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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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게 가장 그럴 듯한 것이다. 그리고 거의 대개 그게 맞다. 반대로 변호사는 수사관이 지어 놓은 증거라는 가건물에서 될 수 있는 한 틈새를 찾아내려 노력한다.(…)성급하게 그럴싸한 겉보기를 진리라고 고집하는 것을 막는 게 변호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변호사는 정의라는 이름의 자동차에 장착된 브레이크처럼 자꾸 제동만 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때 법관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가 얼마나 위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169쪽)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저서 <유토피아>를 통해 변호사에게 배운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이 없다면 판사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교활한 자의 비양심적인 공격으로부터 정직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사실 토마스 모어는 변호사라는 직업군 자체를 비판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일반 백성들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법률용어나 법률의 내용 때문에 백성들 곧 피지배자, 배우지 못한 자, 가난한 자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 외에는 교육의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었던 150년경에는 법은커녕 글자를 읽고 쓰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으니까. 그러나 교육의 혜택이 비교적 공평하고 수준 높은 오늘날에도 법이나 법률은 일반인들에게는 굉장히 낯설고 어려운 분야이다. 그러다 보니 좋든 싫든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변호사는 선망의 대상이며 동시에 필요악처럼 그 존재에 대해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꽤 괜찮은, 꽤 멋진 변호사가 한 명 있다.

독일의 변호사인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저서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를 통해 자신이 변호를 담당했던 사건 중 열한 부의 사건을 모아 열한 편의 에피소드를 구성했다. 두어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살인사건과 연관되어 있으며 저자가 변호한 이는 그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들이거나 용의자들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대체 변호사인 쉬라크는 어떻게 살인자들을 변호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부분에 있어서 쉬라크는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변호사의 1차적인 임무는 의뢰인의 변호라는 것이며, 의뢰인의 죄가 확실하다면 그에게 온당한 형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하고 이러한 판단에는 언제나 도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반드시 반추해 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인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는 그들의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째서 40년을 함께 해온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했는지, 어째서 자신의 남동생을 욕조에 넣어 익사시켰는지, 어째서 19살의 조용하던 고등학생이 양들을 난도질하여 죽였는지, 어째서 23년간 근무해 온 박물관의 조각상을 산산조각 내버렸는지, 어째서 은행을 두 번이나 털었는지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저자는 매우 간결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간결하고 담담한 문체 속에는 너무나 무거운 인생이, 너무나 깊은 삶이 담겨 있다. 저자는 그들 안에 배태된 죄악이 아닌, 그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통찰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우리의 형법은 지은 죄의 책임을 묻는 형법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얼마나 책임을 질 수 있는가에 따라 처벌을 한다. 같은 죄라고 해도 그 배경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복잡한다. (308-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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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 내 마음의 여행 시리즈 1
이유미 글, 송기엽 사진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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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가면 누구나 좋은 마음이 들지요.(…)그런데 그 다음엔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답니다. 하지만 적어도 숲에 사는 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100가지 아니 그 반만 알고 있어도 그냥 초록이던 숲은 갑작스레 다정하고 친근한 공간이 됩니다. 그냥 나무이고 그냥 풀이었던 숲의 존재들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우리가 이 봄에 만난 나무와 풀들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우리에게 의미가 되고 위로가 되며, 행복과 지혜를 건네기도 하는 그 무엇이 되기 시작하지요. (67쪽)

산길을 걷다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저 꽃의 이름이 뭐지? 저 나무는 무슨 나무지? 저 풀은 뭐라고 부르나? 하지만 저게 뭘까 궁금하다가도 산에서 내려오는 순간 궁금해 했다는 사실조차를 잊고 만다. 꽃이나 나무의 종류, 이름에 대해서는 참 무관심하고 무지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길가의 한쪽 후미진 곳, 단단하고 차가운 아스팔트 틈새에서 피어난 그 무언가를 보고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건 늘 지독하게 생명력이 강한 ‘잡초’나 그냥 ‘꽃’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소중하게 생각할 리 만무하고 ‘그것’들에 대한 감탄도 단발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의 저자는 숲에서 길가에서 발견하는 풀과 꽃과 나무들의 이름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것’ 혹은 ‘그것들’이 아닌 구체적인 존재들이 되어 나에게 의미가 되어 주고 위로와 행복, 지혜가 되어 준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 김춘수가 이미 통찰했듯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 주는 것이다. 눈 덮인 한계령 어느 곳에선가 샛노란 꽃송이를 피워내는 한계령풀, 꽃의 날렵한 자태와 빛깔이 제비를 닮았다 하여 제비꽃, 향기가 발끝에 묻어 100리를 가도록 그 향이 계속 이어진다 해서 백리향, 자줏빛 구름 같다 하여 자운영, 남들은 해를 보며 꽃을 피울 때 달을 보며 꽃을 피운다 하여 달맞이꽃…….

<내 마음의 야생화 여행>은 그저 ‘그것’에 불과했던 수많은 야생화들을 생생하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담아내고, 정성들여 소개함-이 책의 저자가 자연과 꽃과 이 나라 산천에서 피고 지는 야생화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 또한 걱정하고 염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글 가운데서 오롯이 드러난다-으로써 하나하나 살아 있는 구체적인 존재로, 의미가 되어 주는 존재로 다가오게 한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자 책을 쓴 이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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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맥주의 위대한 성공, 기네스 브랜드 인사이트 시리즈 1
스티븐 맨스필드 지음, 정윤미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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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기업의 착한 경영철학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지명을 넘어선 몇 가지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가난과 빈곤, 질병, 하층민, 노동자들의 슬픔과 애환을 상징했던 더블린. 그런데 이 악명 높은 더블린과 함께하겠다며 자진하여 찾아든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기네스 가(家)의 사람들이다. 250년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맥주 상표, 기네스. 바로 그 기네스 맥주를 주조한 기네스 가의 사람들이 이 가난하고 병든 도시인 더블린으로 찾아들어 맥주 공장을 세웠다.

어쩌면 상당히 뻔한 스토리를 예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잉여 노동력이 풍부한 더블린에 어느 수완 좋은 부자가 자그마한 맥주 공장을 세웠고 떼돈을 벌어들이면서 자자손손 가업을 이어받아 이 공장을 점점 더 번창시켜 오늘날의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인 기네스가 존립하게 되었다는 기업의 성공 신화 스토리……같은 전개 말이다. 이러한 예상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자 스티븐 맨스필드는 그러한 경제적 성공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기네스 가의 봉사와 헌신, 이웃을 향한 사랑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파격적인 직원 복지와 더블린의 복지를 위해 노력한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28년 당시 기네스는 양조장에 전문의 두 명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고 직원뿐 아니라 직원의 배우자와 자녀들도 진료를 받을 수 있었으며 치과 의사, 약사, 간호사 등을 고용하여 직원들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강연이나 음악회 등을 기획하여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매년 모든 직원들이 가족과 소풍을 즐길 수 있도록 유급 휴가를 마련했고 이것도 모자라 기차 티켓이며 식비 등을 모두 지원했다. 심지어 독신인 직원에게는 연인과의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 파격적인 직원복지가 1920년대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기네스의 복지 시스템은 기업 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인 더블린까지 확장되어 지역의 복지향상을 위해서 노력했다. 전문 의료 담당자를 고용하여 환경의 개선과 질병의 예방, 치료 등을 통해 더블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곤층을 지속적으로 도와주었으며 이와 같은 기업의 복지사업이 얼마나 중요한 책무인지를 타 기업에게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기네스는 단순히 상품을 통해 부를 창출한 기업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 그리고 사랑에 바탕을 둔, 기업 내 복지의 실천과 사회 복지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와 같은 경영철학, 기업윤리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 가운데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한여름의 시원한 맥주 한잔처럼 가난과 노동에 지친 더블린 사람들의 마른 입술을 적셔준 기네스는 책의 제목처럼 착한 기업의 위대한 성공을 능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당시에 기네스가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각종 혜택은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현대의 대표적인 기업들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1928년 기네스 회사 보고서를 잠깐 살펴보면 그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는 기업이 직원들의 복지 혜택을 크게 중시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양조장에는 항상 전문의 두 명이 대기하고 있어서 직원들뿐만 아니라 배우자 및 자녀들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혜택은 과부나 연금 수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15-16쪽)

기네스가 맥주 회사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기네스 기업 문화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직원들의 생활을 크게 개선해주고 더블린의 빈곤층을 지속적으로 도와주었으며 다른 기업들에 직원들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신의와 친절, 관대함을 특징으로 하는 기네스 기업 문화는 직원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 서로 더욱 열심히 일하고자 독려하게 하며 인생의 역경이 남긴 상처를 매만져 주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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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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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297쪽)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는 지배자, 감시자, 통제자, 정부 관리자, 자유의 억압자 또는 통제된 사회체계나 통제 수단 등등 오늘날에도 정치적, 사회적 주제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메타포로 사용되고 있다. <1984>보다 이전에 발표했던 <동물농장>이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 오웰의 작품들은 소설이나 에세이로써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한 불의에 대한 저항, 의지의 관철과 분투 등 오웰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신념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정치적 입장은 결코 깊이 감추어져 있거나 난해하지 않다. 언제나 직설적-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나폴레옹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스노볼은 또 누구를 빗댄 것인지 돼지들로 의인화되어 있지만 그 의인화의 대상들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명확하다-이며 간결하고 당당하다.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서 왜 그의 소설들이 그토록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는지 그 이유가 명백해진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작가적 소신이며 자신의 작품들 가운데 맥없는 작품, 의미 없는 구절이나 문장으로 채워진 글들은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그의 이러한 주장들이 반드시 옳다고만은 이야기할 수 없다. 또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지 오웰이 살았던 바로 그 시기 그리고 작가로서 활동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영국의 식민지 국가 중 버마에서의 경찰 생활, 제국주의, 2차 세계대전, 파시즘, 독재, 빈민들, 가난-들을 고려해 볼 때, 오웰의 이러한 신념과 의지는 작가로서의 양심이라든가 책임감을 넘어선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뒤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26쪽)
 

조지 오웰의 수백 편에 이르는 에세이 가운데 29편을 한데 묶은 <나는 왜 쓰는가>는 크게 두 가지 주제가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그의 정치적 성향과 입장에 대한 것, 또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애(humanity)에 관한 통찰과 자기반성이다. 영국의 식민지 중 하나인 버마(오늘날의 미얀마)에서의 경찰 생활과 빈민가에서의 하층 생활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이 인간을 대함에 있어서, 내가 타자를 대함에 있어서 과연 인간은 얼마나 인간을 인간으로써 대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식민지 주둔 경찰로 분명하기 짝이 없는 또 하나의 인간-버마인이자 힌두교인-을 교수형에 처하고, 환자들을 그저 학습이나 연구에 필요한 교재로, 표본으로 대하는 의사들을 지켜보면서 그는 불가사의하고 낯선 감정들을 감지하게 된다.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감정, 낯설고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들을 통해 잊고 있었던 혹은 오웰 자신의 정신세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원론적이거나 학술적, 논리적인 접근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생하게 느꼈던 감정들을 풀어내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상실되는지, 인간애가 어떻게 외면당하는지 성찰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인간 자유에 대한 통제와 지배,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를 반대했으며 이에 맞서는 방법으로 글쓰기와 문학을 선택했다. 총보다는 펜이었다고 해야 할까. 오웰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고군분투했고, 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는 분명 이루어졌다. 47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조지 오웰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의 사상과 신념들을 반추함에 있어서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는 매우 적절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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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을 보다 - 100년 만에 드러난 새 얼굴 다큐북 시리즈 1
황병훈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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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어느 때보다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 2010 남아공 월드컵,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 스포츠 대회가 세 차례나 있었고, 2010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오랜만에 남과 북의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졌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이 한국 내 영토를 포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없이 어느덧 2010년의 끝자락에 와 있는 이 시점에서 2010년이 가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의미와 의의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일종의 불안감과 두려움 또는 송구함이 아마도 이 책을 펼쳐들게 한 것 같다.

2010년 올해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라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며 동시에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기가 되는 해이다.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그 이듬해인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서른두 살의 나이로 안중근 의사는 순국하였다.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이라는 군인 신분으로 적장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기에 국제법에 따라 전쟁 포로로서 재판을 받아야 했지만 일본은 안중근 의사를 일반 형사범으로 처리하고 살인죄를 적용하였다. 이는 일본의 치밀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일이다. 안중근 의사가 한 나라의 장군이라는 군인 신분을 무시하는 행위였고, 대한제국을 독립국이 아닌 일본의 속국으로 간주하는 행위였으며 안중근 의사가 행했던 거사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안중근 의사를 단지 살인자로 혹은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긴 위한 행위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장군의 신분으로서 전쟁 포로로 재판을 받든, 살인자의 신분으로서 일반 형사범으로 재판을 받든 결국 그에게 선고되는 형벌은 사형이다. 차이가 있다면 군인 신분으로 총살형을 당하느냐, 살인자의 신분으로 교수형을 당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그렇다면 대체 안중근 의사는 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그 자리에서 순순히 체포된 것일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대한제국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일제로부터 핍박 받는 백성들을 위함이고, 둘째는 동양평화에 대한 그의 신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대한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에 대한 염원에 있어서 이토 히로부미는 저해 및 방해 세력의 수장이었고 이러한 그를 저격한다는 것은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컸던 것이다.

<안중근을 보다>를 통해 알게 된 안중근 의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양평화론이라는 그의 사상에 관한 부분이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중요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였던 뤼순 지역을 영세중립지로 만들어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고 중국, 일본, 대한제국 세 나라의 청년들로 구성된 평화군을 양성하여 각기 독립국가로서 주권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여 서구제국주의의 침략에 공동으로 대처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공동 은행 설립, 공동 화폐의 발행 등을 주장했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 유럽연합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러한 사상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그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완성하기 위해 사형일을 미루어 달라고 요청했을 만큼 동양평화론 완성을 위한 집념이 컸지만 안중근 의사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오히려 사형일은 앞당겨졌다-동양평화론은 서술 정도에 그쳤으며 그마저도 일본에 의해 철저히 묻혀 있다가 70년이 지나 발견되었다. 만약 그때 동양평화론이 완성되었다면 어땠을까. 유수의 사상들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석학들에 의해 연구되고 비판되어지면서 견고해지고 발전하여 오늘날 이 동북아시아 아니 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화합을 위한 해법의 단초로써, 근간으로써, 구심점으로써 자리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안중근 의사는 죽기 전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대한제국이 독립했을 때, 유해를 이장해 조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일본은 안중근 묘역이 독립운동의 메카가 되고 성역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가족들의 요구에 불응한 채 유해를 건네지 않았다. 결국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한 상태이며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책 <안중근을 보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름 아닌 안중근을 통한 남과 북의 이해와 화합에 관한 성찰일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신성시하는 북한에서조차 안중근 의사만큼은 위대한 영웅으로, 존경의 대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 2006년, 2008년 남과 북은 안중근 의사 공동유해발굴조사단을 발족하여 뤼순에 파견했다. 아직 그의 유해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안중근 의사의 증손자 안도용 씨의 말처럼 증조할아버지의 유해가 조국으로 돌아와 남과 북의 경계선에 묻히게 되는 날, 남한과 북한 모두 서로 마음을 맞춰 같을 곳을 향해 맞절을 하게 될 것이다. 살아서는 한반도의 독립을 위해 죽었고, 죽어서는 점점 그 골이 깊어지는 남과 북의 이해관계와 이념을 뛰어넘을 수 있는 구심점의 역할을 위해, 남과 북의 화합을 위해 여전히 살아 있다. 그의 이름 석자 안중근이 너무나 절실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인 2010년이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끝끝내 내 의지와 신념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의 뜻을 굳건히 믿었기 때문이며, 내 스스로가 나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사형장 앞에 나아갈 수 있었소. 나를 살리고 나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오직 나 하나 뿐임을 명심하시오. 그대들 스스로 자신의 뜻을 세우고 이를 확고하게 믿으며 나아가시오. 그대들에게, 그대들의 길이 열릴 것이오. ( 70쪽, 안중근을 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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