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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정작 전공과목보다 비전공과목, 교양과목들이 더 흥미롭고 즐거웠던 건 대체 어찌된 연유일까.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학은 대단히 매력적인 학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귀스트 꽁트, 에밀 뒤르켐, 게오르그 짐멜, 앤서니 기든스 등의 이름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꽤나 좋아했었던 모양이다. 사회학은 사회과학과 사회철학의 교집합적인 학문으로 기억되는데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간, 인간이 이루고 있는 사회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수디르 벤카테스의 <괴짜 사회학>은 사회학 그중에서도 특정 집단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특수사회학의 일종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벤카테스가 사회학의 연구 대상으로 삼은 특정 집단은 바로 미국 시카고의 빈민가, 로버트 테일러 홈스의 빈민층 곧 이곳의 흑인을 연구 대상으로 설정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미국의 빈민층이나 흑인을 대상으로 한 특수사회학, 응용사회학에 관한 논문이나 책자는 모르긴 몰라도 수 백, 수 천 부는 넘을 테니 말이다.
시카고 거리에서 본 약동하는 삶에 비하면 세미나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어쩐지 차가운 거리감이 느껴졌고 추상적이고 생기 없어 보였다. 연구자들 대부분이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대상인,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특히 내 호기심이 꿈틀거렸다. (괴짜 사회학 중에서, 19쪽) <괴짜 사회학>가 여타의 사회학 관련 책자와 차이를 둘 수 있는 이유는 저자인 베카테스가 그 특정 집단 속으로 곧 시카고의 빈민가 안으로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 심지어 그 빈민가에 속해 있는 갱단 블랙 킹스의 일원이 되어 연구를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관찰자 입장에서 크게 벗어났다거나 갱단의 일원이 되어 총질을 하고 마약을 판매하고 사람을 죽이는 등의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을 맡았다. 단지, 남다른 점이 있다면 두목의 명령(!)이었다는 것. <괴짜 사회학>이라는 본 책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학문을 탐구함에 있어서 그의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태도, 상아탑 속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하는 학자로서의 열린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
난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아니야. 깜둥이야.(…)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넥타이를 매고 일해. 우리 깜둥이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조차 없어. (괴짜 사회학 중에서, 35쪽) 이 주택단지에는 두 종류의 갱단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해. 경찰도 하나의 갱단이야. (괴짜 사회학 중에서, 325쪽)
<괴짜 사회학>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저자의 이러한 태도와 자세를 바탕으로 사회가 방치한 혹은 외면한 소외계층의 가난과 빈곤, 갱단과 범죄, 공권력의 부패와 무법천지 빈민가의 본 모습을 사실적으로, 실질적으로 담아냄으로써 기존의 탁상공론적 사회학 연구에 대한 한계를 비판하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오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괴짜 사회학>의 초고가 되었을 벤카테시의 논문 집필이 시작된 건 1989년, 이후 1998년까지 약 10년 간을 시카고 빈민가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논문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09년 현재, 미국의 대통령은 인종적으로 흑인黑人이다. 동시에 갱단의 두목 제이티의 표현대로 하자면 깜둥이가 아닌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자,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영화 속에서나 연출되었던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집권하고 있는 오늘날의 미국에서 이 <괴짜 사회학>이라는 책은 과연 무색해졌을까?
2009년 7월, 저명한 흑인 학자이자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 박사가 자신의 집 현관문이 열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는데 한 이웃이 그를 도둑으로 오인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출동한 경관이 게이츠 박사의 신분증을 요구하며 집안까지 쫓아 들어왔고, 신분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체포하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경관의 입장도 있었을 것이고, 필요이상으로 격분하고 과민하게 대응한 게이츠 박사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집 현관을 열려고 애쓰고 있었던 사람이 만약 백인이었다면 이 사건은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우스갯소리지만 신고를 했던 그 이웃은 어쩌면 “Hi, May I help you?"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괴짜 사회학>의 틀에서 봤을 때 조금은 한정적인 예이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추측하건데 수디르 벤카데시의 <괴짜 사회학>이 화석화된 책이 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