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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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내 얼었던 몸을 녹이려고 꿈틀거리는 봄에게, 소소리바람은 다그친다. 땅속으로 스며들어 깊은 잠에 빠진 새싹을 차고 매서운 손길로 깨워준다.

지나간 시간에 함께한 일들은 어찌 되는 건지 당신은 알고 있소이? 당신한테 묻고 싶은 말을 내 딸애한테 물었더니 내 딸은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 너무 이상해, 하면서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거 아닐까, 엄마! 합디다. (p.235)

엄마는 그랬다. 봄이 다가오면 숙제와 시험을 반복하는 학교생활에 몸서리치는 내게 잔잔하지만 차고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용기와 열정으로 당당히 서야한다고. 그렇게 엄마는 곁에 있지 않아도 소소리바람이 되어 내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목소리였다. 나는 믿었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와 아줌마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신경숙의 ‘엄마’는 더 이상 위대한 아줌마가 아니었다.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p.236)

엄마도 여자다. 엄마는 한 명의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런데도 우리의 엄마를 철인이라 부른다. 엄마도 엄연히 얼굴에 열기가 피어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일을 우리는 인식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우리들이 엄마를 혼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몰아왔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을 무시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에 서 있는 엄마는 손톱이 바짝 잘린 투박한 두 손을 빈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눈물이 그렁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때의 엄마 눈이 소 눈을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p.110)

잃어버린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눈을 기억했다. 신경숙은 어떻게 소의 눈을 생각해냈을까.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보았던 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소는 촉촉하면서도 크고 선한 눈을 갖고있었다. 그러면서도 억셌다. 소의 눈을 떠올리자 신경숙이 그려낸 엄마가 더 절실히 다가왔다. 여리면서도 강한 엄마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순간들이 손가락에 미세한 떨림을 가져왔다.

소의 눈을 닮은 그녀의 엄마에게서 난 소소리바람을 본다. 이른 봄 살을 스며드는 매서운 바람, 그렇지만, 한 해를 일으켜 세우는 아름다운 영혼에 시선을 고정한다. 피에타상 앞에서만 부탁한다고 할 수밖에 없던 엄마와 만난다. 이 추운 겨울에도 엄마는 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오는 바람이다. 지난 시간들에 지쳐서 새로 시작하는 새해가 두려워질 때면 따스하면서도 매서운 소소리바람으로 다그쳐주려고 자신을 숨긴다.

엄마의 손을 잡아야겠다. 소소리바람 옷을 벗고 함께 기대어 울자고 해야겠다.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 새롭게 살아갈 엄마는 어떨지. 그녀의 얼굴에 번질 열기가 내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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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아래곰 2008-12-31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소소리바람이 읽는 나에게도 불어오는 듯한 글에 그만 마음이^^엄마를 부탁해는 굳어져버린 내 마음을 아프고 아름답게 치유해준 소설이었답니다.

xhvk 2009-01-12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엄마 팔짱을 끼고 영화를 보고 엄마만의 재래시장 노하우를 배우고 하루종일 함께 했습니다. 함께 하루를 보내주는 것-그것만으로도 엄마는 웃어주셨습니다.