스 수요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의도는 없더라도 가짜뉴스를 즐겨 보고, 수용하고, 퍼뜨리는 뉴스 소비자의 태도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에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기득권을 부당하게 오·남용하는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뉴스는 직관적이지 않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파악해야 하고, 우리가 평상시에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수고를 더해야 한다. 모바일로 엄지만 위아래로 놀리며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품이 많이 드는 일은 버거울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사소한 것에까지 에너지를 쏟을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가짜뉴스는 직관적이다. 비판적 분석 대신, 편 가르기만 할 줄 알면 충분하다. '○○ VS ○○' 프레임은 이제 슈퍼맨과 배트맨이나, 메시와 호날두에만 쓰이지 않는다. 직관적인 대결 구도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세상을 진지하게 보려는 태도를 보이면 '진지충'으로 비난받는다. 복잡한 세상을 단박에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차근차근 설명하려고 하면 '씹선비'와 '노잼'으로 도배되는 댓글이나 채팅을 마주하게 된다. 차 교수의 글처럼 구조적, 제도적 관점의 거시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각 개인이 뉴스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 역시 작금의 상황에서 긴급한 문제이다. 우리는 글 또는 영상과 같은 모든 콘텐츠를 수용하는 데에 한 끼 소화하는 정도의 시간을 가지며 숙고하고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담이지만 차 교수 다음에 나온 데이비드 카원과 게리 스미스의 글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무언가 대단한 걸 말하는 것 같은 제목이지만, 알맹이는 당연한 말을 그럴싸하게 표로 정리한 것이 전부였다. 혹시 데이비드 카원이 가짜뉴스를 풍자하기 위해서 본인의 글을 희생양 삼아 이렇게 쓴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기도 했다(마치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에 나도 모르게 클릭해서 들어가 보지만, 내용은 별 볼 일 없는 어뷰징 뉴스에 한몫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강양구 과학 전문 기자의 <미세먼지, 누구의 책임인가?>와 김상욱 교수의 <진화, 생명을 설명하는 물리학 너머의 법칙>이었다. 강양구 기자의 글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만 돌림으로써 내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축소시키는 우리의 태도를 꼬집는 것 같았다. 사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에 현재 우리의 생활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면 가능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우리는 자꾸만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공기 청정기가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의 위치로 올라온 지금, 공기 청정기를 더 돌리기 위한 전기를 공급하려고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화력발전소를 더 돌리게 되는 순환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다(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만든 텀블러가 어느새 사람 수보다 많아진 것 같은 현상과 비슷하달까). 성능 좋은 마스크는 분명 재사용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그럼 대체 수많은 마스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폐기되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공기가 좋아질 리 없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김상욱 교수의 글은 우선, 생명의 진화를 물리학자가 설명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저자의 주 종목인 원자를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진행하는데, 최근에 그의 『김상욱의 양자 공부』를 50페이지 정도 맛보기 한 독자로서, 그의 글솜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보통 이럴 때는 글빨(?)이나 글맛(?)이라고 표현해야 더 적절할 것 같다.
사족을 달자면, <뉴필로소퍼>를 즐겨 읽는 나로서는 이번이 <스켑틱>을 처음 접한 기회였는데, 조금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뉴필로소퍼>에 비해 대단히 경제적으로 만든 잡지인 것 같다. 종이의 문제라기보다(나는 음식은 가리는 것이 많아도 종이 책의 질감과 냄새는 편식하지 않는다. 90년대 누런 종이의 곰팡내도 묵은지 같은 맛이 있다. 김치는 좋아하지 않지만), 다채로운 그래픽과 잠시 쉴 수 있는 구간이 있는 <뉴필로소퍼>에 내가 익숙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해법은 한국의 미세먼지를 줄이는 것이다. 국산 오염 물질의 양이 줄어든다면, 설사 중국을 비롯한 외부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와도 ‘매우 나쁨‘이 아니라 ‘나쁨‘ 수준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너도 나도 중국 탓만 하면서 정작 이런 노력은 안중에 없다. - P102
진화론은 지구온난화 논쟁과 더불어 현재 대중들에게 가장 큰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 중 하나다.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은 많은 대중들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 진화론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로 인해 갈등을 겪기 때문에 발생한다. 과학자와 교육자들이 진화론에 대한 소통 방식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진화론을 수용하는데 따르는 저항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거세질지도 모른다. 본 글에서는 진화론의 원활한 수용을 위해 교육자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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