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러브굿 > 고학력 백수 젊은이의 서정시
반성 - 개정판 민음의 시 6
김영승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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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조리한 현실 비웃기
  말장난과 자기 넋두리를 넘어
  재미있는, 그럼에도 슬픈

간혹 자신의 꿈이, 젊음이, 정열이, 누군가에 의해 몰수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가. 학교에서는 하라는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는 하라는 일을 하는 삶. 화려한 매스컴과 거대한 사회가 조작한 거짓 꿈을 쫓기에 바쁜 사람들. 그나마 그 꿈은 몇 명만이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TV드라마를 보면서 대리 만족이나 겨우 할 수 있다. 컴퓨터와 자동차가 있어 편리한, 먹을 것이 풍부한 이 사회에서 가끔 내 꿈은 어디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나는 김영승의 시집을 읽는다.

스스로를 비웃으며 현실을 비웃으며 사는 젊은이(시인)의 삶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참혹할 수밖에 없다. 비쩍 마른 체격에 볼품없는 옷차림. 이런 김영승의 모습에서 그 참혹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 참혹함 속에서 그는 웃는다. 어린아이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웃음과 "은하수처럼 펑펑 쏟아지는 고운 눈빛"(시인 자신이 '자서'에 쓴 표현대로)이 매력적이다.

이 시집에 실린 김영승의 시는 제목이 모두 '반성'이다. 반성 187, 반성 699, 이런 식이다. 그의 시는 자신을 반성하는 일기장인 셈이다. 말장난에, 자조적 웃음에, 자기 넋두리에,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음탕한 말에.

<반성 序>에서 그는 철학적 용어를 여기저기 흩뿌리고 현실을 비꼬는 말을 이리저리 펼쳐 놓는다. 이런 것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김영승은 이 시의 끝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서정시."

그의 시를 단순한 말장난이나 자기 넋두리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시대 현실에 대한 신랄하고 날카로운 꼬집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렁이에 빗대어 분단의 현실을 비웃는 <반성 193>만 읽어 봐도 그 비판은 매섭다.

허접한 세상에 대한 그의 너털웃음을, 그의 눈부신 웃음을, 그의 시를, 그의 자조적 실존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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