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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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의 물음의 꼬리. 찾았습니까. 그 꼬리의 실체를.  

 

일로 탈출해서 곧바로 내 정체성이나 자아의 문제에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부터 다시 한참 동안 '나는 누구인가'라는 쳇바퀴 돌듯 진전이 없는 문답을 내 속에서 되풀이했고, 그러다 겨우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늦되는 사람인 듯합니다. (p.41)
 


나는 누구일까. 타자를 배제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와의 상호 인정 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 그러한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그 물음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타자에 대해 던졌는지 아니면 도망칠 어딘가를 향해 약해진 마음을 끌고 갔는지. 볼 수 있는가. 너, 자신을. 무엇을 찾으려하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나
는 누구일까.
그런 독자들에게 진지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그.
 

지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타자와 마주하는 것. 거기에 어떤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자아의 고민의 밑바닥을 '진지하게' 계속 파고들어 가다 보면 그 끝이 있을 것이고 타자와 만날 수 있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면 안 됩니다. 이제 자아와 자기중심주의자를 착각해서 단지 '나'의 세계만을 주장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p.43)
 


그가 말하는 진지함이란 어중간함의 반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내게 다짐하듯 당신은 진지하냐고 물어오는 그. 당신은 뱃속까지 진지합니까, 라고. YES를 톡 뱉어낼 수 있는 인간은 얼마나 있을까. 나는 어중간하지 않았는지. 어느 특정인들에 대해 다만 '나'의 세계만을 주장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돌이킴. 과거를 후회하고 그 색의 선명함을 보고자 노력하지는 않으나 그의 말을 들으며 구분지으려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던 나. 때마침 울려오는 과거의 연. 그리고 '나'를 고집하며 들리지않는 척, 아니, 정말 무신경하게 무심히 과거의 연이 관심받기 위해 반짝거림을 바라보고 있던 하루. 이것은 독단적인 상호 인정을 뿌리친 행각인가. 새롭게 태어나 더 나은 상호 인정을 추구하려는 몸부림인가. 타인이 보는 나는 항상 해맑기에 조증으로 취급받기도. 홀로 남겨진 순간의 나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글자 하나를 더 보기위해 음악을 좀 더 즐기기위해 그림을 더 흡수하기위해 정돈된 주변환경을 만들기위해 혼자서도 바쁘고 즐겁다는 충만감으로 사로잡힌다. 남들의 짧은 시선안에 갇힌 나도 홀로 남겨진 나도 조증의 고민없는 인간일까. 아닐까. 외면은 조증환자일지언정 내면은 늘 고민했다고 진지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타인과의 관계까지 전부 진지했다고 확언하진 않겠다. 다만 나 자신에게 있어 혼자만의 세계에서는 진지했다고 자부한다. 그렇기에 인간 자체가 사회 속 타인과의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식할 때 그러한 나의 삶이 진지함으로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진지하려고 노력했다. 강상중, 그는 말해왔다. 유쾌한 고민을 시작하라고. 하자. 고민. 뱃속까지 진지하도록. 부딪혀보자.
변화하려는 내게 그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믿는다'는 것에 대한 글귀는 콕 박혀 들어왔다.

극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 그 어떤 것을 믿는다'가 아니라 '자기를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략) 인생이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집적이며, 그것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믿고 해답을 발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쩔쩔매는 일도 있겠지요. (p.103)

 
나는 믿는가. 나를 믿고 있는가. 내가 선택한 순간들을 믿으며 당황스런 순간들을 고민과 고민으로 침착하게 뛰어넘어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가. 최상의 선택을 향해 나를 믿고 가는가. 내 지성을 믿을 수 있는가. 불안하지는 않은가.
 


는 스스로 이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고민을 하거나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불가지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도중에 그만두면 그것이야말로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p. 106)



어릴 때부터 안고 왔던 습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아이, 로 커온 내게는 무언의 압박감이 늘 존재했다. 어른들이 신경쓰지 않도록 바르게 커야 한다는 인식으로 늘 심신은 긴장되어 있었다. '바르게'라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파헤치지도 못한 채. 그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수십일 전부터 생각하고 생각한 뒤 마음이 굳혀져야만 말로 담고 행동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적어도 어릴 때는 그것이 가능했기에. 몸이 자라고 내가 속한 사회가 변화되면서 생각하기도 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할 순간들이 온다는 것을 직면하면서부터는 내게도 예외적인 순간이 종종 발생했었다. 처음 부딪혔을 때 나는 즉시 반응했다. 몸으로. 입으로.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서 지금 역시 즉시 반응한다. 뇌로. 짧은 순간일지라도 일단 생각한다. 그 짧은 생각이 즉시 몸과 입으로 반응한 것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마련해 준다는 것을 몇번이고 경험했고 후회하는 일이 적었기에. 

내 다이어리는 늘 충만하다. 내 주변 인물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충만하다고 자부한다. 늘 고민하고 정리하는 일에 익숙했고 그것은 이미 9살 그 일이 있던 순간부터 길들여온 '나'이다. 강상중,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야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믿으련다. 나를. 난 오늘도 그대들의 컨디션~이니깐!^-^ 좀 더 나를 다듬어가야 하겠다. 50대의 그. 그쯤의 나는 <<고민하는힘>>의 저자처럼 고민의 흔적을 세상에 내놓고 타인의 인정을 받으며 미련없이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까. 그날을 위해 한다. 고민을. 유쾌하게 괴롭히련다. 나의 뇌를. 나의 가슴을.

NO.51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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