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먹는다는 것. 이 ‘먹는다’는 행위는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에게 해당되는 가장 본능적인 행위이며 또한 가장 즐거운 행위이다. 언제부터인가 ‘맛집’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맛있는 음식점, 소문난 카페 등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즐기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졌고 이제는 보편화되었다. 먹는다는 행위는 더 이상 먹기만을 위한, 배를 채우기 위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이를 즐기는 것이 하나의 놀이로, 여가활동으로 내지는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두고 사회학적, 심리학적 분석은 가능할지 몰라도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나 통찰을 촉발시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은 오랜 외국 생활과 러시아어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적 특성, 낯선 문화적 경험들을 바탕으로 먹음의 행위와 음식이라는 소재를 통해 유머러스하지만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가능케 한다. <미식견문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챕터를 꼽자면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취하는 태도를 통해서 그 사람의 성향을 가늠하고 추측한 ‘미지의 음식과 성향’이라는 챕터이다. 1985년 러시아의 사회주의 개혁 이데올로기를 칭하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가 시작될 무렵 개혁을 추진하던 진영에서도 가장 보수적이었던 리가초프(실상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대항했던 인물로)는 회나 초밥은 물론 굴이나 조개 심지어 익힌 생선이나 튀김 등 익숙하지 않은 일본 음식은 결코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반해 러시아의 개혁과 개방, 러시아의 공산 통치 종말의 서막을 알렸던 고르바초프는 회나 초밥에는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일본 요리 중 튀기거나 익힌 생선, 샤브샤브나 스키야키는 대단히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개혁과 개방을 넘어 아예 러시아를 붕괴시키는데 일조한 옐친은 회, 초밥, 낫토, 참새구이 심지어 재미로 점점 희한한 음식을 내오던 주최 측이 어이없어할 정도로 어떤 음식이건 흥미롭게 먹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정치적 측면에서의 성향이 정비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이 이야기가 절대적인 진리이거나 과학적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의 본질이 보수적인지 혁신적인지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저자의 상상력과 통찰력은 참으로 흥미로운 발상임에 분명하다.




당장 내일부터 단 한 끼도 쌀밥을 먹게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부터 김치를 먹지 못하게 된다면? 러시아인들에게 보드카를 금지 시킨다면? 프랑스인들로부터 바게트를 몰수한다면? 감자가 더 이상 재배되지 않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은 미치거나 슬퍼하거나 배고프거나 심지어 죽어갈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먹고 마신다. 따분할 정도의 이 일상적인 행위는 사실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요네하리 마리가 <미식견문록>을 집필하게 된 원동력 그 저변에 있는 것은 바로 ‘그리움’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그리고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그녀는 그리움을 원천으로 먹는다는 것이, 음식이라는 것이 육신은 물론 인간 영혼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한 얼마나 소중한 요소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살이는 사실 이름처럼 하루만 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성충이 되기까지 애벌레로 약 2년간을 살고 성충이 되고나서는 짧으면 단 몇 시간을, 길면 일주일정도 산다고 하니까. 하지만 대다수의 성충이 된 하루살이는 정말이지 짧은 시간을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루살이의 삶이 짧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바로 성충이 되는 그 순간부터 하루살이의 입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입이 퇴화되어 버린다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영양을 섭취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알을 낳는데 사용하고는 그토록 짧은 하루살이의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먹는다는 것이 때론 곤욕이 되기도 하고 일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먹는다는 것은 몹시 즐거운 행위이며 동시에 참으로 감사해야 하는,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행위임을 먹음의 매순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미식견문록>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오랜 타국 생활을 통해 이러한 진리를 몸소 체험했기에 소소한 이야기들 가운데 진정성과 진실한 울림이 묻어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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